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챔피언 인생론 1회 보러가기

[골프타임즈=정노천 기자] 자기불신을 버려라. 자기불신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나는 그날의 토너먼트에서 나 자신에 대해 조금도 불신하지 않았다. 아놀드 파머는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이긴 했으나, 처음으로 출전한 그 US오픈에서는 프로로서 꺾어야 할 또 한 사람의 선수였을 뿐이었다.

나는 그를 이길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최선을 다해 플레이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샷 하나 하나를 치는 매순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전력을 기울려야만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놀드 파머는 그 첫 이틀 동안 나를 조금씩 앞서갔으나 서로 다른 동반선수와 라운드 했던 3일째와 4일째 내가 그 격차를 메워 283타로 동점을 이루며 경기를 마쳤다. 즉 18홀 연장전을 치러야 한다는 의미였다.

원칙적으로 연장전은 매치플레이로 끝나게 된다. 연장전은 마지막 홀까지 이어졌다. 18번홀에서 내가 2타 앞서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마지막 그린에서 아놀드가 내 볼마커를 집어 올려 나의 승리를 인정했다. 대단히 친절한 행동이었지만, 스트로크플레이였기 때문에 끝까지 퍼팅을 해야 했다. 나는 퍼팅을 했다. 그리고 타이틀은 내 차지가 되었다.

결국 자신에 대한 믿음이 이겼다. 인생에서 승자가 되려면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같이 단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마음의 힘을 달리 말하자면, 바로 마음가짐이다. 마음가짐은 아무리 혹독한 시련이 와도 헤쳐 나가는 힘이 되어, 결국엔 성공의 기쁨을 누리고 시련에 휩쓸리지 않도록 해준다.

마음가짐을 긍정적으로 유지하려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힘써야 한다. 하는 단 한 번도 '난 이길 수 있다, 어느 누구와 상대해도 꺾을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린 적이 없다. 그러한 믿음이 항상 우승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믿음이 정말 했던 일은, 나를 항상 물러서지 않게 해준 것이었다. 그래서 성적이 계속 부진할 때도 이렇게 생각하게 해주었다. "언젠가 때가 올 거야. 나는 다시 이길 거야." 그러한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메이저대회 18승과 통산 100여 차례의 토너먼트 우승을 일구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60대로 접어든 지금까지도 골프 토너먼트에 나가면 이런 질문들을 받는다.

“여긴 왜 나오셨습니다.”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기려고 나왔죠.“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과 환경에 놓여도 마음가짐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토너먼트 마지막 날에는, 강한 의지를 유지하고 자신에 대한 신념을 계속 지킬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내가 토너먼트에서 그렇게 많은 승리를 거두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즉 다른 선수들이 나의 플레이에 신경 쓰느라 주의가 산만해(혹은 내 명성에 주눅 들어) 있는 동안, 나는 플레이할 홀이 남아 있는 한 이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신념으로 다른 선수들에 대해선 일체 마음 쓰지 않고 경기에만 열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내 경쟁자들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했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 생각은 이렇다. 정말로 할 수 있다고, 즉 이길 수 있다고 믿으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더 잘하고 있어서 자신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정말 그 생각대로 되고 만다.

승리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은, 가장 높은 산에 오르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절대적으로 믿으면서 첫걸음을 뗀 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산을 올라야 한다. 그리고 정상 앞의 마지막 발걸음을 떼면서는 그러한 믿음을 더욱 더 활활 불태워야만 한다.

승리하는 법을 터득하고 나면, 이제는 승자의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위해 다음의 네 가지 자질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이를󰡐위인의 4대 원칙󰡑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1.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명료하게 생각하는 능력
스트레스와 긴장은 자칫 정신력을 흐려, 샷을 구상하거나 칠 때 실수를 유발한다. 내가 골프를 잘 하는 가장 큰 원인을 꼽으라면, 경쟁 열기가 아무리 뜨거워도 당장 눈앞에 있는 일에만 온정신을 쏟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2. 인내심
성급함은 경솔을 낳고, 경솔할수록 그만큼 분명하고 냉담하게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요즘 개인생활이나 사회생활의 방식은 우리를 점점 인내심이 떨어지게 몰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인내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굴면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없다.

3. 자기집중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는 관심을 끊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온 신경을 모으라는 얘기이다. 다른 사람이 뭘 하는지 안 하는지 신경 써 봐야, 쓸데없이 주의가 산만해지고 에너지만 낭비하게 된다.

4. 어려울 때 더욱 더 정진하기
일이 안 풀릴 때는 더욱 더 열심히 하는 게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기댈 가족이 있다는 것은 인생의 압박에 대처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내 생애를 돌아볼 때면, 골프 경기를 골프 코스에 그대로 남겨두고 올 수 있게 해준 이들을 가족으로 두어서,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예전에도 집에 돌아오면 내가 어느 대회에서 어떻게 플레이했는지에 대한 대화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럴 수 있었던 한 가지 이유는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가 다 자기들 일도 너무 바빠서 아빠의 경기를 분석해 줄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골프를 하는 아들들에게서 이따금 조언을 얻기는 했고, 그러한 조언 덕분에 더러 큰 덕을 본 적도 있다. 1980년 미 PGA전에 재키가 내 퍼팅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지적해 주었을 때도 그러한 경우다. 그 해 나는 US오픈 우승 후로 퍼팅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는데, 재키의 조언 덕분에 PGA 5번째 우승을 따낼 수 있었다.

집에서 골프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던 또 한 가지 이유는, 아무리 배우자나 부모라도 자신의 일과 관련된 문제나 고민을 나머지 가족들에게까지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어 왔던, 나의 신념 때문이었다.

나의 골프 경기는 내가 클럽을 담은 골프 가방의 뚜껑을 닫는 순간, 대화 주제로서는 싹 잊혀진다. 이렇게 일과 가정생활을 구분할 수 있었던 덕분에, 프로 초기 시절 집에 있는 동안 늘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뇌를 몇 개의 구획된 저장소로 나누어 써야 한다는 존 박사의 생각이 마음에 든다. 도저히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걱정거리가 있다면 그 안의 조그만 칸에 가두어 놓아라. 그러면 굳이 끄집어내지 않는 한 다시 괴로워질 일은 없을 테니까.

나는 일을 즐긴다. 특히 골프 코스 설계하는 일은 즐기는데, 골프에서 기분전환이 되기도 하지만 골프 외의 다른 것을 통해 두뇌를 한계 이상 자극하고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일단 가족, 골프, 그리고 일에 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나면, 홀가분하게 낚시도구, 사냥장비, 테니스 라켓이나 스키 등을 챙기고 나가서 즐긴다. 그렇게 즐길 자격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즐기면 시야와 삶의 속도에 커다란 변화가 오고 원기를 많이 회복할 수도 있다.

고관절 교체수술을 받았던 해인 1999년을 떠올릴 때면, 다시 경기를 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을 불러일으키느라 무척 애쓴 기억이 난다. 1월에 수술을 받았는데, 다소 흥미롭게도 벌써 4월에서 5월에는 골프를 다시 칠 수 있을 만큼 몸이 회복되었다. 마침내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그러면 이제 골프 토너먼트에 못 나갈 이유도 없잖아?” 그래서 정말 그렇게 했다. 수술을 받은 지 채 5개월도 안 되어서 나는 시니어 토너먼트, 메모리얼 토너먼트, 그리고 US오픈에 참가했다.

US오픈에서, 내 스윙은 정말 형편없었다. 50～60야드(46~55미터)를 쳐서 예전에 가볍게 이기던 선수들에게도 뒤졌다. 그래서 다른 선수들이 7번과 8번 아이언으로 플레이를 할 때 나는 2번과 3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해야 했는데,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경기하는 게 즐거웠다. 집에 가만히 앉아서, 최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겠다고 자신을 타이르며 다시 필드에 나갈 날만 기다리고 있느니, 그 편이 훨씬 나았다. 의사는 체력이 못 받쳐 줄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다시 예전처럼 플레이를 하고 싶었다.

1999년 6월 결국 포드 시니어 챔피언십에 참가하기 위해 미시건주 디어본에 갔다. 내 골프 경기가 아직 썩 좋지는 않았으나,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 계속 열심히 하면 다시 예전처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무리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너무나 골프를 치고 싶었다.

디어본에 가서 연습을 시작하면서, 내가 자신을 너무 혹사시킨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를 악물고 대회를 포기했다.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정말 그런 결정을 내리긴 싫었지만 나의 두 번째 규칙, 󰡐인내하라󰡑를 상기했다.

문제는 지구력이 약해졌다는 것이었다. 담당의사는 마취제 때문에도 그렇고 근육위축 같은 다른 고통 때문에도 6개월이 지나야 지구력이 생길 거라고 말했다. 이따금 한두 차례 샷을 쳐보면서 󰡐아주 좋은데󰡑라고 말하다가는 불쑥불쑥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 한 시간 후에는, 좀 더 좋은 샷을 기어코 쳐내곤 했다.

그리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으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가서 한번 시도해 보는 게 그래도 더 나았다. 그러면서 예전과 같이 플레이할 수 있으려면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고관절 수술로 전에는 누리지 못했던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그 회복기간 동안 계속해서, 아니 매일매일 여러 가지를 발견해 냈다. 스윙을 하면서 그 동안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그렇게 많았는지 놀라웠다. 예전에 어떻게 했는지 기억해 낸 다음, 힘이 생기면 다시 해볼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 거의 매일 떠올랐다. 그 방식이 골프 코스에서 진짜 해볼 만한지 알아보기 위한 시험의 단계도 거쳤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온힘을 다하면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잃어버린 기술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가로막을 수 없다는 마음가짐 덕분이었다. 그러한 과정은 때때로 좌절감을 안겨 주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론 즐거운 경험이기도 했다.

디어본에서라면 충분히 해볼 만할 것 같았다. 그곳은 다루기가 아주 쉬운 골프 코스이지만, 갔다가 부딪치게 될 기자들에게 일일이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사실에 직면해야 했다. 그 점을 생각해도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누구든 나와 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에게는 고관절 교체수술을 권하고 싶다. 수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10배쯤은 쉬웠다. 수술 받기로 결심하면서, 수술 그 자체보다는 감염에 대한 우려가 더 컸다. 그래서 감염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수술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간 곳이 뉴잉글랜드 침례병원으로, 아주 깔끔한 곳이었다. 의사도 훌륭했고, 직원들도 아주 좋았다. 기껏해야 일주일을 불편하게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하다면, 마취를 받고 싶지는 않다. 마취를 받아야 한다면 전신마취 말고 차라리 국부마취, 즉 척추마취를 받겠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몇몇 사람들만 전신마취가 필요한 것 같아서이다. 의사들은 국부마취로 수술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환자가 원한다면 해줄 것이다. 마취에 의식을 잃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마취가 다 풀리려면 6달이나 심지어는 1년이 걸리며, 특히 나이가 조금이라도 더 많을수록 오래 걸린다고 말한다. 나의 경우도 수술 후 6개월 동안은 몸이 참 둔했던 기억이 난다. 복수 근육을 사용할 수 없었는데, 기분은 나쁘진 않았지만 가만히 앉아 있다가 뭔가를 하면 이런 말이 튀어나오곤 했다. 󰡐내 몸이 맞긴 한 건가?󰡑

하지만 현재 다시 튼튼해지고 건강이 좋아졌으며, 예전만큼 멀리 골프공을 칠 수도 있게 되었다. 험난한 길이었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마음가짐 덕분이었다. 요즘 누군가 다시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그럼요󰡑라고 답한다.

그러면 이렇게 물을 지도 모르겠다.

"언제요?"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올해요."

내 몸이 남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한, 당분간은 매년 그것이 내 대답이 될 것이다.

정노천 기자｜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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