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잠시 구름 속으로 숨어 든 뒤 한줄기 바람이 불어 왔다. 누구도 방해자가 없는 한적한 공원 안에서의 포옹과 키스는 두 사람 모두 불륜이니 나이니 따위는 잊어버렸다. 서로를 열렬히 원했던 연인들의 목마름처럼 서로를 흡입해 들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박 기자는 숨이 막혀 오는 걸 느꼈다. 온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가 주저앉아 버릴 것처럼 탈진한 사람 같았다.

박 기자가 휘청하며 몸을 빼려는 순간 서로의 입술은 떨어졌지만 정 사장은 박 기자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어디 가서 앉고 싶어요.”

박 기자의 말에 정 사장은 회심의 미소를 띠며 그녀를 번쩍 들어 안았다. 그러나 박 기자는 반항하기보다 행복했고, 정 사장이 하는 대로 그냥 몸을 맡겨 두고 있었다.

“여긴 햇빛도 그렇고 호텔에 가서 잠시 쉬었다가요. 더위 먹었나 봐요.”

박 기자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내려 주세요.”

“아닙니다. 난 괜찮아요.”

“제가 괜찮지 않아요. 빨리 회사 들어가 봐야 하는데 깜박 했어요. 지금 몇 시예요?”

정 사장이 박 기자를 안은 채 손목에 매달린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3시 15분 전인데요.”

박 기자는 무엇에 놀란 사람처럼 정 사장의 품안에서 풀썩 뛰어내렸다. 박 기자의 갑작스런 행동에 정 사장도 조금은 당황한 듯 했으나 박 기자는 옷 매무새를 정리한 후 사무적으로 말했다. 이미 표정도 평정을 되찾아 있었다.

“여기 더 계실 거 아니면 가시죠? 전 3시에 스튜디오 촬영이 있는 것을 깜박했어요.”

임기응변으로 말을 이었지만 그럴싸하게 들렸다. 사실 박 기자는 생활 담당이나 패션 담당이 아니고 취재 기자 일뿐이어서 스튜디오와는 거리가 멀었다. 정 사장이 그녀의 직업에 대해 아직 묻지 않았으므로 정 사장의 표정이 신경 쓰였다.

“참, 저 얼마 전부터 프리랜서 일 한다고 말했었죠. 이제 그 일이 뭔가 말해도 될 것 같네요. 제가 하는 일이 잡지에 나오는 음식들 있잖아요. 그 음식들을 예쁘고 먹음직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음식 코디네이터예요.”

조금은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정 사장은 그녀가 음식 코디네이터라는 말에 그런 직업도 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박 기자는 여유 있게 받아쳤다.

“주부였기에 가능한 직업이죠. 제가 가정과 출신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평소에도 음식 만들고 만든 음식을 맛깔스럽게 보이도록 꾸미는 걸 좋아했는데 잡지사 있는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권해서 하게 됐어요. 좋아하는 일이고 시간도 많이 안 뺏겨서 즐거워요. 시간도 잘 가구요.“

박 기자의 조잘거림에 정 사장은 그녀의 말을 믿는 것 같았다.

박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스튜디오 촬영 얘길 꺼내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순발력이 대단했다.

선유공원을 나서 무지개다리를 건너오면서 박 기자는 궁금하면서도 참았던 말을 묻기로 했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연인 사이처럼 보였다. 정 사장도 박 기자에게 좀 더 다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지는 몰라도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이런 시간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꼭 20대로 돌아 간 기분이네요.

꿈결 같아요. 이런 시간 만들어 줘서 나 무척 행복해요“

정 사장의 너스레에 박 기자는 얼굴을 붉히며, 잠시 멈춰 서서 정 사장을 똑 바로 바라보았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정 사장의 말에 얼굴을 보니 그녀의 립스틱 자국이 묻어 있었다.

“제 립스틱 자국이 묻어서요…”

박 기자는 질문에 앞서 자신의 립스틱 자국을 섬세하게 손가락을 이용해 닦아주었다. 정 사장의 눈빛에 사랑이 가득 담겨 전해왔다.

“저, 정 사장님께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솔직히 답 해주실 거죠? 그리고 제가 한 질문이란 것 비밀 지켜 주실 거죠?”

“뭔데 이렇게 다짐까지 받고 그래요. 겁나는데요? 시키는 대로 다 실천하겠습니다. 공주님! 어서 질문하시지요?” <계속>

유현숙 작가｜ben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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