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급 레스토랑들은 자국산인 미국 와인을 냉대하여 프랑스, 이태리, 독일 와인을 주로 팔았다. 와인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 음료라기 보다 미식가들과 문화적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음용하던 음료였다

[골프타임즈=신성호 와인칼럼리스트] 2008년 리만 브라더스 사태로 세계적 경제위기의 진원지가 된 미국은 어려운 경기 속에서도 작년을 기점으로 세계 최대의 와인소비국으로 부상했다. 미국의 와인소비 증가세는 무엇이든 다 빨아당기는 '진공청소기' 중국을 비할 바는 못되지만 와인선진국 대열에 속한 나라 중에서는 괄목할 만한 수준이다.

미국은 예전부터 와인을 많이 마셨던 것일까? 사실 그렇지 않다. 평범한 미국사람들이 와인을 어느 정도 마신다고 말할 수 있는 시기는 어림잡아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오늘날 미국을 넘어 세계 정상급의 와인산지로 인정받는 나파 밸리는 1960년대만 해도 심지어 같은 캘리포니아주의 남부에서 사는 사람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을 정도였으며, 1976년에 이른바 “파리의 심판”으로 알려진 역사적 사건이 있기 전까지 미국의 고급 레스토랑들은 자국산인 미국 와인을 아주 냉대하여 프랑스, 이태리, 독일 와인을 주로 팔았던 것이 사실이다.

와인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 음료라기 보다는 미식가들과 문화적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음용하던 음료였다.

▲사진=(왼쪽부터) 스택스립 와인 셀라 창업자 - 워런 위니아스키, 슈램스버그 빈야드 창업자 - 잭 데이비스.

미국에서 1960년대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품은 선구자들이 자신의 인생과 이름을 걸고 근대적 와이너리를 창업하던 시기였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은 로버트 몬다비(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 조 하이츠(하이츠 셀라), 잭 데이비스(슈램스버그 빈야드), 알 브라운스틴(다이아몬드 크릭 빈야드), 워런 위니아스키(스택스립 와인 셀라) 등이었는데 60년대 중반 무렵에 나파 밸리의 와이너리 숫자는 고작 20여 개뿐이었다.

여기서 타임머신을 타고 그 보다 100년 전인 1860년대로 가보자. 1848년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 미국 각 처뿐만 아니라 남미와 유럽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미국 서부로 향했다.

이 골드러시 시대에 많은 왜건이 사람들과 짐들을 실어 날랐고, 거친 서부의 환경에서도 잘 견디는 블루진이 등장했다. 우리가 이미 서부영화를 통해서 익숙한 모습이다. 누구나 일확천금의 주인공이 되고, 누구는 오히려 재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유럽인들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지고 자본이 축척되자 포도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지닌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가에 자리한 나파 밸리와 소노마 카운티에서 자연스레 하나 둘씩 포도밭과 와이너리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미국 와인사의 최초창기 와이너리로 기록되는 부에나 비스타 와이너리(1857년 설립), 찰스 크룩(1861년 설립), 슈램스버그 빈야드(1862년 설립), 베린저(1876년 설립) 등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사진=(왼쪽부터) 슈램스버그 빈야드 초대 창업자 - 야콥 & 아니 슈램, 베린저 빈야드 창업자 - 베린저 형제 외.

또한 이 시기는 절묘하게도 포도나무의 페스트라고 부르는 필록세라 질병이 프랑스로부터 전 유럽으로 확산되며 포도밭을 닥치는대로 괴멸시키던 시기여서 캘리포니아 와인들은 와인의 본 고장 유럽으로 손쉽게 팔려나가며 르네상스의 시기를 구가하게 되는데 이것을 미국 와인의 제 1대 중흥기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미국인들은 와인보다는 위스키로 대표되는 포도주를 주로 마셨다. 미국은 청교도주의에 입각해 세워진 국가로서 음주가 가지는 사회적 폐단에 대해서 다른 나라에 비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전반까지 특히 강했는데 제 1차 세계대전이라는 세계적 재앙과 국가적 기강이 확고히 뿌리내리지 못했던 분위기 속에서 국민들은 많은 양의 술을 마셨고 그 대부분은 포도주였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사망자의 수가 늘고, 음주에 따른 각종 사건사고가 줄지어 생기자 마침내 미국 정부는 상업적 용도의 알코올의 생산 및 유통을 전면 금지하는 금주령(The Prohibition)을 1919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까지 이른다.

▲사진=FN_Winery1979.

금주령 시행 이후 표면적으로는 알코올 소비와 그에 따른 해약이 줄어든 듯 보였으나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법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술을 구하거나, 합법적으로 포도즙처럼 술의 원료를 사서 집에서 밀주를 직접 담궈 마시기도 했다. 또한 마피아가 주류 밀거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등 다른 방향으로 금주령의 폐해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미정부는 마친내 15년간 유지해 온 금주령을 1933년 해체하기에 이른다.

금주령은 미국 와인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금주령 초기에 와이너리들은 와인이 아닌 발효 전의 포도즙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 포도즙은 집이나 마피아들이 담그는 밀주의 주원료가 되었으나 포도즙 판매만으로 와이너리를 유지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많은 양조장이 문을 닫았다. (이 와중에 베린저를 포함한 극소수의 와이너리는 공식적으로 미사주 양조를 허가 받아 명맥을 유지했다.)

금주령이 내려지기 전에 캘리포니아에 800개 정도의 와이너리가 있었는데 금주령이 해체된 1933년에는 고작 140개 정도의 와이너리만 남아 있었다. 폐쇄되고 주인을 잃은 양조장과 포도밭들은 일부 재건되었으나 미국인들의 와인 소비는 금주령 이전과 비교하여 크게 늘지 않았다.

1930년대에서부터 1950년대까지 여전히 어려운 시기를 거치는 동안 비전가들은 나파와 소노마에서 포도밭과 양조장을 재건하고, 유럽의 포도재배와 양조기술을 습득하고자 노력했으며, 유럽의 고급 포도품종들을 자신들의 포도밭에 심고 양질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당시와 1960년대까지도 캘리포니아에서 주로 생산되던 와인들은 대부분 포트와인과 유사한 달콤한 와인이었다. 하지만 선구자들의 지칠줄 모르는 노력은 마침내 1976년 파리 테이스팅이라는 예상 밖의 급물살을 타고 미국와인 품질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게 된다.

다음호 연재 : 미국 와인의 어제와 오늘Ⅱ

신성호 와인칼럼니스트｜altoman@naracell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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