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일보한 품질과 과거의 와인들과는 스타일적으로 차별화되는 새로운 와인에 대한 목마름을 증폭시키게 되는데, 이에 대한 해답이 바로 수퍼 토스카나였다.

▲사진=Baron Ricasoli.

[골프타임즈=신성호 와인칼럼니스트] 그렇다면 유구한 와인 전통을 지닌 이태리, 그 중심에 있는 토스카나가 외래품종을 도입할 생각까지 했던 당시의 시대적 환경은 어떠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잠시 이태리의 근대사를 살펴보자.

이태리는 1861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되어 민족국가를 이루기까지 숱한 내전을 겪었다. 이후에는 제1차 세계대전,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첨예한 계급대결, 무솔리니에 의한 파쇼 정권의 수립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 등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쳐왔다.

이러한 격동의 역사 속에서 포도농부들과 와인생산자들이 품질에 대한 추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판단은 여러분의 상식에 맡기도록 하겠다.

▲사진=Chianti Classico.

이미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탄생했던 그 시기부터 이태리의 와인계는 긴 숙성 없이 뚝딱 만들어 일상적으로 음용할 수 있는 와인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업계의 화두였으며, 이를 위해 마치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었듯, 유력 정치인이자 와인생산자였던 리카솔리 남작(Baron Ricasoli)이 레드 와인을 만드는데 백포도를 첨가해 즉각적인 향의 발현과 짧게 숙성을 시켜도 마시기에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이른바 끼안티 제조법(Chianti formular)을 만들어 와인생산자에 유표시키기에 이르렀다.

DNA에 와인이 녹아 있다고 믿는 이태리인들이기에 전쟁으로 망가졌던 포도밭 또한 속속들이 재건됐다. 토스카나에도 봄이 찾아온 것이다. 또한, 외지인의 토스카나 진출도 줄을 이었고, A1 고속도로(Autostrada A1)을 통해 밀라노로 대표되는 북부의 부호들이 주말농장의 형태로 토스카나에 진출하는 일도 늘어났던 것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성장동력은 당시의 토스카나가 보여줄 수 없었던 진일보한 품질과 과거의 와인들과는 스타일적으로 차별화되는 새로운 와인에 대한 목마름을 증폭시키게 되는데, 이에 대한 해답이 바로 수퍼 토스카나였던 것이다.

▲사진=Old Times 04.

그 실현 방법을 찾던 중에 산지오베제나 기타 토스카나 전통품종에 비해 풍미와 색의 존재감이 뚜렷한 외래품종, 보다 정확히는 프랑스 품종들을 도입하게 된 것이고, 그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 바로 1968년 빈티지로 세상에 나온 테누타 산 귀도(Tenita San Giudo)의 사시까이아(Sassicaia)였던 것이다.

토스카나의 서쪽 해안가인 볼게리((Bolgheri) 지역의 사시까이아를 시작점으로 하여 시작된 수퍼 토스카나의 바람은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며 산불처럼 토스카나의 내륙지역으로 번져갔다.

▲사진=antinori.

내륙의 구릉지대인 끼안티 클라시코 지역에 속하는 생산자들 중에서 국제품종을 사용해 만든 와인들을 자신들의 최고가 와인으로 내어 놓는 일들이 차츰 생기게 됐다.

이것은 수요와 공급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토스카나 내륙 지역은 포도재배의 역사가 깊어 해안가에 비해 새로운 경작지를 찾거나 이미 토스카나 전통품종이 심겨진 포도밭에 손을 대는 것도 간단치가 않았으므로 생산량이 소량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해안가에서 성공적으로 신고식을 마친 국제품종들의 저력을 감안할 때 내륙의 생산자들은 소량 생산되는 당시로선 드물게 이 와인들을 전통적이고 생산량도 많은 다른 와인들보다 고가로, 많은 경우에 자신들의 최고 와인으로 내놓았던 것이다.

그것이 의도적이었던, 아니었던 간에 토스카나적 순수성의 상징인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의 자존심은 수퍼 토스카나로 인해 흠집이 가게 됐다.

수퍼 토스카나는 약진을 거듭했는데 마치 캘리포니아의 컬트 와인(Cult Wine)들이 그랬듯, 제한적 생산량과 뛰어난 고품질로 미국과 영국의 와인 미디어의 관심을 사로잡으며 급성장을 거듭했다.

▲사진=Giorgio Primo.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끼안티 클라시코 콘소시움(Consorzio del Vino Chianti Classico)에 속하는 생산자들 중에서는 끼안티 클라시코 DOCG를 유지하면서 수퍼 토스카나와 견줄 수 있는 와인을 만들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여 2003년 6개의 와이너를 주축으로 하여 '수퍼 끼안티 클라시코(Super Chianti Classico)'를 출시하게 됐다.

산지오베제를 최소 85% 이상을 사용해 만들어지는 수퍼 끼안티 클라시코는 최대 15%까지 산지오베제 이외의 다른 토스카나 전통의 레드 품종 또는 멀롯(Merlot), 카버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등의 국제품종을 사용할 수 있는데, 품질적으로 대단히 뛰어나며 개인적 견회로는 상급의 수퍼 토스카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와 함께 토스카나를 대표하기에 손색이 없으면서도 가격적으로 훨씬 높은 밸류를 제공한다. 수퍼 끼안티 클라시코는 가격적으로 평범함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들에 비해 두세 배 혹은 그 이상의 가격을 형성하지만 이 와인들의 품질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다.

그리고 수퍼 끼안티 클라시코는 수퍼 토스카나처럼 자신들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한 ‘마케팅 용어’이며, 법적 용어가 아니므로 레이블에 기재되지 않는다. 수퍼 토스카나가 ‘보르도 지역의 그랑 크뤼(Grnad Cru)’처럼 비교적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와인의 우수함을 피력할 수 있는 효과적인 용어였던 것이 비해, 수퍼 끼안티 클라시코는 좁은 지역을 대상으로 했고, 마케팅 추진력 또한 강하고 지속적이지 못한 편이이서 현재는 그다지 널리 사용되지 않고 있다.

수퍼 토스카나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은 대체로 신선하며 호의적인데 이러한 인식은 수퍼 토스카나를 위해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IGT 등급에 대한 호감으로까지 이어져서 소비자들은 토스카나 지역의 IGT 등급 와인은 뭔가 다르고 좋을 것이다는 막연한 기대를 자주 하는 반면, 재미있게도 동급인 프랑스의 Vin de Pays 등급 와인들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박한 대접을 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와인애호가들의 한 사람으로서 이태리가 전통성과 특유의 이태리스러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계속 스스로를 진화시켜나갈 방법을 찾기를 기대해보며 이번 칼럼은 마친다.

다음호 연재 : 거품학 개론1

신성호 와인칼럼니스트｜altoman@naracell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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