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은 진지한 행동을 요구했다. 게다가 레스토랑 분위기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정 사장의 모습은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이 적재적소에 자리 잡은 듯 너무도 잘 어울렸다.

박 기자는 자신마저 우아한 사람이 된 듯 느껴졌고, 너무도 잘 어울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꿈꾸던 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난 이런 분위기가 어울리는 여자였어. 어쩌다 내가 기자라는 험한 일을 하게 됐고, 한 번의 실수로 단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샐러리맨 남편과 어쩌다 결혼까지 했지만, 난 이런 곳이 어울리는 여자였어.

박 기자는 레스토랑을 둘러보며 불만인 현실을 박차고 솟아오르려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서는 빠져 나올 수 없는 탓에 누군가가 끌어 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누가 봐도 남편과 박 기자는 안 어울리는 사람들이었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박 기자와 달리 남편은 소박하고 어찌 보면 너무 검소한 사람이었다. 외모도 그랬다. 지극히 평범해서 한참을 찾아야 하는 남편과는 달리 박 기자는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자라 온 환경도 너무 달랐다. 부유한 집 외동딸로 자라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제멋대로 살아 온 박 기자와는 달리 남편은 아들만 셋인 집 장남으로 대학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장학금을 받기위해 공부에 매달리는 남자였다. 박 기자의 눈에 지지리 궁상인 이 남자가 성실해 보였던 것이다. 성실함 하나가 결혼이란 결정타를 날렸다. 게다가 동정도 양념으로 첨가됐다.

그러나 결혼 생활이 한 해 두 해 깊어질 때마다 잘못 된 만남인 것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었다. 무엇하나도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꼭 뭐든 반대이거나 요즘 유행하는 2% 부족한 것 때문에 박 기자는 스트레스가 쌓여 가는 중이었다. 또한 그토록 믿었던 성실함도 없는 자가 가진 지지리 궁상이라는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박 기자 자신이 벌어들이는 수입마저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현실은 그녀에게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성실함과 동정심의 양념 효과는 바닥 난지 오래였다. 남편의 궁상이 초라해 보였고, 한동안 출장이 잦은 현실이 박 기자에게는 숨통이 트이는 시기였다. 박 기자는 마음속으로 지방 발령이나 나라고 빌었다. 하느님은 박 기자의 기도를 아주 잘 들어 주는 분이었다. 그 기도는 몇 주 만에 현실로 나타났다.

박 기자는 뛸 듯이 기뻤지만 남편은 비루먹은 병아리 모양 푹 꺾였었다. 이유인 즉, 지방 발령은 이제 그만 회사에서 나가 달라는 경고의 의미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박 기자는 걱정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남편이 실직자가 된다면 그걸 핑계로 박차고 나올 기회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박 기자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자신을 세뇌시키는 중이었다.

‘요즘 한집 걸러 이혼이라는데, 왜 나만 참아? 참는다고 누가 내 인생 살아 주는 것도 아니고 칭찬 받는 것도 아닌데 나만 억울해.’

박 기자는 최근 들어 이혼에 대한 환상에 젖어 있는 터였다.

박 기자를 발견한 정 사장이 가볍게 손을 살짝 들었다가 내리며 미소 지었다. 박 기자 역시 손을 가볍게 들어 답례를 하고 테이블로 다가갔다. 정 사장이 일어나 직접 의자를 빼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산가족 상봉하는 기분이네요. 기다리는 시간이 보통 길게 느껴져야죠.”

“우리 헤어진 지 한 시간도 안됐어요.”

박 기자도 눈을 살짝 흘기며 되받았다.

자리에 앉자 웨이터가 메뉴판을 내밀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정 사장에게 모든 걸 일임했다. 정 사장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사람처럼 능숙하게 요리를 시키고 스프와 와인까지 일사천리로 해결했다. 그는 벌써 박 기자의 식성이나 취향까지 모두 꾀고 있는 듯 했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혀에 감기듯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식사가 날라져 오고 정 사장은 젊은 연인들이나 하는 줄 알았던 스테이크 잘라 주는 일까지 박 기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고 있었다. <계속>

유현숙 작가｜ben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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