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없음(사진 유튜브 화면 캡처)

공중파채널에서 방영중인 연속극은 재미와 인기는 식상하고 작가의 사단이라는 배우들의 조합 또한 그 나물에 그 밥... ‘인생=연극, 연극=인생’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요 며칠 장마가 주춤하고 폭염이 이어집니다. 한낮 무더위가 선풍기로는 속수무책이라 냉방기에 의존하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아내는 시원한 거실에 아예 자리를 펴고 누워 밀린 TV연속극을 보기 시작합니다. 내용이 터무니없다고 투덜대도 자신은 재미있다며 싫으면 낮잠이라 자라고 어깃장을 부립니다. 오늘은 연속극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지상파TV는 마치 드라마전문채널 같습니다. TV를 켜기만 하면 연속극입니다. 아침에도 연속극을 방영하고, 오후엔 재방송을 하고, 초저녁에는 일일연속극을 심야에는 월화드라마니 수목드라마니 주말드라마니 하면서 매일 연속극을 방영합니다. 지상파TV 3사가 모두 거의 같은 시간대에 연속극으로 시청률 경쟁을 하다 보니 시청자는 선택의 여지없이 연속극을 봐야할 경우가 많습니다.

필자도 거의 연속극에 중독되었다시피 합니다. 밤 10시만 되면 어김없이 연속극을 봅니다. 시험기간에 학생들과 주요 학습내용을 점검하는 인터넷카페의 단체대화방도 반드시 심야 연속극이 끝나는 시간에 엽니다.

필자가 연속극을 보는 포인트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슬픈 장면이 나오면 몰두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데 솔직히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문제는 요즘 부쩍 눈물을 훔치는 횟수가 잦은데, 아내는 옆에서 나이가 들어 여성호르몬이 많이 배출되어 그렇다고 놀립니다.

다른 하나는 스토리의 진행과 배우의 대사를 미리 맞추는 재미입니다. 연속극 진행이라는 것이 대체로 천편일률적이어서 시청자로서의 오랜 내공이 쌓이다보니 극의 진행 모식이 한 눈에 파악됩니다. 필자의 통찰력에 탄복한 딸이 엄지를 추켜세울 때마다 필자는 명색이 문학박사 아니냐며 어깨에 힘을 줍니다.

필자의 연속극 중독증은 타이완유학시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80년대 당시 타이완의 주말은 홍콩작가 김용(金鏞)의 무협소설을 드라마화한 무협극이 안방극장을 점령했습니다. 처음에는 타이완을 비롯한 중화권 지역의 연속극은 TV화면에 자막이 나와 중국어를 익히려고 보게 되었으나 차츰 중국어배우기는 뒷전이고 무협극의 재미에 마냥 빠져들었습니다.

집집마다 삼삼오오 모여 열광하느라 거리에 차가 다니지 않을 정도로 시청률이 90%를 상회했으니 대단한 열풍이었습니다. 그리고 평일은 타이완의 여류작가 충야오(瓊瑤)의 연속극 천하였습니다. 매회 충격적인 내용을 극단(極端)에까지 끌어가는 극본과 자극적인 대사, 단골여자주인공 류쉐화(劉雪華)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연기, 그야말로 이른바 막장드라마의 전형이었는데도 중독성이 강해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유학에서 돌아오니 우리나라에도 충야오 못잖게 중독증 강한 드라마작가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김수현 작가였습니다. 빠르고 톡톡 쏘는 대사는 맛깔나게 현대적인 감각을 유지하였고, 향수를 자극하는 대가족제도를 기반으로 당면한 사회이슈를 발 빠르게 살짝살짝 건드리는 작가정신도 살아 있었습니다. 가령 처가살이, 동성애, 연하연상커플이야기는 당시로서는 드물거나 금기시되는 주제라서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무엇보다 난무하던 막장드라마에서 작가의 드라마는 비교적 한발 비껴나 있어 좋았습니다. 주말은 김수현 작가가 있어 행복했습니다. 그런 김수현 작가가 이젠 시쳇말로 맛이 갔습니다. 목하 한 공중파채널에서 작가의 연속극이 방영중인데 재미는 물론이고 인기가 예전만 못합니다. 이른바 작가의 사단이라는 배우들의 조합이 그 나물에 그 밥입니다.

베테랑다운 열연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김수현표 연기를 판에 박은 듯이 반복해 구태의연합니다. 오히려 오락채널 tvN에서 최근 종영한 연속극에서 노배우들의 농익은 연기가 빛났던 것과 너무 대조적입니다. 작가의 극본이 배우의 연기를 지나치게 제한한 탓으로 보입니다. 젊은 배우의 연기는 더욱 가관입니다. 면면은 새롭지만 모두 빠른 대사에 허덕이느라 연기가 실종되었습니다. 마치 국어책 빨리 읽기 시합을 구경하는 듯합니다. 도무지 연기할 공간을 주지 않고 그저 빠른 대사뿐이어서 귀가 따가울 지경입니다. 작가는 이제 드라마의 여백미를 포기하였나 봅니다.

내용도 문제입니다. 작가의 줄기찬 대가족이야기가 이제 지겹습니다. 시대와 동떨어지게 다분히 작위적입니다. 무엇보다 극을 이끌어가는 이야기의 큰 줄기가 없습니다. 자잘한 일화의 나열에 그치면서 차남 결혼문제가 힘겹게 이야기를 견인합니다. 드라마마다 기승전결의 결이 왜 결혼인지, 식상합니다. 동력이 떨어진 드라마에 그나마 작가의식을 발현한 것이 노인봉양문제입니다. 하지만 능력 있는 노인네의 자발적인 분가는 서민의 입장에선 보면서 되레 강 건너 동네일입니다.

공감은커녕 보면서 화가 치밀기도 합니다. 의사를 아버지로 둔 아들들이 결혼하면서 집안이 처진다며 사돈될 집에서 강하게 반대합니다. 의사집안조차 결혼반대사유가 된다면 일반 서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구름 상층부의 인사들과 왕래하다보니 의사 정도는 눈에 차지 않는 부르주아작가를 보는 듯해서 입맛이 씁니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연속극치곤 시청률이 매우 낮습니다. 공감이 결여되면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대사도 약발이 먹히지 않는가 봅니다. 이를 만회하려고 시한부 생명과 출생의 비밀이 나오지 않아 그나마 다행입니다.

중국어에 “인생은 연극 같고, 연극은 인생 같다(人生如戲, 戲如人生)”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소설을 통해서도 인생을 간접 경험하지만, 인생과 같은 드라마를 통해서도 인생을 간접 체험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연속극을 통해서 가끔 인생의 깊은 철리(哲理)를 깨닫기도 하고, 극 속의 희로애락에 동화되어 웃고 울면서 감정을 정화하기도 합니다.

이번 주는 재미난 연속극에 빠져 여름밤의 무더위를 날리시길 축복합니다. 한류드라마 왕국에서 마음에 드는 연속극 한 편 정도야 왜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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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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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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