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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골프역사 2회] 대한민국 골프 140년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우리 골프의 창세기 ‘원산코스’ 접근...22년간 원산해관 서구인들 위탁관리 정노천 기자l승인2021.01.06l수정2021.01.0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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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0년도 원산 시가지

[골프타임즈=정노천 골프칼럼니스트] 인간이 사는 어느 시대든 놀이는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하며 진행돼 왔다. 놀이는 소통과 공감의 자유의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인간의 삶이든 놀이 없이는 공동체 영위나 삶의 질을 쉽게 상승시키지 못한다. 놀이 행위는 소속감과 자아 정체성을 확보하는 동시 삶과 인간관계 형성을 꾀하는 유대감으로 승화된다.

당시 골프사가의 기록
국내 모든 골프사료들에는 국내 골프의 첫 시도가 업무상 1983년부터 조선에 체류하던 외국인 전용의 ‘원산골프코스’라는 데는 주저하지 않는다. 그 자료들을 무시하면 원산해관에 위탁 근무하던 영국인들의 골프행위는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골프코스가 골프의 바로미터다. 골퍼가 있다고 해서, 클럽이 있다고 해서만 골프행위가 이뤄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플레이 할 수 있는 골프코스라는 제1 기본 조건이 구비돼야 골퍼, 클럽(채)이 의미가 있고 플레이 3대 조건이 이루어진다. 그 조건을 충족해야 골프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한강 모래밭에 와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것을 보고서는 그곳을 골프장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면엔 골프채를 휘두르는 그는 충분히 다른 장소, 즉 골프장에서 골프를 하고 있는 골퍼임에는 틀림이 없다. 또 골프를 할 곳도 없고, 골프를 하지 않는 자가 굳이 클럽을 갖고 있을 필요가 있는가.

원산코스는 영국인에 의해 조성된 코스지만 원산해관 구내에 골프코스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는 못하리라 본다. 우리나라 골프사서나 골프사사에는 대부분 원산해관코스가 언급되는 사실은 이를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위의 기록은 1920년대 대한암흑기 한국에서 근무했고 경성골프구락부의 회원이었던 일본 골프역사학자 다카하리가 증언한 사료이다. 그가 자국의 1940년 골프지(誌)나 조선골프소사(小史) 등에 기고한 내용에 ‘한국은 일본골프보다 수년 앞섰고 또 1897년께’라고 기록한 것에서 우리의 골프연원을 추정하고 있다. ‘조선은 일본 골프의 발상지(發祥地)다’ 비교적 구체적인 내용이 1937년 일본인 골프사가(史家)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1897년판 신문지에 포장된 골프채 발견
1905년 청국에 위탁한 세관업무가 일본으로 이관되면서 서양인 관리들은 철수했고 훗날 일본인들이 원산(당시 元山府)시가지 확장작업을 하게 되어 해안선을 잇는 잡목산(雜木山)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던 세관원이었던 영국인 주택들을 철거하다가 다락에서 여러 개의 낡은 골프클럽(채)을 발견했다.

이 골프채들을 포장한 신문(당시 ‘한성순보’의 후신 ‘한성주보’와 ‘독립신문’ 발행)지의 발간 일자가 1897년 판이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미 1880년대 영국인이 이 땅에 들어 온 때부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골프가 이 땅에 도입된 것은 140여년에 가까운 셈이다. 그리고 '발견된 그 골프채는 조선 골프의 사적(史的)으로 보존돼야 마땅하다는 공론에 따라 현재(1940년대)도 원산의 몇몇 골퍼들이 보관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는 일본의 골프사가 다카하다(高畠種夫)의 기록이 있다.

후쿠오카현 출신의 상공인으로 동양연료라는 회사 임원이자 경성골프구락부 회원이었던 다카하다가 일본골프월간지 <월간 골프>에 발표한 글이다. 그에 의하면 1901년 일본의 고베(神戶) 록코산(六甲山)의 일본 첫 골프코스(6홀)보다 수 년 앞서 1897년께 조선의 동북부 원산항 근처 해변에 골프코스가 탄생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외국인 고문이었던 영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원산해관 6홀의 골프코스는 당시 조선의 관리로 고용돼 관세업무를 맡아 일하는 원산 해관의 영국인들이 해변 세관구내에 6홀을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고서(古書)와 구전(口傳)으로 미루어 보아 한국 땅에 골프를 선보인 것은 1883년부터 1900년 사이라고 추정된다. 굳이 일본 골프사가들이 한국골프의 연원을 자국인 일본보다 앞서 잡고 역사를 왜곡할 이유가 있는가? 만약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골프 발생의 시기를 자국보다 더 뒤로 늦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가(史家)의 위치에서 굳이 왜곡할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추정이다. 그런 만큼 사실 그대로 기록한 것이지 그걸 왜곡이나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했다고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라 본다.

1880년 조선은 서구열강들에 의해 원산항이 개항했고, 1883년부터 조선해관관리로 고용된 영국인들은 원산에 들어왔고 그들이 고국에서 즐기던 여가활동으로 만든 간이 골프장이 들어선 것이 1900년도쯤이라고 골프사가(史家)들은 말하고 있다. 당시 조선에 골프가 처음 선보였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며, 오늘날 골프장의 시조(始祖)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당시 세계 5대양 6대주에 펼쳐있던 영국의 식민지에 영국인은 가는 곳마다 그들의 운동인 골프를 즐겼다.

특히 영국 식민지였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인도 등에 100여 년이 넘는 골프장들이 로얄(Royal) 무슨 무슨 골프장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조계지인 원산 해관 구내 모래밭에서 간이식으로 코스를 만들어 공을 쳤을 것은 당연할 것이다.

1883~1905년까지 22년간 원산해관 서구인들 위탁관리
자국의 스포츠로 골프를 즐기던 영국인이 세관업무로 원산에 거주하면서 당연히 타국에서의 무료함을 달래느라 골프코스를 만들었으리라 본다. 개항된 1883부터 1905년까지 무려 22년 동안이나 이곳에서 근무했던 서양인들이니 말이다. 우리가 논밭에서 동네축구나 족구를 하듯이 그들도 해관구내 모래밭을 쓱쓱 다져서 코스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추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다만 우리 선조들은 모든 게 낯설었던 시절이니, 1980년대 이 땅의 골프는 외국인이 즐기는 유희(遊戱) 정도로 인식했을 것이다. 또 세계 각국에 영국인이 가는 곳이면 골프장을 만들어 골프를 즐겼다는 사실을 미루어 한국의 골프 역사가 어렴풋이 그로부터 140여년이 된다는 설(說)이 설득력을 얻는다.

1880년 원산항은 개항이 됐고 1883년부터 원산항에 해관이 생겼다. 당시 청나라와 일본이 한국을 집어 삼키기 위해 이 땅에서 팽팽히 견주고 있을 때다. 조선이 1876년(고종13) 일본을 비롯한 서양 열강들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면서 개항장이었던 부산, 인천, 원산 등을 통해 외국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외교, 통상, 선교, 연구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이 땅으로 몰려왔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요구에 의해 바다로 문을 열어야 할 지경에 처했다.

1876년 체결된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에서 부산·인천·원산의 3개 항구에 대한 개항이 결정됐다. 그러나 관세에 대해 무지했던 조선은 일본에 대해 무관세 무역을 허용했고, 이의 시정을 위한 노력 끝에 1883년 일본과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 및 해관세칙(海關稅則)’을 체결했다. 그 결과로 1883년 해관을 창설, 관세를 징수하게 됐다.

인천세관은 6월 16일, 부산해관은 7월 3일 비슷한 시기에 설치됐다. 골프와 관련이 깊은 원산해관은 1883년 6월 17일 창설됐고, 실제 관세징수 업무를 개시한 것은 11월 3일부터였다.

조선 조정에서는 해관의 업무를 청나라에 위탁했고 청의 세관업무를 주로 영국인, 독일인 미국인 등 서양인들이 맡고 있었다. 세무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은 세관업무의 관리를 맡아 상당수가 원산에 거주했다.

원산은 1883년부터 미국, 영국, 독일 등의 국적을 가진 해관의 세관원들과 청국, 일본, 러시아 군인을 비롯한 상사와 은행에 근무하는 외국 주재원들이 많이 상주하고 있었다.

해관 창설 당시 조선은 청국의 내정간섭 하에 있었고 해관의 출범 과정에서도 청의 영향력이 작용했다. 청국해관의 경우 수세(收稅) 업무를 담당하는 세무사를 외국인이 맡았는데, 조선 역시 해관 총책임자인 총세무사(總稅務司; Inspector General)로 독일인 묄렌도르프(1848-1901, P.G. von Möllendorf)가 1883년 부임했다.

멜론도르프는 조선의 독일인 외교 고문으로 한국명은 목인덕, 할레대학에서 법학과 동양어를 전공하고 청국 주재 독일 영사관에서 근무했다. 1869년 청의 세관리로 일하다가 리홍장의 추천으로 대한제국의 통리아문(參議), 협판(協辦)을 역임하면서 외교와 세관업무를 맡았다. 1883년(영국 조약) 일본은행에 해관세 수납업무를 위탁했고 1884년 갑신정변 때는 김옥균의 개화파에 반대, 수구파를 도왔다. 그는 조선의 역사에 조예가 깊었고 만주어에 능통했다. 

각 개항장의 세무사도 외국인이 맡았는데 원산 해관장으로도 묄렌도프의 측근인 영국인 라이트(T.W.Wright)를 추천해 앉히게 된 것이다.

원산해관의 형식적 책임자인 감리(監理)는 당시 덕원부사(德源府使)였던 정현석(鄭顯奭)이 겸직했다. 이러한 외국인 세무사 체제는 이후로도 계속되어, 2대 세무사로 1885년에 영국인 크리그(E.F.Creagh), 3대는 1889년 덴마크 출신 오이센(J.F.Oiesen), 4대는 서울의 총해관에서 근무하던 영국인 웨이크필드(C.E.S.Wakefield)가 1900년에 취임했다. 이후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해관 조직 역시 일본에 의해 장악되어 서양인 세무사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들은 이미 중국에서 골프를 접했던 이들로 그 클럽을 그대로 갖고 들어왔거나 본국에서 가져오기도 하면서 이 땅에 처음 골프를 시도하게 된 것이라고 골프사가들은 주장한다. 영국인 라이트는 원산 초대 해관장이 되면서 세계 어디를 가든 골프장을 만들어 자국의 놀이를 즐기며 향수를 달래던 습성대로 원산해관 내에 골프코스를 만들어 그들만의 놀이로 즐긴 것이다. 

정노천 기자  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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