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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골프역사 3회] 대한민국 골프 140년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우리 골프의 창세기 ‘원산코스’ 접근...국내 골프 도입과 플레이 흔적 정노천 기자l승인2021.01.14l수정2021.01.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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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정노천 골프칼럼니스트] 인간이 사는 어느 시대든 놀이는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하며 진행돼 왔다. 놀이는 소통과 공감의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인간의 삶이든 놀이 없이는 공동체 영위나 삶의 질을 쉽게 상승시키지 못한다. 놀이 행위는 소속감과 자아 정체성을 확보하는 동시 삶과 인간관계 형성을 꾀하는 유대감으로 승화된다.

첫 골프 플레이의 흔적
사실 원산해관 곁을 지나다니며 세관업무를 담당하던 서양인들이 목책을 치고 만든 코스에서 스윙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촌로들은 클럽을 휘두르는 낯선 그 모습을 보고 신기해했고 또 그렇게 시늉도 해 봤을 것이다. 그 당시 조선인들은 논밭에 나가거나 일반 외출 시에도 빈 지게를 지고 작대기를 휘두르고 다니는 것을 자주 봤던 모습이다. 그 촌로들이 목책으로 둘러싸여 접근은 못했지만 멀리서나마 그들의 스윙 모습을 보고 자신이 갖고 있던 지게 작대기로 앞에 놓인 돌이나 둥근 물건들을 툭 치며 흉내를 냈을 것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어떤 이는 외국인 해관 근로자들이 여가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해관구내에 코스를 만들어 놀이삼아 클럽을 휘둘렀다는 것을 우리 골프의 시작이라고 잡는 것도 못마땅해 하는 이도 있다. 사진이나 확실한 기록이 없다는 이유다.

이미 우리민족에겐 발해나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를 관통하면서 골프의 전신(조완묵 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격구’나 ‘장구’라는 형태의 공치기 놀이가 행해져 왔다. 그것도 국가적인 무과시험의 일종으로 행해지고 엄격한 룰과 도구 등이 갖춰진 골프놀이였다고 주장하면서 사실 골프의 원형임을 주장한 학자가 조완묵 씨 였다.

그 당시 사회적인 조류와 시원적인 사료를 무시해버리고 현대적 골프의 규격화라는 프레임에만 맞춘다면 그것 또한 골프의 본질을 훼손하거나 우리

골프의 파이를 축소하는 어리석음이 아닐까? 그런 논리라면 몇 십 년, 몇 백 년의 세월이 흐르게 되면 지금의 골프 역시 그때 그 시대에 맞게 규칙이나 도구 및 스윙 행태가 바뀔 것이고 그럼 그때도 오늘 날의 이 골프형태를 유사 골프로 치부해버리고, 우리 것이 아니라고 내팽개치고 말 것인가 묻고 싶다. 어쨌든 과거의 공치기는 옛 골프로 한정 지어놓더라도 이 땅에서 조선의 조정이 의뢰한 한 나라의 기관(원산해관)에 근무하면서 체류했던 서양인의 세관원이나 선교사들 혹은 당시 우리나라 근무자들이 함께 즐길 수도 있었을 골프라는 놀이. 이 땅에서 자기들 나라의 고유 놀이인 골프채를 휘둘렀다는 사실은 이 땅에 골프 상륙이고 흔적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오늘날 이 땅에서 일으킨 골프의 씨앗과 우리의 골프자산이 아닐 수 없다. 이 땅의 골프 효시를 논할 때 애써 우리 것을 홀대하고 남의 나라의 것만 추켜세우는 사대적인 사고나 치졸한 이론에만 치우쳐 평가절하하거나 때로는 자기 과시욕도 지양해야할 태도라고 본다.

우리나라가 일백 년 넘은 오랜 골프 역사를 가졌다는 것은 다른 스포츠 역사에 비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일천한 타 스포츠의 노력에 비해 이 사회에 끼친 골프의 영향력은 홀대할 수만 없을 것이다. 민족사의 부침과 함께 끈끈히 이어온 골프의 생명력이 1800년도 말 원산코스를 시작으로 현재 500여 개의 골프장이 건설되고, 600여만 명을 헤아리는 골퍼가 이 땅에 정착하게 되기까지는 숱한 수난과 골프만의 매력이 있었을 것이다.

현재 ‘코리아의 1등이 세계의 1등(여자프로골프)’이라는 등식을 만들고 세계 골프계를 주도하는 위치다. 이러한 국가적 블루칩을 살려서 골프 한류가 이 나라의 국위선양에 큰 역할을 해나가고 있음을 인지하고 이를 활성화해가야 한다. 기록이니 구전이니 소모적인 논란보다는 한국골프의 올바른 방향 설정과 세계화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고 리드할 것인지에 힘을 합치는 게 미래 한국골프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경제성장의 상징성, 골프 룰 매너의 준수에 의한 사회 계몽성, 골프를 통한 한류의 씨앗, 골프를 통한 세계시민성 획득 등 골프가 주는 가치를 국력의 역량으로 증폭시켜야 한다. 한국 골프사(史)에서 고난과 역경의 길을 걸어온 선각자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향후 우리나라 골프의 사회적 역할론과 골프문화의 형성 그리고 건전한 발전의 길을 모색해야 할 계기로 삼아야 할 시기라고 본다.

초창기 국내 골프의 도입
우리나라에 골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880년대 영국인에 의해서였다. 1880년 원산항이 개항되자, 영국인들이 중국의 세관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1880년부터 1905년 사이의 기간 동안에 최초의 원산골프코스가 영국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세계 각지에 진출해 있던 영국인들의 생활 풍속상 거주하던 곳마다 반드시 골프코스를 두었던 점을 감안 한다면 앞에 말한 골프 역사는 타당성을 갖고 있다고 여겨진다. 한국과 일본의 골프역사의 시발점을 만들었던 영국인이 당시 한국의 관세징수사무를 맡게 된 과정을 확인하고 싶다면 일본관세협회 발행의 ‘세관백년사’를 방증자료로 제시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골프소사(小史)에 의하면 “구한국 정부시대에 외국인들이 개항도시인 원산의 세관구내에 6홀의 골프코스를 건설했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이곳 세관특구 주변에 거주하고 있던 마을노인들로부터 구전됐을 뿐이며, 또한 원산근교의 외인촌과 황해도 구미포에서 위와 비슷한 골프코스가 존재했지만, 한국인의 출입뿐만 아니라 일본인까지도 출입이 통제됐다고 했다. 그 후 원산이 시세의 확장에 따라 시가지 확장건설을 하게 되어 주택을 철거하던 중, 영국인이 살던 집 다락에서 낡은 골프채가 발견되어 구전되어오던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1897년 세관구내 해변에 조성된 골프코스는 일본보다 6년이나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 촌로들이 구전으로 전해준 말을 일본의 골프사학자의 기록에 남겼을 뿐이지만 당시의 원산골프장은 크게 화제를 모았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사료들은 전해 내려온 구전을 뒷받침 해 준다.

최근 골프계의 소장학자들에 의해 1913년도 구미포 외인촌의 휴양지를 비롯해 각각의 선교사 전용 골프코스들이 발굴되기 시작했다. 한국 골프 기원설의 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한 국사편찬위원회 강인구 편사연구관을 이처럼 구전에 의존하면서 사실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국골프 기원설은 향후 다각도로 검토되고 보완될 필요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원산해관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던 서구 외국인들에 의해 골프가 도입됐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골프코스의 위치를 전혀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충분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골프코스의 발전과정을 천착한 손환 교수는 우선 원산해관 기원설에 대해서, ‘한국의 골프도입은 19세기말이나 20세기 초 외국인에 의해 6홀의 코스가 원산세관구내에 만들어졌다고 추측할 수 있지만, 구전으로 전해질뿐 사실여부가 확인되지 않아 향후 검토할 문제’라고 잠정 결론을 내리고 그 기원설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 신문기사와 문헌자료를 찾아내 원산해관 골프코스 기원설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조상우 교수는 ‘한국 최초의 골프코스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외국인들에 의해 원산해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하면서 대한골프협회의 주장에 좀 더 비중을 둔다. 이러한 주장은 다카하다에 의해 <조선골프소사>에서 서술된 내용을 적극 해석하면서, 원산해관 골프코스는 원산해관이 개청되어 외국인 세관원들이 정착하여 생활하는 과정에서 도입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카하다의 원산해관 도입설’이라고 명명하는 결론을 제시한다.

조상우 교수의 ‘원산해관 도입설’의 주된 근거는 아직까지 원산해관 골프코스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 등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지만,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싱가폴, 말레이시아, 홍콩, 인도 등 아시아 주변 국가들의 골프 도입 과정을 봤을 때 원산해관이 설치되어 영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세관들이 거주하게 된 사회적 배경을 논거로 하고 있다.

결국 그 주장의 요점은 대한골프협회에 의해 시작된 최초의 한국골프코스로서 <원산해관 기원설>을 <원산해관 도입설>로 재정립한 점이다.

이들의 주장은 서양인들의 습성이나 당시 지역민들의 구전이나 클럽 발견 그리고 골프사가 다카하라의 기록 등을 근거로 원산코스에 대한 설득력은 있으나 구체적인 자료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볼 때 영국인들에 의해 들어온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누가 어떤 골프를 즐겼고 코스사정이 어땠는지 확실한 자료가 전수되지 못한 것이 흠으로 남는다고 피력했다. 그러나 이는 한국골프의 시원(始原)으로 오늘날 한국골프의 뿌리를 찾고 내일의 골프문화를 수립하는 토대가 되고 있다.

대신 손환, 조상우 교수 등에 의해 당시 발간된 신문이나 사료 등을 들춰 그 당시 이 땅에 들어 온 선교사들이 만든 골프코스를 발굴해 내면서 더 많은 골프자료들을 확보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들이 발굴한 자료를 보면 선교사들은 조선의 각 지역에 거주하며 그들의 종교뿐만 아니라 의료, 교육, 문화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생활양식도 전했다고 한다. 이들은 생활양식과 문화적 수준이 당시 조선과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에 낯선 땅에서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초기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은 조선에서 병을 앓거나 사망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에 따라 이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안식년을 갖거나, 일본이나 중국으로 휴양을 떠났다. 선교사들은 조선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지친 심신과 풍토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황해도 구미포, 원산 갈마반도, 지리산 노고단, 금강산 온정리 등에 그들의 휴양 시설을 만들며 부대시설로 골프장을 지었다. 이는 일본 골프사학가 다카하다의 기록을 반증한다고 조상우 교수는 논문에서 밝히고 있다.

현재 한국 골프계에선 원산해관 골프코스는 1900년 즈음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고 있는 형편이다. 자료상의 한계점 때문에 아직 최초 골프코스의 위치를 확정하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원산해관 골프코스에서 처음으로 영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이 골프를 했거나, 구미포 골프코스나 갈마반도 외인촌 골프코스에서 로스(J.B. Ross) 박사와 같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골프를 했을 것이라는 팩트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게 조상우 교수의 설명이다.

사실상 우리는 외국인 가운데 누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골프를 했을까 하는 문제보다는 최초의 한국인 골퍼는 누구일까 하는 의문에 더 주목하게 된다.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앞에 놓여진 2가지 전제조건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는 ‘원산해관 골프코스’ 또는 ‘갈마반도 외인촌 골프코스’가 위치했던 원산항이라는 공간이고, 또 한 가지는 골프에 남다른 조예를 갖고 있던 로스 박사가 원산에 체류하기 시작한 1901년이라는 시간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때, 그 장소에서 골프코스 또는 외국인 골퍼들을 접할 수 있었던 한국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고 조 교수는 제기했다.

정노천 기자  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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