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를 풍겨 파리나 거미, 개미, 땅강아지 같은 주로 땅에서 기어 다니는 곤충을 매개채로 수정을 한다니 살아가는 방법도 특이

봄기운이 나의 온 몸을 깨우려 할 즈음 기지개를 펴고 오랜만에 산을 기어올랐다.산을 오르면 따스하게 반겨 줄 것만 같았던 산골짜기가 차디찬 바람만 안겨 줄 뿐 봄소식이라곤 눈 씻고 찾아 볼 수 없이 쌀쌀하다.

산등성이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을 보며 ‘아직 봄이 오긴 멀었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어! 저게 뭐야?”

눈 속을 비집고 올라오는 간 큰 녀석이 보인다.

그냥 눈이 아니라 두께가 2~3cm 되는 얼음 속을 비집고 올라오는 독한 녀석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녀석이 어떻게 얼음을 헤집고 나왔을까?” 궁금하다.

산행하던 걸음을 멈추고 얼음 속에 머리를 디밀고 나오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꽃 생김새가 부처님을 닮았다하여 앉은 부채라 부르는 꽃이 이제 막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혹자는 푸른 잎이 부채만큼 넓어 앉은 부채라고도 한다는 이 꽃은 곰풀이라고도 부른다. 왜? 겨울잠을 막 깨어난 곰이 가장 먼저 먹는 풀이라고 해서 부른다고 하니 곰에게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식량을 제공해 주는 고마운 풀이다.

미국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하여 스컹크캐비지라고 부른다는데…

하지만 우리나라 앉은 부채는 냄새가 적다고 한다. 이른 봄철 먹을 것을 못 찾은 들쥐들이 꽃을 파먹기도 한다니... 생각보다 냄새가 지독하지 않은가 보다.

그럼 그렇지. 지독한 냄새가 나는 풀을 어떻게 먹어?

하긴 더 독한 냄새가 나는 마늘을 먹으며 사람이 된 곰이니 그 깐 냄새쯤이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다.

꽃은 향기를 뿜거나 달콤한 꿀샘으로 벌과 나비를 유혹하여 꽃가루를 받아야 하는데, 이 앉은 부채는 냄새를 풍겨 파리나 거미, 개미, 땅강아지 같은 주로 땅에서 기어 다니는 곤충을 매개채로 수정을 한다니 살아가는 방법도 특이하다.

봄이라 하지만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얼음을 뚫고 솟아나오는 것일까?”

앉은 부채는 항아리 같은 불염포로 싸여 있어 발열작용을 하는 꽃차례의 온도를 잘 보존하기 때문에 불염포 내부온도가 주변 온도보다 섭씨10도 정도 높아 서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니 경이롭게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이 꽃을 보자, 비로소 봄이 찾아온 느낌이 든다.

천남성과에 속하는 다년생초인 앉은 부채는 땅위로는 줄기가 거의 자라지 않고 땅속 깊이 뿌리줄기가 자란다.

골짜기나 약하게 경사진 곳에서 바닥에 파묻혀 꽃자루가 거의 없이 잎과 꽃만 핀다. 키가 10~20cm 정도 밖에 안 되고, 잎은 길이가 30~40cm, 폭이 35~42cm로 둥글고 길며 끝이 뾰족하고 열매는 6~7월경 둥글게 모여 달린다. 그래서 부채 닮았다고 하는가 보다.

잎은 나물로 먹지만 뿌리에는 독성이 있어 그냥 먹으면 안 된다. 하지만 구토제, 진정제, 이뇨제로 한방에서 사용한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할린 등지에서 분포하는데, 사람에게는 그냥 먹으면 독이 되지만 겨울잠을 막 깨어난 곰이나 야생동물들에겐 없어선 안 될 귀중한 식량이 되고 있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 뱃속에 쌓여있던 배설물이 꽉 들어차 있다가 앉은 부채를 먹고 나서야 시원하게 배설물을 쏟아 내면서 한해를 시작한다.

배 아팠을 때 시원하게 배설을 한 후의 상쾌함이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운동부족이었던 야생동물들이 앉은 부채를 먹고 배설의 쾌감을 느끼며 상쾌한 한해를 시작한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고맙고 귀중한 꽃이라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류시균｜동화작가, 칼럼니스트

사진제공｜김봉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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