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글라스는 와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서 모양과 크기에 따라 맛과 향에 영향을 미친다. 와인을 즐길 때, 같은 와인이라도 글라스의 종류에 따라 전혀 다른 캐릭터를 뿜어내는데 포도 품종에 따라 산도, 타닌, 알코올 등의 밸런스가 달라진다

[골프타임즈=정필훈 와인칼럼리스트]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와인의 본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와인글라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좋은 와인도 그에 적합하지 않은 글라스를 사용한다면 당신이 기대하고 있는 즐거움을 선사하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실망을 주거나 혹은 와인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로 기억될 수 있다.

이에 부족하지만 올바른 와인문화의 정착과 확산을 위하여 필자의 지식을 기술한다.

19세기 이전까지 와인글라스는 표면에 조각을 새기고 색깔을 입히는 것이 당시의 유행이었다.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긴 다리와 얇고 섬세한 민자 글라스가 점차적으로 확산되었으며, 와인산업의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와인의 향과 맛을 극대화 시켜주는 기능성과 현대적이고 모던한 디자인, 내구성 등 우수한 와인의 양적, 질적 수요증대와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면서 더욱 변모하게 된다.

와인글라스는 와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서 모양과 크기에 따라 맛과 향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와인을 즐길 때, 같은 와인이라도 글라스의 종류에 따라 전혀 다른 캐릭터를 뿜어내게 되는데 포도 품종에 따라 산도(Acidity), 타닌(Tannin), 알코올(Alcohol) 등의 밸런스가 달라지고, 크기에 따라 아로마의 집중도와 특성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아로마의 농도나 질은 단지 와인 자체의 성격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글라스의 모양과도 연관이 있다.

특히 와인의 향은 제한된 온도 내에서 점차적으로 본연의 성질을 나타낸다. 낮은 온도에서는 후각의 집중도를 높여야 느낄 수 있으며, 높은 온도에서는 알코올 향이 먼저 올라와 제대로 그 와인의 향을 느낄 수가 없다. 즉, 적정 온도와 적정양이 서브되지 않으면 와인 본연의 맛과 향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와인이 글라스에 따라지는 순간부터 밀도와 비중의 차이에 따라 여러 층의 다양한 아로마가 글라스를 채우게 되는데 글라스의 모양과 크기가 무게감 있는 아로마의 전형인 우드향이나 알코올향 등은 글라스 바닥으로 내려 앉히게 되고, 야채나 흙내음, 미네랄 등의 향의 입자는 글라스 중간부분을 채우게 된다.

또한 꽃향기나 풍부한 과일 향을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아로마들은 글라스 상위부분에 자리하고 있어 다양한 아로마를 순차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1차향(정지향)이라고 하며, 2차향(발산향) 즉, 스월링(Swelling)을 통하여 글라스 안쪽 표면이 넓게 얇은 와인 막을 씌워지게 되고, 이 얇은 막은 아로마의 밀도와 발산을 촉진시킨다. (와인을 다 마시고 나면 빈 글라스에서 나는 향을 맡아보면 쉽게 느낄 수 있다.)

긴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병속에서든 오크통에서든 와인의 향기는 세련되고 복합미를 더하게 되는데, 글라스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 향의 입자를 흡입하고 부케의 다양한 층을 느낄 수 있도록 글라스의 크기와 모양이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맛은 어떻게 달라질까?

사람의 혀에는 쓴맛, 신맛, 단맛, 짠맛 등을 느끼는 부위가 다르기 때문에 와인이 입 안 어느 부분에 먼저 닿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게 감지된다.

입구가 넓게 오픈된 모양의 글라스는 자연적으로 고개를 숙여 한꺼번에 많은 양이 입안으로 들오오지 않게 한다. 반면에 입구가 좋은 모양의 글라스로 와인을 마시게 되면 와인의 무게감에 의해

자연스럽게 입안으로 흘러 들어올 수 있도록 목을 뒤로 젖히게 된다. 이는, 혀의 표면에 넓게 분포되어 있는 미각신경은 혀 부위에 따라 감수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짠맛은 혀 둘레의 일부분, 신맛은 혀 둘레부분, 단맛은 혀 끝부분, 쓴맛은 혀뿌리 부분에서 강하게 느껴지게 된다.

여러 브랜드의 글라스 중에 림(Rim) 부분이 두껍고 뭉뚝한 글라스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파손의 걱정이 없고, 막잔이라 표현하는 글라스)

그런 와인글라스에 와인을 마시게 된다면 당신은 유독 쓴 맛이 강하게 작용하는 현상을 보게 될 것이다. 글라스에서 입안의 혀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림(Rim)의 두께가 얇은 글라스는 와인을 정확한 부위에 전달해주지만 두꺼운 글라스는 혀 위에 와인을 퍼뜨리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므로 와인의 밸런스가 깨지고 쓴 맛과 알코올향이 강하게 오는 현상을 체험할 수 있다.

와인의 포도 품종이나 지역에 따라 글라스는 구분할 수 있는데 와인의 다양한 복합미와 농밀함을 즐기고 싶다면 계란형 모양의 보르도 스타일이 적합하며, 섬세한 향과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고 싶다면 바디가 뚱뚱한 모양의 버건디 스타일, 균형잡힌 밸런스와 쌉쌀한 풍미, 감칠맛이 도는 산도를 즐기고 싶다면 볼이 약간 작은 소비뇽 블랑 스타일의 글라스가 적합하고, 풍부한 과일향과 신선한 미네랄 터치를 느끼고 싶다면 볼이 넓은 샤도네이 스타일의 글라스를 사용하는 것이 와인의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오스트리아의 리델(Riedel)과 독일의 슈피겔라우(Spiegelau)를 최고의 글라스로 인정한다.

리델은 기능성 잔으로서 정말 다양한 종류의 글라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랑 크뤼를 비롯한 다양한 프리미엄 와인들 곁에는 항상 리델이 존재하고 있다. 반면, 슈피겔라우는 세계적으로 최대(最大)의 글라스라 할 수 있다. 세계 유수의 호텔 및 레스토랑, 와인바, 와인숍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모던하면서도 개성이 뚜렷하게 돋보이는 감각적인 디자인들이 다양한 시리즈에서 나타나며, 합리적인 가격으로 와인 애호가를 비롯한 수많은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05년 말 이 두 회사가 합병해 세계 최고의 글라스 왕국이 탄생했다.

리델의 기능성과 슈피겔라우의 디자인이 더해져, 최근 출시되고 있는 슈피겔라우의 신제품을 살펴보면 슈피겔라우 본면의 역동적인 디자인에 리델의 기능성과 기술력(Cut Rim)이 더해져 한층 업그레이드 된 품질을 느낄 수 있다. 좋은 와인은 품질이 뛰어난 포도에서 나오는 것처럼 좋은 글라스 역시 좋은 재료와 기술력이 더해져야 한다.

끝으로 와인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오해와 편견을 쉽게 가진다.

필자가 2010년 글라스 테이스팅 강의를 하던 중 어떤 사장님께서 본인은 10년 이상을 와인을 마셨지만 샤도네이가 이렇게 맛있는 와인인 줄 몰랐다며 놀라워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마도 어울리지 않는 글라스에 와인을 드셔서 '샤도네이는 별로야, 내 입맛에는 안맞아.

…' 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아무리 값비싸거나 가격대비 훌륭한 품질을 자랑하는 와인도 일반 글라스(흔히 병맥주잔)에 먹는다면 아무런 향도 아무런 맛도 느낄 수가 없을 것이며, 와인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잘못 이해하거나, 아주 받지 못할 수도, 더 나아가 오히려 불쾌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자리에 좋은 와인과 좋은 사람들, 좋은 글라스가 함께 있어야 비로소 그 자리가 빛나는 것이 아닐까?

올바른 와인 문화의 정착을 위해 와인 마니아로서 힘을 써야겠다.

다음호 연재 : 미국 와인의 어제와 오늘Ⅰ

정필훈 와인칼럼니스트(단하G&B 영업팀장)｜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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