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캘리포니아의 골드 러쉬는 와인이다” 역사와 전통이 뚜렷해 보고 듣는 것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유럽의 와인이라면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미국 와인으로 아직도 발견의 즐거움이 충분하다.

▲사진=Warren and Mike.[사진출처= http://www.foodarts.com ]

[골프타임즈=신성호 와인칼럼리스트] 파리의 심판으로 국제적 명성과 자국 내에서의 판매를 위한 교두보 구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미국 와인은 이후 제2차 중흥기를 구가하며 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견실한 성장을 거듭했다.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소량 생산에 근거한 희소가치와 이를 뒷받침하는 고품질을 핵심 속성으로 하는 컬트 와인과 부띠끄 와인을 새로운 성장 모멘텀으로 삼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게 됐다.

이러한 성공의 기저에는 무엇보다 국제품종의 대명사로 불리는 카버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품종에 대한 탁월한 이해가 중요했는데, 카버네 소비뇽을 100% 또는 주 품종으로 사용해 양조된 와인에 있어서 미국은 프랑스 보르도와 대칭적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확고히 입지를 구축했다.

샤도네이(Chardonnay) 품종에 있어서도 미국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올렸다. 무르익어서 완숙하며 오키하고 버터와 같이 풍족한 질감을 지닌 농밀한 이른바 미국 버전의 샤도네이 또한 대중의 큰 지지를 받았는데, 이 두 품종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지난 두 편의 칼럼에서 살펴보았듯이 근대화의 역사는 불과 두 세대, 국제화의 역사는 이 보다 더 짧아서 고작 한 세대 정도인 미국 와인의 성공은 실로 숨가쁘게 이루어져 왔다.

품질 못지않게 역사성과 전통을 중시하는 와인문화의 특성으로 볼 때, 이러한 고속성장은 많은 오해와 편견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연작 칼럼을 마무리하는 이번 칼럼에서는 미국 와인의 속성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미국 와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오해와 편견1) 미국 와인은 다 비슷비슷하다.
미국 와인에 대한 부정적 의견 중 아마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미국 와인의 세부산지별, 생산자별로 차이점이 분명 있음에도 다 비슷비슷하다는 인식이 넓게 깔린 1차적 이유는 포도품종의 선택과 집중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미국은 국가 전체 와인 생산량의 약 90%를 캘리포니아가 담당하고 있는데, 캘리포니아의 총 포도밭 면적 중에 카버네 소비뇽과 샤도네이가 심겨진 면적이 각각 약 30%와 60%임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이다.

또한 제2의 와인산지인 워싱턴주의 경우 이 두 품종의 재배면적이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전체적으로 미국 와인에 기대할 수 있는 포도품종적 다양성은 넓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미국에서 재배되는 포도품종의 다양성은 오히려 과거에 비해 줄고 있는데, 그것은 테루아와 포도품종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제한적이었을 때 실험적으로 재배하던 많은 포도품종들이 자연스레 정리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함에도 미국 와인은 캘리포니아, 워싱턴, 오레곤의 서부 3주와 동부의 뉴욕주를 통하여 가장 중요한 와인의 유형들인 보르도 스타일 와인(카버네 소비뇽, 멀롯, 보르도 블렌드), 부르고뉴 스타일 와인(피노 누아, 샤도네이), 론 스타일(시라, 론 블렌드), 소비뇽 블랑, 리슬링, 일부 이태리 품종을 고루 커버하고 있기에 품종적 다양성이 필요한 만큼은 충분히 확보돼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수출시장에서는 그런 스펙트럼 중의 일부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로, 뉴욕주의 핑거레이크에서 만들어지는 리슬링은 매우 유럽풍의 좋은 와인인데 생산량이 작아서 대부분 미국 내에서 소비된다.

▲사진=(왼쪽부터) Napa valley vintners association logo, Washington state wine commission logo, Oregon wine, Finger Lakes Riesling.

◇오해와 편견2) 미국 와인은 스타일적인 차이가 없다.
미국 와인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와인의 스타일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품질과 생산량 모두에서 미국의 와인산업을 견인하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천혜의 일조량 덕분에 포도의 당분 축적과 폴리페놀류의 숙성도(phenol;ic maturity)가 좋으며 포도가 덜 익은 것을 걱정할 일은 거의 없다. 대신 캘리포니아 농부들의 과제는 포도가 과숙되지(overripe)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은 와인풍미의 여러 요소 중 과일풍미가 중심이(fruit driven)되며, 과일품미의 풍부함과 완숙한 탄닌의 매끄러움은 미네랄 느낌(minerality)이나 토양적 느낌(Earthiness)과 같은 와인의 다른 요소들을 가리고 있다.

또한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유럽에 비해 1~2%정도 높은데 알코올은 그 물성(物性)상 약간 단 느낌과 유질감을 갖는데 그 결과 와인은 전체적으로 풍부한(rich) 풍미와 충만한(lush, opulent) 식감을 가지며 영(young)할 때도 음용에 크게 무리가 없다.

그래서 미국 와인은 사람에 비유하자면 솔직하고 직접화법을 구사하며 자신을 효과적으로 어필하는 사람과 같다. 미국 와인의 이러한 속성은 매우 소비자 친화적인 것으로서 와인 음용의 역사가 길지 않아서 장기 숙성형 와인이나 올드 빈티지에 대한 인식이 깊지 않았던 미국의 소비자들에게 매우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다.

미국 와인의 이러한 태생적 소비자 친화성은 미국의 방대한 영토와 미국적 마케팅 DNA와 결합하여 더욱 공고화됐는데 생산자들은 다수의 소비자가 찾는 와인의 스타일과 목표 품질을 설정해두고 거기에 적합한 포도를 비단 자기 소유의 포도밭 뿐만이 아니라 보다 넓은 출처로부터 조달해서 와인을 만드는 생산방식을 사용하면서 대형생산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와인생산자들은 파리의 심판 이후 찾아온 80~90년대 미국 와인의 2차 중흥기에 이러한 방식으로 규모의 경제를 키우며 포도밭의 테루아와 전통, 생산자의 창의력을 규제하는 유럽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정서를 지닌 고급 와인생산자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게 하였고, 비슷한 시기에 호주, 뒤이어 칠레가 이 대열에 동참했다.

이렇듯 미국 와인의 발전과정을 지켜보면 미국 와인의 스타일적 차이가 없다라는 인식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데, 이것은 과일의 일이며, 오늘날 테루아주의의 깃발을 내걸고 급속히 진화하고 있는 미국 와인의 현 주소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오해와 편견3) 미국 와인은 테루아 보다는 브랜드 스타일을 더 강조한다.
미국 와인에는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테루아적 다양성이 빈약하고 와이너리 또는 브랜드 스타일이 앞선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말이다. 이것은 아래의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먼저, 미국 와인은 테루아적 다양성이 빈약하다기 보다 테루아 중시의 분위기가 그 동안 약했고, 대신 휴면 팩터(human factor)와 상생 협동, 전문적 분업화가 더 강조됐다고 봐야 한다.

짧은 근대화의 역사를 가진 미국 와인계에는 수 많은 영웅과 비전가들이 있는데 그 1세대 중의 일부는 아직도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다. 그들은 높은 공동체 의식을 지니고 서로가 긴밀히 협력하고 더 나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정보공유에 앞장섰다.

그리고 지역공동체의 이름에 걸맞지 않는 품질의 와인이 나오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유독 뚜렷했는데, 법과 제도에 의한 규제가 아닌 생산자들의 자발적 의지와 경쟁심에 보다 의지했다. 특히 나파 밸리는 이러한 전통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광활한 포도재배지를 대상으로 하여 만들어진 종합적인 브랜드가 많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처럼 대형 와인산지에서는 생산자가 추구하는 와인의 스타일과 목표 품질을 설정해두고 필요한 포도를 부분적 또는 전적으로 조달해서 와인을 만드는 일이 흔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어떤 와이너리 또는 브랜드의 와인이 어떤 스타일이다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했고, 각각의 세부산지의 특징을 알려는 욕구는 상급애호가가 아니라면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사진=(왼쪽부터) Napa valley, Sonoma Cost, Washington valley.

◇미국 와인의 오늘과 미래
90년대 컬트 와인과 부띠끄 와인의 득세는 상업적 버즈(buzz)만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광대역 포도산지를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양조방식 이외에 특정 소지역, 특정 단일 포도밭(single vineyard)에서 나오는 포도로 만들어져 생산량이 한 줌에 불과한 와인의 성공시대를 연 것이다.

포도의 공급출처를 지극히 제한해 만든 와인들은 당연히 그 출처가 갖는 장소성(sense of place 또는 somewhereness, 즉 테루아)을 강조한 와인이 되는 것이고, 이 와인들에는 특정 소지역이나 특정 단일 포도밭의 이름이 레이블에 명시되는 것이며, 생산자는 이것을 추가적인 정보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지역별 품종전문화 노력에 힘입어 소노마 카운티의 해안가(Sonoma Coast)와 러시안 리버 밸리(Russian river valley)처럼 해풍의 직접적 영향권에 놓이며 보다 온도가 선선한 지역들을 피노 누아와 샤도네이 품종의 새로운 대안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포도 재배면적이 나파 밸리 보다도 작은 워싱턴주 또한 뉴 월드의 과실 풍미와 올드 월드의 산미(New world fruit, Old world acidity)를 함께 지닌 테루아를 강조하는 프리미엄 와인 전략으로 그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워싱턴주의 경우, 총 포도 재배면적이 약 40,000에이커로 나파 밸리보다 약 13% 가량 적다.)

끝으로 테루아주의의 득세와 함께 2000년대 이후 미국 와인계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트렌드는 와인의 음식친화성(food friendliness)을 언급하면서 3편의 연재를 마치고자 한다. 와인만의 홀로서기가 아닌 음식과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음식친화성이 좋은 와인에 대한 요청이 늘면서 생산자들은 과도하게 오크 숙성됐거나 필요 이상으로 풀 바디(full body)한 와인을 자제하고 점차 자연스럽고 유연한 미감을 지닌 와인에 보다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진정한 캘리포니아의 골드 러쉬는 금이 아닌 와인이다” 역사와 전통이 뚜렷하기에 가만히 보고 듣는 것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유럽의 와인이라면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미국 와인이며, 그러하기에 미국 와인에는 아직도 발견의 즐거움이 충분하다고 하겠다.

다음호 연재 : 슈퍼 토스카나 와인의 고찰1

신성호 와인칼럼니스트｜altoman@naracell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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