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는 잔뜩 찡그린 내 표정에 생글거렸다. 아주 재미있어 죽겠다는 몸짓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물었다. 턱까지 받친 모습이 영락없는 철부지였다. 그러나 목소리는 어른으로 맑고 굵었다. 가끔 탁한 음성을 내었지만, 그건 기분이 언짢을 때 내는 불만의 표시였다. “정말 모르겠어?”

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잘 생각해 봐. 넌 요놈이 예쁘다고 장난감도 사 줬어.”

장난감을 사 줬다고?

“그래. 천치 바보야! 과자도 사 줬고.”

장난감과 과자를 사 줬다면, 그런 꼬마가 하나 있었다. 그 꼬마는 수라의 이모 아들이었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미워하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의 기분을 맞추며 함께 놀아주지 못하다 보니 귀찮아할 뿐이었다. 수라의 손을 잡고 따라다니는 녀석은 말을 잘 들었다. 무엇을 사 달라고 칭얼거릴지도 않았다. 음식점에 들어가면 수라가 챙겨준 음식을 제 손으로 먹었다. 음식이 매워 콧등에 이슬 같은 땅 방울이 송송 맺혀도 입만 호호거릴 뿐 보채거나 울지 않았다.

“수라야! 뭐 요런 녀석이 다 있어? 귀여운데.”

수라는 내가 아이들을 귀찮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해할까 싶어 그 까닭을 설명해 준 적이 있어 처음 조카를 데리고 나온 날 이모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병원의 입원실에서 아픈 엄마 옆에 앉아 있는 조카가 안쓰러워 데리고 왔다고 변명했다. 아마 장난감과 과자를 사 줬다면 첫 만남의 그날일 것이다. 녀석은 여러 차례 수라를 따라왔지만, 늘 수라의 뒤에 조용히 숨어 있었다.

“무슨 애가 저러냐? 한 번도 칭얼거리지 않네.”

“오빠! 나도 그게 신기해. 싫어도 싫은 척을 안 해. 우는 걸 한 번도 못 봤어.”

“그래? 그럼 내가 한 번 울려볼까?”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도 그 꼬마를 울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을 귀찮아했지만, 멀쩡한 아이를 울릴 만큼 성격이 모질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에서 아이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며 야단치는 엄마가 있으면 화가 났다. 말을 안 듣는다고 울음보를 터트릴 정도로 어린 자식에게 손찌검하다니 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왜 아이를 때리느냐고 말리지는 못했지만, 한심한 눈길 정도는 던졌다.

“그때 그 꼬마가 저 친구야? 어릴 때의 모습이 하나도 없어.”

동자는 고개를 끄떡이며 되물었다.

“얼굴을 기억해?”

“아니. 그냥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어.”

“그래? 그럼 재미없잖아?”

“뭐가 재미없어?”

동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부좌를 풀며 발딱 일어서더니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전자오락 도박장을 나와 2층의 여자에게로 갔다. 여자는 창밖을 망연자실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물컵 옆에 커피가 담긴 머그잔이 놓여 있었지만,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 미지근하게 식은 커피는 뜨거울 때의 말초 신경까지 스며드는 향기가 없었다. 마치 머그잔에 먹물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형님! 동자 형님!”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는 동자의 눈빛이 젖어 있었다.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동자는 웃거나 화내거나 심드렁하거나 셋 중의 하나였다. 대부분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힌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동자형님! 우는 거야?”

약 올리듯 동자의 얼굴을 가까이 살피며 묻자 발길질부터 날아왔다. 다른 때보다 거칠고 빠른 동작이었다. 주춤주춤 여자의 뒤로 피하며 왜 우느냐고 계속 물었다. 발길질이 여자에게 가로막히자 돌아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계속>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그림｜김동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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