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는 내 물음을 외면했다.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원목 테이블 위에 턱을 받히고 앉아 여자의 얼굴, 눈과 코에 입김을 불며 장난치고 있었다. 코를 찡긋거리며 그녀의 얼굴 냄새를 맡다 뒤로 물러났다.

“아! 지독해. 화장품 좀 좋을 걸 쓰지.”

“동자 형님! 거짓말이지. 수라가 날 죽였다는 거.”

동자 옆에 쪼그려 앉았다.

“싸구려 화장품으로 떡을 쳤어. 덕지덕지 처발랐어. 그런 널 누가 사랑하니?”

“좋아. 동자 형님! 수라가 날 죽인 게 사실이라면 왜 죽인 건데? 그 이유가 뭐야?”

“얼굴도 뜯어고치다 못해 아예 새 얼굴로 만들었어. 야! 요것아! 원판이 훨씬 더 예쁘다. 예뻐!”

동자는 계속 여자의 흠만 잡았다. 허리와 아랫배의 군살도 한 가마니씩 들어냈다고 혀를 찼다. 이 여자, 완전히 성형에 미친 여자야. 어떻게 부모가 준 소중한 몸이 성한 곳이라곤 한 군데도 없니? 넌 그 벌을 톡톡히 받아. 두고 봐. 실연의 고통보다 더 큰 아픔을 사랑니가 줄 테니. 동자는 마치 자기가 아픈 것처럼 진저리쳤다.

카페의 남자가 신 나는 멜로디의 음악을 틀었다. 커피도 뜨거운 것으로 바꿔주며 밝은 미소를 보냈다. 여자는 남자를 힐끔 쳐다보곤 다시 눈을 감았다. 여자의 기분을 풀어주려던 남자는 멀쑥한 표정으로 출입문 쪽의 테이블에 앉았다. 여전히 여자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는 동자에게서 떨어져 남자 옆 테이블을 차지했다. 저 여자의 죽음을 보면 수라가 왜 널 죽였는지 알 것이라고 한 동자의 말이 머리에서 찬바람을 일으켰다. 얼음이 박힌 찬바람이 천천히 회오리바람으로 치솟으면서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주먹보다 큰 우박이 양철지붕에 와르르 쏟아지는 것보다 더 크고 무서웠다.

“그렇게 절망하면 답을 못 찾아.”

동자가 툭 발길질한 후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이승에 있을 때 일어난 일이야. 그냥 즐기면서 더듬어야 사건의 내막이 풀려.”

머리를 흔들어 회오리 찬바람과 굉음을 털어냈다. 바람과 굉음은 사라졌지만, 뼛속까지 시렸던 찬바람의 통증은 남아 있었다. 갑자기 기침이 터지면서 아픔의 파편들이 튀어나왔지만, 오히려 가슴이 더 먹먹했다.

“천치 바보! 이 형님 말씀 잘 들어.”

동자의 생글거리는 얼굴을 외면했다. 동자가 귓밥을 잡아 비틀며 속삭였다. 동자의 손은 작고 부드러웠지만, 강한 힘이 숨어 있어 저절로 얼굴이 찌그러졌다. 손을 떼어내려 하면 더욱 힘을 주었다.

“이건 퍼즐게임이야. 하나씩 풀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퍼즐게임.”

동자가 킥킥 웃었다.

“알았지? 천치 바보의 죽음이 아니라 오락이라는 거 잊지 마.”

동자가 비틀었던 귓밥을 놓아주며 협박까지 했다.

“내 말 안 들으면 널 곧바로 구천으로 보낼 거야. 명심해!”

여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동자가 다가가 엿듣는 자세를 취했다. 나도 그녀 곁으로 다가가다 동자의 제지를 받았다. 동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구천으로 되돌려 보낸다는 말뜻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구천에서 이승으로 내려오기 전에 한 약속도 서너 개나 됐다. 절대로 복수심조차도 갖지 않는다는 게 첫째 다짐이었지만, 사실 누군가에게 보복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혼이었다. 차라리 귀신이라면 한바탕 심술부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리와.”

동자가 갑자기 손짓했다. 주춤주춤 다가가자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여자의 스마트폰에서는 계속 신호음이 흘렀다. 마침내 신호음이 멈추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자는 아예 여자의 스마트폰에 귀를 바싹댔다.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동자는 재빨리 목마를 타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계속>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그림｜김동영 화백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