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전에 군자리코스를 찾아 회고하던 연덕춘 프로

[골프타임즈=정노천 기자] 우리나라 프로골프의 역사는 연덕춘 프로로 시작됐다. 17세 때부터 군자리코스에서 골프를 배운 그는 뛰어난 재질을 보여 어느 독지가의 후원으로 1934년 19세 나이로 일본에 건너갔다. 1935년 20세에 당시 국내에서는 없던 프로골퍼 자격을 획득하고 일본골프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1937년 8월, 불과 22세의 청년 연덕춘은 전일본프로골프대회에 처녀 출전, 일본의 중진 골퍼들과 당당히 겨루어 8위에 입상한다. 17세 때 골프를 시작하여 불과 5년 만에 거둔 성과인데다가, 비록 8위에 머물긴 했지만 당대 챔피언 타이틀 소지자들을 근소한 스코어로 추격했다는 사실이 연덕춘을 ‘무서운 신예’로 인정하기에 충분했다.

대한암흑기에 그는 4년 후인 1941년 5월 일본에서 개최된 전일본오픈선수권에 출전해 당당히 타이틀을 획득함으로써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는 동시에 한국 골프사에 길이 빛날 위업을 남겼다.

열악한 국내 골프계의 유일한 프로골퍼였던 연덕춘이 우승컵을 안고 현해탄을 건넌 것은 실로 손기정의 올림픽 마라톤 제패에 비유되는 감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로서 한국골프는 세계 제일로 가는 시금석을 마련했고, 2021년 현재 86년의 한국프로골퍼의 역사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렇게 대한암흑기에 한국인으로서 온갖 수모를 당하며 훈련했고 결국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일을 그는 해냈다. ‘일본 치하의 당시 한국 사람으로서는 단 한 사람 출전하여 5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 선수들을 물리쳤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전적이며 일본 신문들이 대서특필, 경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은 연 프로뿐만 아니라 한국인으로서도 자랑스러운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그는 호랑이 굴로 들어가 혈혈단신으로 싸워 이겨낸 용감한 민족의 용사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연덕춘 소년은 집안이 부유해서 골프를 여가로 즐긴 것도 아니다. 연덕춘은 군자리코스 주변에서 태어나 코스에서 공을 휘두르는 골퍼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자랐다. 그는 17세 어린 나이로 캐디를 하게 되면서 군자리코스에 취업하게 된다.

처음엔 직업으로 골프를 접했고 나중엔 골프를 배우면서 직업선수로 프로골프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대한암흑기에 한국인으로서 온갖 수모를 당하며 훈련했고 결국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일을 그는 해냈다. 그는 호랑이 굴로 직접 들어가 혈혈단신으로 싸워 이겨낸 용감한 민족적 항거가 아닐 수 없었다. 그의 골프 영웅담은 이렇게 시작됐다.

1934년 연덕춘 프로는 약관의 19세 나이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관동지역에서 골프를 배우며 일본무대에서 골프유학을 시작 1935년 당시 국내에서는 없던 프로골퍼 자격을 획득하고 일본골프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오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골프채를 혼신의 힘으로 휘두르는 일뿐이었다. 몇 차례 좋은 성적을 거두다가 결국 1941년 결정적인 날이 왔다.

일본 땅에서 그것도 식민지 백성이라고 비하하는 민족적 수모를 당하면서 오기 하나로 버티며 결국 일본골프계를 제압하는 쾌거를 맛보게 된 것이다. 1941년 일본골프오픈에서 내로라하는 일본프로들을 꺾고 우승한 것이다.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준 우승 쾌보는 국내로도 흘러들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골프라는 종목, 즉 사치성 놀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제대로 평가를 받지도 못하고 그 가치는 현재까지도 묻혀버린 것이다.

한국골프계가 나서서 이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한다. 한국골프 100년이 지나고 현재 120년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더구나 세계골프 중앙무대에 나가 정상에 우뚝 선 시점에 한국골프의 위상에 걸맞은 재평가가 필요한 시기라 생각된다. 그런 다음 한국적 골프문화의 체계를 세워가야 할 것이다.

올해로써 1935년 연덕춘이 20세에 국내 처음으로 프로골프자격증을 따서 대한민국 1호 프로골퍼가 된지 벌써 86년이 흘렀고 골프시작으로 따지는 89년이 된다. 싫든 좋든 한국프로골프계는 연 프로의 일생이 프로골퍼의 역사에서 기점이 되는 주인공이다. 프로골프계의 자산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한국프로골프계의 역사성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 벤호건 스타일의 연덕춘 프로의 골프스윙

그런 배경에서 연덕춘 프로가 당시에 사용하던 클럽을 천안 독립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가져갔다. 그러나 골프라는 이유 때문인지 생전에 독립관 전시가 되지 못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독립기념관에 소장하고 있던 골프클럽, 연덕춘이 사용했던 골프채 4점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8년이 지나서야 대한암흑기 체육 관련 유물로 2012년 8월 13일 뒤늦게 지정됐다.

대한암흑기부터 프로 골프선수로 활동한 연덕춘이 사용한 골프채는 1930년대에 제작된 영국의 잭 화이트(Jack White) 제품이다. 드라이버(샤프트 길이 101cm), 롱아이언, 숏아이언, 퍼터(롱·숏 아이언 및 퍼터 81~87.5cm)로 구성되어 있다. 골프채의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고, 한국 최초의 프로 골퍼인 연덕춘이 사용한 골프채라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있다.

2012년 8월 13일 등록문화재 제500호로 지정됐다. 그는 분명 골프를 통해서 대한암흑기에 민족적 울분을 풀어 주고 저항의 결과를 뚜렷이 나타낸 것이다. 일제의 서슬 시퍼런 억압과 차별을 묵묵히 이겨내고 위대한 조선인 연덕춘이 전 일본제패로 우리를 경악시킨 날이었다. 암울한 시기에 우리민족의 희망을 주는 씨앗이었고 참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이룩해낸 민족적 쾌거라고 할 수 있다.

단지 골프라는 이유로 마라톤의 손기정에 비해서도 너무 홀대를 받는 셈이다. 손기정을 기리는 기념관은 어엿하게 만리동에 마련됐지만 기실 골프계에선 연덕춘의 기념관은 꿈도 못 꾸고 있는 형편이다. 연 프로가 태어나고 공을 치는 모습을 주변에서 보고 코스에서 골프를 접하고 헤드프로로 재직하고 배우던 현장이 지금 고스란히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면서 프로골프계는 한국프로골퍼 역사를 논하고 뿌리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프로골프계는 그가 태어나고 처음 골프에 몸담았던 현장 군자리코스였던 현재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그의 골프표석이나 골프기념관을 건설해야 할 숙제가 던져졌다.

식민지 그늘에서 신음하는 우리 민족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일대 낭보였다. 가슴 속 깊이 나라 잃은 민족으로서 통탄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던 날들을 그냥 희미한 역사 속에 묻어놓고 말 것인가 묻고 싶다. 한국골프가 세계 정상에 선 차제에 민족의 단결과 조국의 번영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날이 되도록 기념사업을 준비할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본다.

▲ 1970년 군자리코스 클럽하우스

대한암흑기 차별받는 민족의 한을 가슴에 안고 통분의 스윙을 휘두르면서 우승을 향해 나아가면서 민족혼을 일깨운 연덕춘 프로는 1916년 골프장 인근에서 태어나 2004년까지 골프인생을 살다가 향년 88세로 우리 곁을 떠났다. 연덕춘은 1963년 프로골프회를 창립해 현재의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의 기틀을 다졌다. 그가 키워낸 제자 중 한장상이 1972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했다. 연덕춘 이후 한국인으로는 31년 만이었다.

이제 일반 대중이 나서기 전에 골프계가 먼저 나서서 통한의 한을 풀어주고 대내외적으로 우리 민족의 우월성과 자긍심을 되찾아준 골프를 제대로 평가할 때라고 본다. 솔직히 현재 어린이 공원전체가 우리 초창기 한국 골프의 역사를 끌어안고 있는 골프기념관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공원 전체가 우리가 가치 있게 향유해야 할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그곳엔 골프에 대한 설명을 적은 기념 표석(당시 클럽하우스 건물 ‘꿈마루’에 대한 표석은 있다) 하나 없이 그렇게 방치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 현재 꿈마루로 사용하고 있는 클럽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