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최금진 시인의 시집 『황금을 찾아서』
[골프타임즈=성아라 인턴기자]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모두 연금술사다. 가진 것들을 모두 ‘금’으로 환원하며 ‘금’만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것은 ‘꿈’과 ‘바람’ 이라는 연금술로 만들어진 가짜 금이다. 눈을 돌려보면 여기저기에 진짜 금을 가진 이들이 있다. 그들이 가진 진짜 금은 ‘가져야 할 것’ 이외에 ‘가지고 싶은 것’까지도 모조리 대령한다.
진짜 금이 불러오는 것들로 인해 그들은 풍요롭다. 진짜 금을 가지지 못한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다시 살아갈 에너지를 얻기 위해 ‘가지지 못한 자들’은 일종의 자기위로를 한다.
돈만 축내는 자식을 금쪽같은 새끼로, 바가지 긁는 아내를 금쪽같은 마누라로, 능력 없는 남편을 금쪽같은 서방으로 만든다. 점당 백원짜리 화투에 오르가즘을 느끼는(「그 먼 나라 – 어느 불행한 가족 이야기」) 최금진의 시 속 어머니처럼.
이 사회는 자본의 이름 아래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냈다. 금을 가진 자는 귀족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서민일 뿐이다. 노동자이며 시인인 최금진은 결코 금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진짜 금을 탐낼 수밖에 없다.
나에게도 금광이 있었으면 좋겠다
금지옥엽 길러서 금의환향하는 자식 생각과
적어도 금전 걱정은 없어야겠다는 새해의 새로운 각오를 파묻어둘
토요일마다 로또방을 기웃거리지 않아도 좋을
- 「황금을 찾아서」 중 발췌
진짜 금을 탐하는 사람은 시인뿐만이 아니다. 실업수당도 못 받은 개나리들이 대책 없이 황사 속으로 출근할 때(「원룸생활자」) 할머니는 평생 시장 좌판에서 기어다니고 (「광어」) 고진감래의 수많은 계단을 혼자 올라간 친구는 친구에게 다단계 판매를 한다.(「다단계 피라미드 사업을 추천합니다」) 아버지는 단벌 신사복 하나로 살아가고 (「바퀴라는 이름의 벌레」) 심지어 고모는 할아버지 화장터에서 금이빨을 주워가기도 한다. (「황금을 찾아서」)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무게를 가질 수밖에 없다. 때로는 그 무게에 짓눌리기도 한다. 제 몸에서 나오는 피고름을 맛보다 스스로 한 병의 독주가 되기도 한다. (「뱀술」)
시인은 이런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사여구나 수식으로 치장하지도 않고 희망이라는 포장지도 포장해주지도 않는다. 제 주변의 사람을, 그들이 하는 행위를,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자기 자신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행위에는 어떤 힘이 있다. 그저 ‘보는 것’과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 바라봄은 응시다. 응시에는 집중과 통찰의 의도가 있다. 이 의도는 아무 의미 없이 지나칠 수도 있는 일상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는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단순한 행위에도 만화책을 보는 행위에도 의미가 부여된다. 그래서 로또를 사는 지극히 평범한 행위에서도 시인은 삶의 의미를 발견해낸다.
왜 사는가, 왜 로또를 사는가, 묻지 말자
다만 살 뿐이다,
그러므로 로또를 안사는 사람들은 심각하게 죄질이 나쁘다
그게 비록 숫자일지라도
단 한 번도 뭔가에 평생을 걸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로또를 안사는 건 나쁘다」 중 발췌
사람들은 로또를 산다. 그 이유는 다만 ‘살기 위해서’다. 로또를 사며, 별 것 아닌 숫자일지라도 거기에 희망이라는 푼돈을 걸어가며 살 뿐인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순간을, 섣불리 감정이입 하지 않고 자기 눈으로 의미화하여 그려내고 있다.
최금진의 시는 착실하게 땅에 발을 디디고 있다. 그는 고매한 정치적 이론이나 사상, 학문적 담론을 가지고 시를 쓰지 않는다. 미학적 논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해서 쓰지도 않는다. 그의 시는 나에게서, 내 가족에게서, 내가 사는 곳에서 출발한다. 오랜만에 만나 주머니에서 만원짜리를 꺼내주는 고향 아주머니에게서 (「고향 아주머니」) 커서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가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아버지에게서 (「오래된 그릇」), 재기한 엄마를 찾아 가출했던 아홉 살의 길에서 시작된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자신만의 체로 걸러낸 이야기를 쓴다. 그래서 독자들은 ‘최금진의 시‘라는 지평에 발을 딛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읽으려고만 하면 딛은 발을 단단히 지탱해줄 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시 쓰기는 일종의 ‘기록하기’이다. 흔히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란 가진 자에 의해 씌여진 것이다. 승리한 자, 가진 자만이 기록된다. 금을 가진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기록에 남는다. 가지지 못한 자, 금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역사에서 제외된다. 그들은 그저 살다 갈 뿐이다. 그러나 가지지 못한 자들의 역사는 시 쓰기를 통해 남겨질 수 있다.
최금진의 시 역시 ‘가지지 못한 자들의 역사’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기억해줄리 없는 소시민의 역사를 시 속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나의 역사를, 내 가족의 역사를, 내 지역의 역사를 새로이 구축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진 것이 없는 소시민들은 로또를 사고 발품을 팔아가며 명함을 뿌리고 시간 외 근무를 할 것이다. 그들의 힘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혁명을 일으킬 순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사랑스럽고 눈물나게 열등한’ (「나는 만화책이다」) 얼굴을 내 아비의 얼굴, 내 어머니의 얼굴, 나의 얼굴이라고 말하는 최금진 같은 시인이 있는 한 말이다. 이것이 그 어떤 희망도 꾸며 말하지 않은 이 시집이 독자에게 주는 작지만 확실한 희망이 아닐까.
성아라 인턴기자｜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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