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벌 집...내 생애 저런 멋진 집하나 짓고 갈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입으로 지은 집인데 인간은 입으로 거짓의 죄만 지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골프타임즈=정노천 기자] 말벌 집 구조가 참 멋지다. 그 속에 생명을 부린 녀석들이 살인 무기를 가졌다니. 어쨌든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들은 자고이래 모두 박멸의 대상이었다. 말벌이 먹이사슬에서 인간 위에 천적으로 위치한다면 용납하지 않는 습성이 인간의 생존의 법칙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땅에서 호랑이나 늑대 등 생명을 위협하는 짐승들은 사라져갔고 뱀들도 수모를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요즘은 멧돼지가 극성을 부리는데 조만간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았으리라 본다.

도처에 사람의 발길이 빈번하지 않는 곳에는 어김없이 말벌들이 장악하고 있다. 한갓진 정자나 썩은 고목, 수풀이 무성한 땅속에서도 말벌들이 집을 많이 짓고 산다.

추석 때 시골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다. 낙동강변 곽재우 장군의 망우정에 들러서 시진을 찍는 순간 담장 기왓장에서 괴물체를 발견했다.

말벌 한마리가 앉아서 나의 일거수일두족을 감시하는 카메라의 눈 같았다. 여차하면 이륙해서 융단폭격을 퍼붓기 위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말벌을 발견하고 살금살금 걸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녀석은 나를 타깃으로 움직임을 따라 각도를 돌리며 다리를 굽혀 낮은 자세로 앉은 폼이 여차하면 날아오를 기세였다. 녀석이 나의 행동거지를 조ᆞ절하는 기분이 들어 내려쳐서 죽이고 싶은 적의를 느꼈다.

한마리가 날면 어디선가 벌떼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를 것 같아 존재의 불편감을 감수하고 조용히 걸어서 녀석의 영역을 인정해 줄 수밖에 없었다. 임진란 때 홍의장군은 침략하는 일본군을 쳐 부셨지만 이 녀석은 생존 즉, 존재감에 대한 근원적인 적의가 아닌가? 다시 자리를 옮겨 강변에 있는 다른 정자에 올라갔는데 천정과 기둥이음새에 벌들이 한창 엉겨 붙어서 집을 짓고 가볍게 날고 있길래 얼른 빠져나왔다.

멋진 강의 경치를 즐기려 했건만 가는데 마다 나의 존재감은 방해를 받았다. 다시 뒤편의 거대한 고목에 가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데 내 등 뒤에서 부터 수십마리 말벌들이 내 허리춤의 높이로 비행군단처럼 빠르게 날아들면서 나무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이런 어딜가나 말벌 시대군’ 다행히 나를 물체로 보았는지 그냥 피해서 지나갔다.

나는 천천히 빠져나왔다. 하루 만에 3군데서나 말벌을 목격했고 생명적 위험에 처했었다. 다행히 잘 빠져나왔으니 망정이지 완전 무방비상태에서 말벌이 한꺼번에 나를 공격했으면 혼자서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사진은 어제 지인이 경기도 설악면에서 비옷을 입고 따낸 거대한 말벌 집이다. 약용으로 쓴다고 한다. 내 생애 저런 멋진 집하나 짓고 갈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들은 모두 입으로 지은 집인데 인간은 입으로 거짓의 죄만 지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정노천 기자｜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