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0년이 지나고 나파 밸리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근대화 1세대 인물이며, 파리의 심판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통해 후대 미국 와인의 상업적 성공의 기초를 닦은 영웅이었다.

[골프타임즈=신성호 와인칼럼니스트] 지난(2013년) 3월 14일 나파 밸리의 샤또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 와이너리의 창업자이자 오너 짐 배럿(Jim Barrett, 본명 James L. Barrett, 1926~2013)이 하늘의 부름을 받고 포도밭 가득한 나파 밸리를 영원히 떠났다. 향년 그의 나이 86세였다.

샤또 몬텔레나(나파 밸리의 최북단 칼리스토가(Calistoga)에 자리한 미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고성(古城)에 지어진 와이너리로 1976년 세계 와인의 심장인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던 파리 테이스팅에서 화이트 와인 부문 우승을 이끌며, 레드 와인에서 우승했던 스택스 립 와인셀라(Stag's Leap Wine Cellars)와 함께 나파 밸리와 미국을 세계 와인지도에 올려놓은 역사적 역할을 한 와이너리) 와이너리의 창업자 짐 배럿은 금주령(1919~1933) 이후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이 지나고 1960년대 중반부터 나파 밸리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근대화 1세대 인물의 하나였으며, 파리의 심판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통해 후대 미국 와인의 상업적 성공의 기초를 닦은 영웅이었다.

샤또 몬텔레나와 스택스 립 와인셀라가 거둔 놀라운 성공은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조명해 볼 때, 그것은 언제고 일어날 수 있었던 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단, 그 사건이 일어났던 방법과 모양새가 더할 나위 없이 충격적이었기에 임팩트는 실로 메가톤급이었다.(당시 시음회에 참가했던 프랑스 심사위원들의 면모를 보면 이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다.)

이 사건을 유일하게 보도했던 당시의 미디어 타임즈(The Times)지는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이란 타이틀로 매우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했다. 짐 배럿이란 인물에 대해 파리의 심판을 전후로 벌어졌던 면면(面面)들을 살펴보자.

1926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짐은 1930년대 초에 가족을 따라 LA로 이주하게 된다. 학창시절에 길모퉁이에서 신문을 팔기도 하고, 당시로선 이름 높던 소년합창단의 멤버로 영화와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던 꿈 많은 소년으로 1944년부터 1946년까지 해군에서 복무, 한국전이 발발하자 해군중위로 참전하기도 했다. 1951년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1972년 뜻을 같이 하는 투자단을 결성해 나파 밸리 최북단 칼리스토가에 약 70년간 버려져 있던 고성을 매입, 샤또 몬텔레나 와이너리를 설립하기까지 제법 성공한 변호사였다.

전업 와인생산자로 변신한 짐은 당연히 좌충우돌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영화 와인 미라클을 보면 와이너리 초창기에 필요한 자금을 추가로 조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모습과 생산자로서는 짧은 경험 탓에 와인에 생긴 이상 징후(산소가 지나친 부족으로 인해 갈색으로 변한 샤도네이 와인)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에 빠져 있던 그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그려진다.

근면함과 완벽주의자 마이크 그르기치 등장-베레모가 트레이드 마크
샤또 몬텔레나가 거둔 예기치 못한 큰 성공의 중심에는 짐 배럿이라는 걸출한 비전가가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영화에서처럼 모든 성공의 열쇠를 그가 혼자서 다 쥐고 있지는 않았다. 또 한 명의 영웅 마이크 그르기치(Mike Grgich)가 등장할 때이다.

짐 배럿이 세상을 떠나고 보름 후에 90세 생일을 맞은 마이크 그르기치(Mike Grgich, 1923~현재)는 크로아티아 태생으로 젊은 나이였던 1954년에 전쟁 중인 고국(유고슬라비아)을 떠나 서독, 캐나다를 거쳐 무려 4년 후인 1958년 어렵사리 캘리포니아에서 와인메이커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365일 쓰고 다니는 베레모가 지금은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지만 한때 어려웠던 유년시절 우산을 살 돈이 없어 베레모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회의 땅 미국에서 와인의 아메리칸 드림을 가장 극적으로 이룬 와인 케이커였다.

포도알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면 포도의 당도를 알 수 있다는 말로도 유명한 그는 지독할 정도의 근면함과 일에 있어서의 완벽주의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08년에는 미국의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수여하는 와인업계 최고의 영광인 Vinters Hall of Fame(와인양조가들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므로서 평생에 걸친 그의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짐 배럿이 샤또 몬텔레나를 세웠던 1970년대 초에 마이크 그르기치는 이미 당대 캘리포니아 최고의 실력파 와인메이커 중의 하나로 성장해 있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와이너리의 하나였던 수버랭 와이너리(Souverain Winery)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나파 밸리의 명문 와이너리인 볼류 빈야드(Bealieu Vineyards)와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Robert Mondavi Winery) 등을 거쳤다.

특히 볼류 빈야드 재직 시절에는 그의 영원한 멘토이며, 러시아 태생으로 미국 양조계의 발전에 엄청난 공헌을 했던 전설의 와인메이커 안드레 첼리체프(Andre Tchelistcheff, 1901~1994)의 조수로 일하는 행운을 누리며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되었다. <계속>

신성호 와인칼럼니스트｜altoman@naracell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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