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두환의 골프 실력은 역대 한국 대통령 가운데 최고였으며 핸디캡 12정도, 드라이버를 잘 쳤다.

골프 실력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최고였으며 비밀이야기는 주로 골프장에서... ‘돈 만들고 쓰는데’ 귀재, 재임시절 수천억을 받아 숨겨놓고 추징금도 나몰라라

[골프타임즈=안문석 작가] 전두환도 골프를 아주 좋아했다. 1971년부터 제1공수여단장을 했는데, 그 자리에 있으면서 1973년 대령에서 준장이 되었다. 전두환은 별을 달면서 골프를 시작했다. 생도 시절에는 축구를 좋아했고, 영관장교 때까지는 테니스를 하다가 장군이 되면서 골프를 한 것이다.

대한민국 장교들의 운동 습성이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전두환은 부대 내에 골프연습장을 설치해놓고 연습할 정도로 좋아했다. 제1사단장 시절에는 여건이 좋아 자주 했다. 인근에 있는 한양CC와 뉴코리아CC를 자주 찾은 것이다. 박정희 정권 당시 사단장은 막강한 파워를 지니고 있었다. 골프장은 인근 사단의 협력 없이는 운영하기 힘들었다. 주말에 골프장 주변에서 갑자기 대규모 훈련이라도 하게 되면 영업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이런 힘을 이용해 사단장들은 골프장을 쉽게 다닐 수 있었다. 전두환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청와대에 연습장을 만들어놓고 연습했다. “재임 시절 라운드 하기 전날에는 소풍을 앞둔 학생처럼 맘이 설레 잠을 설쳤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전두환의 골프 실력은 역대 한국 대통령 가운데 최고였다. 핸디캡이 12정도였다. 특히 드라이버를 잘 쳤는데, 230미터 정도의 장타를 날리곤 했다. 그의 게임을 지켜본 수원CC의 한 캐디가 그렇게 말했으니 허언은 아닐 것이다. 호방한 성격만큼이나 시원시원하게 골프를 했다. 육사 시절 축구를 할 때도 포워드, 풀백, 골키퍼까지 올라운드 플레어어로 활약할 만큼 운동을 좋아했고 잘했다.

졸업 성적은 156명 중 126등으로 바닥 수준이었지만, 운동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부대장을 할 때도 축구만큼은 다른 부대보다 잘하기 위해 애를 썼다. 사병들과 어울려 함께 뛰면서 사기를 북돋우기도 했다. 운동에 대해서는 집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테니스도 아주 잘했다. 그런 체질이어서 골프도 잘했던 것 같다.

앞과 뒤의 한 팀씩을 비우고 여유 있게 치는 ‘대통령 골프’도 그가 시작했다. 측근들과의 긴밀한 이야기도 골프장에서 많이 했다고 한다. 임기 말에는 후계자 문제도 주로 골프를 하면서 논의했다고 한다. 골프는 야외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이 새나갈 염려가 없어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는 골프장을 주로 이용했을 것이다.

▲ 앞뒤 한 팀씩 비우고 치는 ‘대통령 골프’를 처음 시작한 사람도 전두환이다. 비밀이야기를 주로 나눴던 골프정치의 달인이었다.

라운딩 도중 잔디를 보수하거나 청소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봉투를 건네기도 했다고 한다. 부정하게 돈을 많이 걷으면서 여기저기 잘 쓰기로 유명했던 전두환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전두환의 ‘돈 만들기’는 꽤 역사가 깊다. 젊은 장교 시절부터 그런 걸 잘했다. 그는 어린 시절 대구에서 이병철과 한동네에 살았다. 해방 전 일이다.

이병철의 장남 이맹희는 그와 친한 친구였다. 이맹희는 국수공장 삼성상회 집의 장남, 전두환은 인근 빈민촌 아이였지만, 같은 1931년생이어서 친하게 지냈다. 장교 시절에도 이맹희하고 친한 관계를 유지했다. 1960년대 중반 전두환이 대대장을 할 때까지 이맹희가 매달 2~3만원, 설탕, 밀가루 등을 보내줬다. 전두환은 그 돈을 육사 11기 동기생 회식 등에 썼다. 그는 동기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중정부장은 김형욱이었는데, 이를 박정희에게 보고해 전두환은 박정희의 호출을 받기도 했다. 동기생 불고기 값으로 썼다고 설명해 겨우 위기를 벗어났다.

전두환은 그렇게 젊은 시절부터 돈을 잘 만들었고, 그 돈으로 조직을 꾸리는 것을 좋아했다. 군에서 계급이 올라가고 대통령까지 되자 점점 돈의 단위가 커졌다. 대통령 자리에 앉아서는 수천억원을 받아 챙겼다. 그 돈을 지금도 여기저기 숨겨놓은 채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다. 이런 돈을 부하들에게도 주고, 행사에 다니면서 금일봉으로도 주고, 기자들 촌지로도 주고, 공직자들 전별금으로도 줬다. 그가 주는 돈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0’ 하나가 더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것에 맛들인 이들은 지금까지 그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다.

권력도, 재산도 모두 불법적이고 부정하게 얻어낸 그의 윤리 의식은 보통 사람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골프장에서 청소하는 사람에게 돈 봉투를 건네는 것은 무슨 심리일까? 돈을 뿌리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의 악행에 대해 면죄부를 받고 싶은 것인가?

그런데 정치인은 가끔 이런 행동을 하는 것 같다. 지금 새누리당 최고위원인 이인제도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있다. 영화배우 안성기와 함께 골프를 할 때의 일이다. 초선 의원으로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위 청문회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해 스타로 떠오른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안성기도 연예인 골프 대회에서 몇 번 우승할 만큼 골프를 잘하고, 이인제도 변호사 시절 골프를 배워 아주 좋아했다.

한때는 너무 골프에 빠져 부엌칼로 손가락을 자르려고도 했다 한다. 손가락을 자르기 직전, 그럴 용기가 있으면 골프 욕구를 통제해보자 해서 칼을 거두었다. 1990년 5월의 화창한 날, 이인제가 안성기를 만났다. 장소는 경기도 기흥의 골드CC 챔피언스 코스. 이인제는 룰을 잘 지키면서 하는 스타일이다. OB(Out of Bound)가 나서 안성기가 멀리건을 줬는데도 받지 않았다. 안성기는 인상대로 편안하게 웃으면서 골프를 한다. 뒤땅을 쳐도, 스리퍼트를 해도 찡그리는 법이 없다.

이인제가 5번 홀에서 6번 홀로 이동하는데 나무 그늘에서 인부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무를 심고, 풀을 뽑는 고된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을 맞은 것이다. 이인제는 성큼성큼 다가가서는 인사를 했다.
“수고하십니다. 점심 아주 맛있게 들고 계시네요.”
인부들도 반갑게 맞고서는 밥 한술을 권했다. 이인제는 사양 않고 밥 한 숟가락에 김치까지 받아서 맛있게 먹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5만원을 내놓았다.
“아주 잘 먹었습니다. 약주라도 한잔 하십시오.”
이인제는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그러고는 다시 6홀 티샷에 나섰다. 일들 열심히 하고 있는데 골프를 치는 게 미안해서 그랬다고 한다. 전두환과는 성격이 좀 다른 금일봉 같기는 하다. 물론 그 돈의 출처도 다르다. 하지만 그 돈에 담긴 의미, 그런 행위를 하는 동기는 뭐가 어떻게 다른지 의문이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차지철은 박정희의 총애를 받아 경호장교를 하다가 국회의원을 네 번이나 하고 대통령경호실장도 5년이나 했는데, 골프를 안 했다. 당시 박정희를 비롯해서 박정희 정권의 핵심 인물들은 일요일이면 골프장으로 내달았는데, 차지철은 교회로 갔다. 그도 한때는 골프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라운드 도중 뙤약볕 아래서 잡초를 뽑고 있는 인부들을 보고는 이후 골프채를 놓았다고 한다. 그가 이미 죽어서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렇게 권력을 탐하고 월권도 일삼으며 정부 곳곳에, 심지어 군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던 차지철에게 의외의 면이 있었던 것 같다.

▲ 운동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라운드 전날 소풍을 앞둔 학생처럼 마음이 설레 잠을 설쳤다고 했다.

전두환은 퇴임 후에는 실컷 골프를 하면서 여유 있게 지내고 싶어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씨를 뿌려놓으면 언젠가는 자라서 새싹이 나오는 게 자연의 이치일 것이다. 전두환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벌인 불법과 악행은 임기가 끝나면서 조금씩 드러났고, 후계자 노태우도 막아주지 못했다. 전두환은 그 서막을 공교롭게도 골프장에서 들었다.

그는 1988년 2월 대통령에서 퇴임하고, 다음 달 따뜻한 햇살을 찾아 남쪽 제주도로 가서 가족들과 골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국가원로자문회의 폐지설이 신문에 나기 시작했다.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은 전직 대통령이다. 여기서는 30여 명의 직원도 둘 수 있었다. 현 대통령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태우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폐지를 검토하기 시작했고, 신문에 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듬해 국가원로자문회의법은 폐지되었고 이 기구는 헌법상의 규정으로만 남게 되었다. 전두환은 미국에 가서도 골프를 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모두 취소하고 술만 엄청 마셨다고 한다.

1988년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구도가 만들어지자 5공 청산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5공비리특별위원회도 구성되었다. 전두환은 백담사 칩거에 들어갔다. 청문회가 열려 장세동, 정주영 등이 불려나왔다. 전두환은 야당의 계속적인 출석 요구에 하는 수 없이 나와 발표문을 읽었다. 광주항쟁과 관련해 자위권 발동 운운하면서 야당의 격분을 샀다. 결국은 발표문도 다 읽지 못하고 나가야 했다.

2년간의 백담사 유배 생활을 정리하고 나온 전두환은 다시 장세동 등 심복들과 골프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노태우 임기 말로 갈수록 5공 세력의 골프 모임은 잦아졌다. 5공 세력의 신당 창당 움직임도 있었다. 신당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뒤에는 전두환, 노태우 모두 불안한 상황이 되어 둘이서 골프 모임을 하며 결속을 시도하기도 했다. 김영삼이 취임하자마자 골프금지령을 내린 것은 공직자뿐만 아니라 5공, 6공 세력의 골프 모임에 대한 경계의 의미도 있었다.

1995년 노태우의 비리가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전·노 연대는 불가능해졌다. 1995년 10월에는 민주당의 박계동 의원이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노태우 비자금 4,000억 설을 제기해 본격 수사가 시작되었고, 수사 결과 임기 중 5,000억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12·12 쿠데타와 5·18 광주항쟁 강경 진압에 대한 진상 규명 요구도 높아짐에 따라 전두환도 구속, 수감되었다. 이듬해 전두환은 무기징역, 노태우는 징역 17년이 선고되었다. 김영삼이 퇴임 전 이들을 사면하긴 했지만 이들의 죄상이 없어질 수는 없었다.

안문석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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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통령과 골프에서 발췌, 저자 안문석 / 도서출판 인물과사상사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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