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남자를 쇼핑하듯 그렇게 고르고 맘에 들어도 그리 오래 만나는 법이 없었다. 사람들은 잘 나가는 스타 의사에 외모까지 괜찮은 골드미스 - 박 기자는 처녀할머니라 부르지만- 가 왜 혼자 살기를 고집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박 기자 역시 그녀의 독신녀 생활과 남성편력을 대충 짐작할 뿐이지 그 이유를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요즘에는 물 좋은 골프장으로 연습장을 옮겨갔다고 떠들어 여전히 소희의 성 생활은 활력이 넘치는구나. 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희의 아픔을 본 것은 정작 박 기자의 수술이었다. 박 기자의 수술을 집도하던 소희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드러내 버렸다.

대학시절 캠퍼스 커플과 헤어지고 졸업 무렵, 괜찮은 남자와 결혼설이 오갔었다. 다들 결혼을 확신했는데 어떤 이유인지 결별을 하고 말았다.

남자는 소희와 결별 후 아주 어린 소위 남자들의 은어인 영계와 순식간에 결혼을 하고 유학을 떠나 버렸다. 미루어 짐작컨대 이 남자가 소희에게 나이 탓을 했고 처녀니 뭐니 하는 식의 상처를 남긴 것이 분명했다. 자존심 강한 소희가 독신녀로 마음을 굳히게 만든 계기가 됐을 것 같았다.

“깨어났으면 눈 좀 떠라. 늙다리 수술시키려니 이거 불안해 밥도 못 먹잖아. 야, 처녀! 눈뜨고 나 좀 봐. 수술은 아주 성공적이야. 수술비 안 받는 대신 술로 퍼라.”

소희의 씩씩한 목소리에 눈을 뜨자 아직도 좀 부옇긴 해도 소희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난 걱정돼 죽겠는데 코를 드렁드렁 골고 자냐? 어젯밤 잠 안자고 뭘 했기에?”

“내가 잤다고? 언제?”

“최 실장, 증인 좀 나서라. 안 주무셨단다.”

박 기자는 소희가 코를 골며 잘 잤다고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의식은 말짱하고 현실은 내가 코를 골며 잤다는 겐가?’

박 기자는 죽는 다는 것과 의식불명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산다는 것과 죽는 다는 것의 차이는 무얼까? 수술실의 모든 사람들은 박 기자가 분명히 자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잠들지 않았고 깨어있었다.

뇌사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두고 한동안 떠들썩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두고 왈가왈부할 때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알아듣고 다 기억하고 판단하는데, 단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인 뇌사자도 있을 것이었다.

박 기자 지인의 남편 중 뇌사상태에 빠져 한동안 인공호흡기로 지내다가 요즘은 자가 호흡이지만 식사도 튜브를 통해 해결하고 생리현상은 정상인 듯 했다. 언젠가 면회를 갔다가 기절할만한 사건이 있었다. 환자가 하품을 정상인처럼 크게 했던 것이다.

박 기자는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자 갑자기 엄숙한 얼굴이 되어갔다.

‘우리는 섹스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신 시키느라 숱한 세월을 보내오. 우리는 창녀 아니면 숫처녀와 함께 사랑을 배우죠. 듣고 싶어 하는 누구에게나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이가 들면 어린 애인을 과시하려 들죠.’

코엘료의 11분 후반부 어디쯤에 나오는 말이었다. 섹스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신시킨다는 말이 교양과목 철학책에 나오는 한 부분처럼 묵직하게 다가섰다.

박 기자도 자신이 섹스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정 사장을 통해 인식할 수 있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중년 남성들은 어린 애인을 자랑하는 것을 흔히 봤었다. 나이어린 애인을 과시하는 것은 자신의 남성적 능력도 되겠지만 자신의 능력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랑의 대상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어린 여자를 애인으로 두었다고 성적 능력이 나이어린 애인과 동등하다고 볼 수도 없고, 나이어린 애인이 자신을 애인이라기보다 물질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면 더 서글퍼지지 않을까?

남자들은 모른다. 여자들의 복잡한 속내를 너무 모른다.

나이가 같아도 남자보다 월등하게 성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자들이 있고, 남자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여자들도 세상에는 많다는 것을 모른다.

여자들 중에는 여성 상위만을 고집하고 섹스상대를 지배할 수 있을 때만 오르가즘을 느끼는 여자도 있다는 것을 안다면 나이어린 애인을 가졌다는 표현은 쓰지 않을 것이다.

여자들 중에도 요즈음은 남자를 수집하듯 취하는 여자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현숙 작가｜ben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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