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처음 자리 잡은 동네에서 만난 창수씨(우측)... 이젠 가족처럼 지내다 보니 다른 이웃들이 부러워할 정도였습니다.

승강기 안에서 이웃을 만나도 데면데면해하며 정면만 주시해 어색하기 짝이 없는데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인생의 큰 복이다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낮에는 벌써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더워졌습니다. 때 이른 더위에 지쳤는지 테라스의 꽃들도 때 맞춰 물을 주지 않으면 금방 고개를 떨굽니다. 창문을 열어 놓으니 아파트 놀이터에서 이웃 아이들이 웃으며 노는 소리가 올라옵니다. 조용하던 집에 모처럼 사람 사는 맛이 납니다. 오늘은 이웃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거필택린(居必擇隣)”이란 말이 있습니다. 좋은 이웃을 잘 선택해서 거주하라는 뜻입니다. 중국 남북조시대 양(梁)나라에 송계아(宋季雅)라는 사람이 벼슬을 그만두면서 살 집을 보러 다녔습니다. 고르고 고르다가 결국 여승진(呂僧珍)의 옆집을 구입했습니다. 이웃이 된 여승진이 집을 얼마나 주고 샀는지 묻자 송계아는 일천백만 냥을 주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여승진이 너무 비싸게 샀다고 놀라자 송계아가 대답하길, “집값은 원래 일백만 냥이나, 천만 냥은 그대와 이웃이 되기 위해 지불하였소.”라 했습니다. 여승진은 청렴하고 공정한 관리로 칭찬이 자자하던 인물이었습니다.

『논어』의 「이인(里仁爲仁)」편에도 “풍속이 어진 마을에 살아야 좋다. 어진 이웃이 없는 마을을 골라서 산다면 어떻게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느냐!”라며 이웃을 잘 골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맹모(孟母)가 아들 교육을 위해 이사를 자주 다닌 것도 어찌 보면 이웃을 잘 고르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필자도 좋은 이웃을 골라 선한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처음 자리 잡은 동네에서 만난 이웃이 창수씨 입니다. 창수씨는 동네 비디오대여점 주인이었습니다. 필자보다 연하이지만 일찍 사회생활을 하여 인품이 성숙하고 생활력이 강했습니다. 같은 교회에 다니던 부인한테 창수씨가 제발 교회를 잘 나오도록 멘토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필자 자신도 엉터리신자라 신앙적으로는 모범이 별로 되지 못했지만 둘이 죽이 잘 맞았습니다. 학교에서 퇴근하면 비디오가게로 가서 바둑을 두고 가게 문을 닫으면 인근 풍물시장을 돌아다니며 야식도 즐겼습니다. 흥이 나면 하룻저녁에 부부동반으로 강원도 동해안으로 가서 생선회를 먹고 돌아오는 객기도 부렸습니다. 당시 필자는 자가용이 없었는데 창수씨는 필자가 가자는 곳은 어디든 데려다 주었습니다. 물론 여름철 휴가도 두 가족이 함께 다녔습니다. 다른 이웃들이 형제도 저런 형제가 없다고 부러워할 정도였습니다.

일요일마다 조기축구회와 교회예배 사이를 오락가락하던 창수씨의 무게중심이 차츰 교회로 쏠렸고 이에 따라 필자와 함께 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이웃의 독거노인을 찾아 난방보일러를 새로 놓아주고 생필품 나눠드리는 봉사활동을 함께 하면서 보람을 공유했습니다. 워낙 손재주가 좋아 창수씨는 노인분들 집에서 보수가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뚝딱 고쳐주어 늘 노인들이 창수씨를 보면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모범생 기질을 타고난 창수씨는 교회에서도 신실함을 인정받아 장로로 피선되었습니다. 멘토였던 필자는 교회도 옮기고 여전히 평신도에 머물고 있지만 창수씨는 그야말로 성경말씀대로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격이었습니다. 필자도 너무 감격해서 풀쩍풀쩍 뛰며 축하했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잠깐이었고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렸습니다.

중국에 선교일로 갔던 창수씨가 갑자기 몸이 불편해서 급거 귀국해 진찰을 받아보니 백혈병이라는 것입니다. 투병생활이 시작되었고 문병을 가보니 그렇게 건장하던 창수씨가 초췌하게 마른 모습으로 변해있어 애간장이 녹았습니다. 보는 앞에서 눈물을 참느라 애썼습니다. 생의 큰 동반자를 상실할 위기 앞에 필자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잘 나가지 않던 새벽기도회를 나가 창수씨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이미 창수씨네는 우리 가족과 진배없었습니다.

천행으로 창수씨는 골수이식수술을 받아 회복되었습니다. 무사히 장로에도 취임하였고 자녀들도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 여전히 든든한 이웃이자 가족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내들은 만나면 서로 자기 남편이 잘났다고 이전처럼 티격태격 합니다. 시집을 여러 권이나 낸 시인인 창수씨 부인을 필자는 이름 끝 자만 떼어 낭만적으로 “숙”이라고 부릅니다. 숙은 고집장이 남편을 지혜롭게 교회에 정착시켰다며 장로가 된 공의 일부를 필자에게 돌리는데 솔직히 기분이 좋습니다. 필자도 창수씨에게 좋은 이웃이라는 말로 들립니다.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인생의 큰 복입니다. 승강기 안에서 이웃을 만나도 서로 데면데면해하며 정면만 주시해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먼저 인사를 건네도 가끔 어린아이들만 반갑게 인사를 받습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날로 삭막해집니다. 이번 주는 좋은 이웃을 만나 선한 영향을 받으시길 축복합니다. 할 수 있다면 먼저 이웃집에 과일 한 바구니라도 건네며 좋은 이웃이 되어보길 권유합니다. 형 같은 아우 창수씨가 다시 축구장을 누비는 모습도 빨리 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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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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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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