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호원들이 손전등을 가지고 공을 찾아야 할 만큼 골프를 즐겼던 월슨, 달밤에도 골프를 즐긴 진정한 골프광이었다.

콩그레셔널CC는 백악관과 근접해 대통령들이 주로 이용, 대통령 전용 객실도 갖춰 사람들을 피하고 싶을 때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비밀 통로도 있었다고...

[골프타임즈=안문석 작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골프를 많이 친 대통령은 우드로 윌슨이다. 재임 8년 동안 1,200번 정도 골프를 쳤다. 2~3일에 한 번은 골프를 친 것이다. 눈 오는 날에도 빨간 공을 가지고 골프를 쳤다.

요즘처럼 잘 나온 컬러볼이 아니라 경호원들이 하얀 공에 빨간 칠을 한 것이었다. 아무리 컬러볼을 사용한다 해도 눈이 내린 코스에서 공을 치다 보면 공을 잃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경호원들이 바빴다. 윌슨은 심지어 밤에도 골프를 했다. 요즘처럼 조명이 잘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역시 경호원들이 수고할 수밖에 없었다. 경호원들이 손전등을 가지고 공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새벽 5시까지 골프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기록이 얼마나 되었을까? 최소한 250타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

윌슨은 밤에도 골프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는데, 그즈음 실제로 볼 만한 달밤 골프 시합이 열리기도 했다. 영국에서 있었던 유명한 시합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영국 골프는 존 볼(John Ball)이 주름잡고 있었다. 영국 아마추어 선수권을 여덟 번이나 우승했고, ‘디오픈(The Open)’에서도 우승했다.

존 볼은 밤에도 골프가 제대로 되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상대를 고르고 날짜를 잡았다. 보름달이 밝은 날 밤 10시로 했다. 신기한 시합을 보기 위해 관객들도 모여들었다. 어린아이와 개는 들어갈 수 없었다. 소리로 공을 찾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로스트볼은 벌타 하나만 먹고 그 근처에서 다시 치기로 했다. 두 사람의 티샷으로 시합이 시작되었다.

공 떨어지는 소리로 공을 찾았다. 둔탁한 소리가 나면 페어웨이에 떨어진 것이고 풀 속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깊은 러프였다. 구경꾼들은 3홀까지는 따라왔다. 하지만 이후에는 다들 집으로 향했다. 공이 보이지 않으니 재미가 있을 턱이 없었다. 게다가 소리로 공을 찾아야 하니 찍소리도 못하는 판이었다.

관중 없는 경기는 새벽 3시까지 갔다. 5시간 걸린 것이니 아주 양호한 것이다. 존 볼은 공을 6개밖에 잃어버리지 않았다. 147타. 상대는 32개를 잃어버리고 165타를 기록했다. 존 볼의 비결은 클럽의 로프트에 있었다. 모든 클럽의 각도를 낮춰 공이 낮게 깔리도록 했다. 공이 굴러가면서 소리를 내도록 한 것이다.

윌슨은 골프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못하는 편이었다. 평균 115타 정도를 쳤다. 어릴 적 심한 난독증을 극복하고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뒤 같은 대학의 교수가 될 만큼 의지와 의욕이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골프만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골프에 대한 애정만은 대단했다. 평일 오전에도 골프를 하는 일이 많았다. 아침 일찍 시작해 12홀을 치고 집무실에 복귀했다.

첫째 부인이 사망한 뒤 혼자였던 윌슨이 두 번째 부인을 만난 것도 오전 골프를 하고 돌아올 때였다. 1915년 3월 어느 날 골프를 마치고 백악관에 돌아와 급하게 집무실로 향하다가 복도 코너 맞은편에서 오던 한 부인과 부딪혔다. 이 부인은 윌슨의 사촌인 헬렌 본즈(Helen Bones)의 친구 이디스 골트(Edith Galt)였다. 당시 윌슨은 58세였고, 골트는 43세 미망인이었다. 그렇게 만난 이들은 1915년 가을에 결혼했다.

윌슨은 토요일 오후에는 어김없이 18홀을 쳤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도 골프채를 놓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이후 1915년 5월 독일 잠수함이 미국의 선박을 침몰시켜 미국인 123명이 사망했다는 보고도 골프장에서 받았다. 심지어 한 손이 다쳤을 때는 다른 한 손만으로 골프를 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18년 여름 영국제 탱크가 백악관에 전시되었다. 전쟁 중에 보여줬던 탱크의 무공을 과시하고 미국과 영국 사이의 연대 의식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윌슨은 탱크를 직접 운전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런데 탱크에서 내리다 가열된 부분에 오른손이 닿아 큰 화상을 입었다.

몇 주간 붕대를 감고 다녔다. 그런 상태로도 골프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왼손 하나로 골프를 했다. 골프는 오른손잡이의 경우 주로 왼손만 가지고 한다. 그래서 왼손만으로 치는 것도 좋은 연습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왼손의 감각을 발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연습장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왼손 운동이라고 하지만 오른손이 받쳐주지 않으면 정확히 공을 맞출 수가 없다. 하지만 윌슨은 왼손 하나로도 했다. 그는 진정한 골프광이었다.

골프장은 주로 워싱턴 근교의 콩그레셔널CC를 이용했다. 메릴랜드의 베데스다(Bethesda)에 있는 이 골프장은 1924년에 조성된 명문 골프장으로, 백악관에서 거리가 가까운 데다 고급스러워서 대통령들의 사랑을 받았다. 초기에는 대통령 전용 호화 객실을 갖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피하고 싶을 때 객실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비밀 통로까지 있었다. 1930년대에 없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윌슨 외에도 윌리엄 태프트, 워런 하딩(Warren Harding),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제럴드 포드(Gerald Ford), 조지 부시(George H. W. Bush), 빌 클린턴(Bill Clinton) 등이 이 골프장을 자주 찾았다. 이 골프장에서 PGA 메이저대회인 US오픈이 자주 열린다. 메릴랜드주 체비 체이스(Chevy Chase)에 있는 커크사이드(Kirkside) 컨트리클럽과 버지니아주 알링턴(Arlington)에 있는 워싱턴 컨트리클럽도 자주 이용했다.

안문석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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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통령과 골프에서 발췌, 저자 안문석 / 도서출판 인물과사상사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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