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사랑의 아픔을 알아. 천치 바보야!”

동자는 네댓 살 때 죽었다고 했다. 그런 꼬마 동자가 어떻게 남녀의 사랑, 그 아픔을 안다는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 천 년도 넘게 보고 들은 사랑의 아픈 사연이 수십억도 더 돼. 난 죽어서 사랑이 뭔지 알았어. 너보다 더 잘 알아.”

“설마……?”

“천치 바보! 네놈 사랑의 아픔? 그것도 아픔이니?”

동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비웃었다. 그새 원래의 동자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살금살금 여자의 앞으로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병신! 사랑하려거든 제대로 하지. 널 죽인 건 수라야.”

귀를 의심했다. 수라가 날 죽이다니? 왜? 의심을 하기 전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뜨겁게 사랑했다. 십여 년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사랑의 믿음에 아이를 낳아 기르며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결혼식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 수라가 무엇 때문에 날 죽여?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엉뚱한 소리였다.

동자는 여전히 눈감고 있는 여자의 맞은편에 앉아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손바닥이 빨갛게 달아 마치 예쁜 단풍 잎 같았다. 처음 보는 손 색깔이었다. 내게 거짓말을 한 부끄러움으로 빨개졌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동자 형님! 그것 봐. 거짓말하니까 손이 빨게지잖아.”

“사실이야. 그녀가 널 죽였어.”

“왜 그래? 그런 거짓말 하지 마.”

“손바닥이 빨개진 건 어르신들의 경고야. 더는 말하지 말라는. 알았니?”

동자는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있다가 보여 주었다. 동자의 손바닥은 원래의 색깔, 고운 살구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 여자가 왜 죽는지 잘 봐. 네놈의 사건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장난치듯 생글거리는 동자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라가 날 죽이다니 설사 그게 사실이라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에게는 티끌만 한 문제도 없었다. 말 그대로 순풍의 항해였다. 하늘이 파랗게, 구름이 하얗게, 태양이 뜨겁게, 양가의 부모와 친구와 세상 사람 모두가 우리의 사랑을 축복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수라가 날 죽이다니? 이건 골백번 생각해 봐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수라의 조카가 왜 이 여자를 죽일까? 그 답을 찾으면 네놈 문제도 풀릴 거야.”

동자의 손바닥이 다시 빨개졌다. 동자는 다시 겨드랑이 속으로 손을 넣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알았어요. 더는 말 안 할게요. 무녀 천녀의 세 어르신에게 약속하는 말이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어르신들이 말하지 말라고 계속 경고한다는 것은 동자의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게 아닌가. 내가 부정한다고 해서, 믿지 않는다고 해서 사실이 아닌 일로 둔갑하는 것은 아니잖은가. 그러나 아무리 엄연한 사실이라지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나.

동자의 옆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살아 있는 육신의 몸이 아니었지만, 숨이 막혔다. 뼈가 없었지만, 뼛속까지 아파졌다. 머릿속이 까맣게 가라앉아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마지막 홀에서 단 한 번의 퍼팅 실수로 우승이 코앞에서 물거품이 되었을 때에도 이렇지 않았다. 갤러리들이 터트리는 안타까운 탄성에 하늘을 향해 머리를 감싸 쥐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순간에 날아간 우승처럼 곤두박질치던 아픔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응원을 보내준 갤러리들에게 손을 흔들며 환한 미소를 보냈다. 그런 나를 스포츠기자들은 골프를 즐기는 진정한 프로선수라고 표현했다. 멋진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보다 우승을 밥 먹듯 하는 선수, 수라에 자랑스러운 남자이고 싶었다.

“정말이야? 동자 형님!”

고개를 숙인 채 물었다. 정말 묻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다. 미안해. 장난이야. 동자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계속>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그림｜김동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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