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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노마드] 2월 4일 기록의 날, ‘삼국사’ 편찬 872년 기념식

삼국사연구회, 우리역사교육원 3일 교육원에서 진행 정노천 기자l승인2018.02.04l수정2018.02.0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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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연구회 오재성 회장이 잔에 술을 채우고, 편찬에 참여했던 인물 중의 한 명인 정습명의 후손 정달화 선생이 초헌관이 되어 제단에 잔을 올리고 있다.

[골프타임즈=정노천 기자] 김부식이 삼국사를 편찬해 왕에게 올린 2월 4일을 우리역사에 대한 ‘기록의 날’로 선포한 뒤 2회째 기념행사를 가졌다. ‘삼국사연구회’와 ‘우리역사교육원’이 3일(토) ‘三國史(記)’ 편찬 872년을 맞아 편찬에 참여했던 김부식 등 14인에 대한 예를 올렸다.

‘삼국사연구회’와 ‘우리역사교육원’ 회원들은 서울시 동작구 동작대로 소재 우리역사교육원에서 2월 3일 토요일 오후 3시에 삼국사(金富軾撰三國史) 편찬 872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우리의 사서인 ‘삼국사’는 김부식을 비롯 11인이 함께 1135년에 시작 1145년 편찬을 마치고 1146년 2월 4일(음력 1145년 12월 22일) 왕에게 진상한 날자가 나오는 유일한 사서이다.

‘삼국사’는 인종(고려 17대)의 명에 따라 김부식의 주도하에 최산보(崔山甫)·이온문(李溫文)·허홍재(許洪材)·서안정(徐安貞)·박동계(朴東桂)·이황중(李黃中)·최우보(崔祐甫)·김영온(金永溫) 등 8인과 김충효(金忠孝)·정습명(鄭襲明) 2인의 관구(管句, 관리) 등 11인의 편사관에 의해서 편찬됐다.

이들 편찬인들은 독자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김거두, 최득경, 민개 등이 재판(再版) 작업이 있어 오늘날 이 책이 전해 올수 있게 된 점을 들어 편찬에 참여한 14인의 선조들에게 예를 올리는 두 번째 행사를 가졌다. 이들 중 정습명의 후손인 정달화 씨가 초헌관이 되어 술을 올렸다.

이어 오재성 소장의 '세계사적으로 본 천년을 기록한 유일한 사서 삼국사'란 주제로 '김부식찬삼국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대한 발표도 진행했다.  

‘三國史’는 해모수(BC239년)부터 경순왕(AD936년)까지 기전체로 우리역사를 나타낸 김부식 편찬(金富軾撰)인데 본기 28권(고구려 10권, 백제 6권, 신라·통일신라 12권), 지(志) 9권, 표 3권, 열전 10권 등 총 50권으로 구성돼 있다.

이 책은 이들 편찬자가 독단적으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고기(古記)』·『삼한고기(三韓古記)』·『신라고사(新羅古史)』·『구삼국사(舊三國史)』와 김대문(金大問)의 『고승전(高僧傳)』·『화랑세기(花郎世記)』·『계림잡전(鷄林雜傳)』 및 최치원(崔致遠)의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 등의 국내 문헌과 『삼국지(三國志)』·『후한서(後漢書)』·『진서(晉書)』·『위서(魏書)』·『송서(宋書)』·『남북사(南北史)』·『신당서(新唐書)』·『구당서(舊唐書)』 및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의 지나(중국)문헌을 참고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이 때 책임 편찬자인 김부식은 진삼국사표(進三國史表), 각 부분의 머리말 부분, 논찬(論贊), 사료의 취사선택, 편목의 작성, 인물의 평가 등을 직접 담당했다.

“11명이 왕명을 받아서 국가차원에서 기술한 ‘삼국사’가 개인이 쓴 ‘삼국유사’보다는 비교적 객관적인 사료를 기술해 우리역사의 팩트에 가깝다‘고 오재성 삼국사연구소장은 주장했다.

한편 삼국사(三國史)는 1908년 이전은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아니라 <삼국사(三國史)>로 표기 됐었다. 그러다가 1909년 일본인 䆁尾春芿이 표지를 ‘三國史記’(중앙도서관)라고 출판한 이후 坪井九馬三이 1913년(중앙도서관)에 ‘三國史記’를 표지로 출판했다. 靑柳綱太郞이 1914년에 原文和譯對照 ‘三國史記’(중앙도서관)라고 하여 ‘三國史記’가 출판됐다. 신활자로는 조선인이 출판한 것은 최남선이 1914년에 ‘三國史記’(고려대도서관)라는 표지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출판했다. 다시 책 이름을 복본(複本)하여 2014년 삼국사연구회 오재성 회장이 ‘三國史’라는 표지제자로 수정 출판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문화재청에 보물로 지정된 명칭을 삼국사(三國史)라는 본래의 표지제로 환원하여 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나 난색을 표하고 있고, 역사학자들은 관심이 없다”고 오학림 우리역사교육원 교수는 정부의 인식부족과 무관심을 질타했다.

정노천 기자|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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