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부부싸움의 원인은 닭 인형이었다.

이남일녀 중 큰 아이가 시집가자 녀석의 방을 서재 핑계로 내가 차지하면서 시작된 충돌이었다. 안방과 거실, 아이들 방에 흩어져 있는 책을 서재로 옮길 때부터 아내는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방 하나를 형제가 같이 쓰고 있었는데 누나가 결혼하면 작은놈이 쓰기로 이미 밀약 돼 있었다.

“인정할 수 없어. 가장이 모르는 밀약은 당연히 무효지.”

미리 준비했던 ‘묵언 수행’이란 팻말을 방문에다 붙였다. 아내와 두 녀석에게 항의할 틈도 주지 않으려고 우선 형제 방에 있는 책부터 옮겼다.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책을 옮기게 하는 명령도 빠뜨리지 않았다. 기습 작전에 손쓸 사이 없이 진지를 빼앗긴 세 사람은 꼼짝없이 일손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아내의 ‘이건 아니다’라며 옆구리 찌르는 뒤늦은 반격을 눈 부라림으로 무시했다. 그날 저녁 식탁에서 못 박았다.

“묵언 수행 방을 노리는 신하는 역심으로 엄히 처벌하겠다. 명심하렷다.”

대학 삼 학년의 장남이 쿡쿡 웃었다.

“잘하셨어요. 그 방에서 좋은 글 많이 쓰세요.”

고등학교 삼 학년 차남이 형의 말에 오만상으로 투덜거렸다.

“형! 우리 한 팀 아니야? 그리고 엄마는?”

“아우님! 왕께서 역심이라 하셨다. 그만 욕심을 접으시게.”

아내는 두 아들의 대화에 귀조차 주지 않았다. 말없이 밥그릇을 비웠고, 설거지했다. 여느 때처럼 소화에 좋다는 오디 차도 주지 않았다. 쌩쌩 찬바람이 불지는 않았지만, 무거운 표정에서 앞으로의 상황 전개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누나가 결혼하면 그 방을 막내에게 주기로 했는데 남편이란 사람이 가로챘으니 심기가 좋을 리 없었다. 애들 앞이라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으나 곧 보복 조치가 있을 것이다.

“미안해요. 당신 처지가 난처해졌다는 거 잘 아는데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갑시다.”

아내는 잠자리에서의 등 돌림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가족들의 막내 사랑은 철칙과 같았다. 선천적 심장 질환으로 여러 차례 위험한 고비를 넘긴 까닭도 있지만, 녀석의 곰살가운 말솜씨에 가족 모두가 꼼짝없이 넘어갔다.

“이게 다 당신을 위해서야.”

“…….”

“내가 새벽까지 글 쓸 때마다 당신은 이불을 뒤집어썼잖아. 불빛과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 때문에. 이제는 편하게 잠잘 수 있게 됐으니 고마울 줄 알라고.”

말도 안 되는 변명에 위로였다. 그러나 조금은 맞는 말이었다. 언젠가 컴퓨터를 거실로 옮기면 안 되느냐고 은근히 밀어붙인 적이 있었다. 잠귀가 유난히 밝아 깊은 잠을 잘 수 없으니 이해해 달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그것은 아내 스스로 포기했다. 한밤중 당신이 옆에 없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고 했다.

“걱정하지 마. 서재에서 밤새워 글 쓰는 일은 없을 테니까.”

등 돌린 아내의 어깨를 토닥이며 큰애 방 점령의 기습작전을 마무리 지었다.

일요일 새벽, 일찌감치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묵언 수행 서재로 들어갔다. 비워놓은

책장 두 개에 닭 인형을 빼곡하게 채웠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남아 있는 인형이 라면상자로 두 개나 됐다. 더는 아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했으나 어쩔 수 없이 책장 두 개를 사기로 했다.

“엄마!”

닭 인형 정리가 끝날 무렵 방으로 들어왔던 작은아들이 문을 연 채 엄마를 불렀다. 어찌나 다급하게 외쳤던지 아내가 한순간에 달려왔고, 이어 큰아들도 뛰어왔다. 세 사람은 묵언 수행 방 정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컴퓨터 위와 책상의 작은 공간은 물론 다섯 개의 책장 중 세 개에 닭 인형이 진열돼 있었다. 방바닥에는 책장에서 꺼내놓은 책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조용히 글 쓰는, 책을 읽거나 명상하는 서재로 사용하겠다던 큰소리와는 달리 크고 작은 닭 인형의 전시장이 된 광경에 세 사람은 멍한 표정으로 서 있다 말없이 돌아섰다.

“잠깐! 내 말 좀 들어 봐”

이번에는 내가 다급하게 가족을 불러 세웠다.

“난 말이야. 저 인형들이 있어야 글이 잘 풀려. 그러니까 내 말은 저 닭들은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는 거지. 적어도 내게는 글의 샘터와 같은 거, 그런 거라고.”

아내가 먼저 고개를 저었다. 형제가 기막히다는 표정으로 고개까지 저으며 뒷걸음으로 자기들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의 소파에 무너지는 아내 앞으로 다가가 양손을 허리에 짚고 짐짓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

“애들은 그렇다고 해. 전업 작가는 아니지만, 글 쓰는 남편을 자랑하고 다닌다면서 지금의 당신 그 표정은 뭐야? 마치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본 것처럼 충격에 절망적이잖아. 도대체 뭐가 문제야?”

아내는 아예 눈을 감았다.

“아들 두 녀석은 한방을 써야 형제애가 깊어진다고 한 것도 당신이야. 또…….”

당신이 이미 허락했잖아. 큰애 시집가면 그 방을 내가 서재로 쓰겠다고 말했을 때 알아서 하세요, 한 게 누군데? 그런데 인제 와서 왜 딴청이냐고 따지려다 입을 다물었다. 자칫 책임 추궁처럼 들린 우려가 있었다. 그냥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 물꼬를 찾아야 하는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인제 와서 막내 녀석에게 주겠다고 양보 수도 없는 상황이라 묵언 수행 방으로 들어가 책을 한쪽에 쌓아놓았다. 어차피 쏟아진 물이니 시간을 두고 해결하기로 했다.

“아빠! 죄송해요.”

일요일 점심은, 손님이 와도 늘 분식이었다. 칼국수가 차려진 식탁에 앉기 전에 작은 녀석이 계집애처럼 생긋이 웃으며 말했다.

“뭐가 죄송해?”

“누나 방 탐낸 거요.”

“그래? 나도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좋은 글 많이 쓰시고, 올해는 책도 내세요. 아빠!”

“저도 기대합니다. 아빠 수필집이 나오면 제가 제일 먼저 살 겁니다.”

큰 녀석이 동생의 말을 거들었다. 서먹서먹했던 식탁 분위기가 한순간에 화기애애해졌지만, 아내의 표정은 아니었다. 여전히 냉랭했다. 곱지 않은 눈길에 애들 없을 때 봅시다는 암시가 역력했다. 단순히 방 문제만 아닌 듯싶었다. 이참에 그동안 참았던 불만을 다 터트리겠다는 시퍼런 기세에 은근히 긴장됐다. 아내는 묵언 수행 방에 얼씬하지 않았다. 형제가 친구 만나러 나가자마자 아내의 거실로 나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미워도 남편이니까 커피는 드릴게요.”

가시 돋친 아내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빙그레 웃었다. 부부싸움을 해도 밥상은 제때에 차리고, 잠도 한이불 속에서 자고, 애들 앞에서는 절대로 내색하지 않는다는 아내의 세 가지 원칙을 잘 알고 있어 태연스럽게 마주 앉았다.

“할 말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더는 방 얘기 하지 맙시다. 아이들도 다 이해했으니까.”

아내가 가는 눈을 했다. 드디어 공격이다. 아내의 화 난 말에는 대꾸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자칫 실언이라도 하면 꼼짝없이 당한다.

“당신은 날 사랑하긴 해요?”

예상치 못한 뜻밖의 물음에 머릿속이 하얀 안개로 가득 찼다. 뭐지? 이 질문은. 무엇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세상에! 아버지라는 양반이 막내아들이랑 방 다툼을 해요?’ 라고 질책할 줄 알았는데 빗나갔다. 느닷없이 사랑하느냐고 묻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공연히 계산하지 말고 솔직하게 대답해요. 나 사랑해요?”

“무슨 질문이 그래? 자기 마누라 사랑하지 않는 남편도 있나?”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고요?”

“그럼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믿는 거야?”

아내의 말에 화가 났다.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쓸데없는 말, 더 듣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일어서자 아내가 또박또박 말했다.

“선택하세요. 둘 중의 하나, 정말 사랑하는 것을.”

둘 중의 하나? 이것은 또 뭐지? 소파에 다시 앉았다. 가볍게 넘길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에 한숨부터 터졌다. 도대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니 무슨 뜻이냐고 물으려는데 아내가 먼저 중국 고사를 들먹거렸다.

“계희라는 왕비가 있었어요.”

제나라의 한 왕이 암탉을 유난히 좋아했다. 왕비는 자기보다 암탉은 더 사랑하는 왕이 미웠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어 속만 끓였다. 그러자 한 궁녀가 닭을 없앨 수 있는 묘책이라며 동물 조련사를 데려왔다. 왕비는 조련사를 왕에게 천거하여 암탉을 돌보게 했다. 몇 개월이 지나자 암탉은 왕의 말을 듣지 않고 조련사의 어깨에서 내려오지도 않았다. 이에 화가 난 왕은 암탉과 조련사가 눈이 맞았다며 두 목숨 모두 참수형에 처했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현명한 선택을 하세요.”

“닭 인형을 선택하면?”

“글쎄요?”

“당신을 선택하면?”

아내의 대답을 듣기 전에 웃음부터 터졌다. 닭 인형 수집에 빠지면서 아내는 뒷전이었다. 아내의 생일도, 결혼기념일도 까맣게 잊고 어렵게 구한 닭 인형을 자랑하기 일쑤였다. 그것이 몇 년째 계속되자 마침내 아내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사실 글을 쓰기 위해 방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닭 인형을 진열하고 싶은 욕심이 먼저였다. 아내에게 사과하려는데 처벌이 먼저 떨어졌다. 참수형이나 다름없는 묵언 수행 서재로의 유배였다.

“두 번 다시 안방으로 들어올 생각 마세요.”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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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은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및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 문학 파란풍경 마을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