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온 여자의 걸음이 갑자기 빨라졌다. 잃어버렸던 물건을 어디에 놓고 왔는지, 그 장소가 생각난 듯 서둘러 건널목을 건너 신세계 백화점 앞으로 가더니 택시를 탔다. 여자는 과천으로 가자며 매우 초조한 얼굴을 했다. 두 손을 앞 의자의 등받이를 짚은 채 앞을 주시했다.

택시기사도 여자가 왜 서두르는지 모르지만, 속도를 냈다. 택시는 동작대교를 건너더니 이내 사당사거리를 지나 남태령을 넘었다. 택시가 고개 정상을 치고 내려갈 때 여자는 심호흡을 서너 번 했다. 그때 택시기사가 물었다.

“과천 어딥니까?”

여자는 재빨리 말했다.

“계원갤러리요. 계원.”

택시기사가 계원갤러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안내해 달라고 하자 여자는 주공아파트 4단지 정문 앞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택시에서 내린 여자는 뛰다시피 걸음을 재촉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고 숨이 찼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주택가를 가로질러 굴다리를 빠져나온 여자는 그제야 숨을 골랐다. 계원갤러리의 이정표가 눈앞에 있었다.

서울의 북창동에서 과천의 계원갤러리까지 단숨에 달려왔지만,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갤러리 뒤쪽의 작은 정원으로 가며 전화를 걸었다.

“연희야! 들어오지 않고 거기서 뭐 하는 거니?”

아! 이 여자의 이름이 연희였구나. 성은 뭐지?

“경란아! 나 미치겠어.”

아! 이 청바지 여자는 경란이고. 이 여자 성은 또 뭐지?

“너 아까 이상한 말 하던데 무슨 일이야?”

여자, 연희는 경란의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다 고개를 숙였다. 눈빛이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가 왜 경란에게 허겁지겁 달려왔고, 또 달려오기 전에 어떤 내용의 전화를 했는지 모르지만 아주 무거운 불안은 감지할 수 있었다. 갤러리의 전시장으로 들어가 작품 감상하려던 마음을 잠시 접었다. 두 여자가 나누는 대화를 자세히 듣기 위해 연희의 등 뒤로 다가갔다. 연희의 절망이 무엇인지 알아내어 동자에게 도움을 부탁해야겠다며 숨소리조차 죽였다.

연희는 앉은 자세로 상체를 잔뜩 움츠렸고, 경란은 그런 연희를 답답한 표정에 조금은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

“죽고 싶다니? 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

연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해야 돕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니. 연희야!”

그녀가 천천히 상체를 펴며 팔짱을 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마치 숨쉬기를 추기라도 할 듯 참았다가 길게 토하며 눈을 감았다.

“그 자식, 때문이니?”

그녀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떡였다.

“너 미쳤니? 그 인간은 아니라고 했잖아. 이 병신아!”

“…….”

“그 자식 때문이라면 말할 것 없어. 당장 머리에서 지워.”

“난…….”

경란은 그녀의 말문을 막았다. 또 그 말을 하려면 가라고 했다. 이제는 더는 듣지 않겠다고 했다. 그 말끝에 몇 번을 더 확인해 줘야 믿을 거냐고 화를 냈다. 경란이가 그녀에게 확인해 준 것이 무엇일까? 그 인간은 아니라고 강하게 불신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목매는 남자의 뒷조사를 한 게 확실했다. 그 결과를 알려 주었는데 그 사실을 믿지 않고 친구가 계속 목매자 화내는 게 분명했다.

“난 믿을 수 없어. 그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야.”

“정말 믿을 수 없니? 좋아.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해줄게.”

연희의 젖은 눈빛이 경란의 얼굴에 꽂혔다. <계속>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그림｜김동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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