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서운합니다. 선물을 보고 가격을 얘기하시다니 저를 부끄럽게 만드실 겁니까? 제 기쁨을 망가뜨리지 않으시려면 받아두시고 어서 식사나 하십시다.”
박 기자는 조용히 선물을 옆에 내려놓았지만 덜컥 겁이 났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졌다. 그다지 친분이 있다고 생각지도 않고 잠시 마음이 들뜨긴 했지만 이런 선물까지 받을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박 기자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방안의 공기는 궂은 날씨와 달리 후덥지근했다. 온돌방에 난방을 너무 덥게 해 놓은 듯 했다. 그러나 정 사장은 느긋한 얼굴이었다. 단 둘이 앉아 식사하는 것도 그렇고, 뜨거운 음식들이 계속해서 바꿔 들어 온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리적 영향이 더 컸다. 안에서 내 뿜는 열기가 덥게 느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까지 들었다.
음식을 나르는 종업원에게 시원한 물 한잔을 부탁하려는데, 종업원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누룽지가 담긴 숭늉 대접을 내려놓았다. 박 기자는 한 참을 망설였다. 냉수를 달라고 말하면 자신의 속내를 들켜버릴 것 만 같았다. 궁리 끝에 궁색한 변명을 찾아냈다.
“제가 뜨거운 음식을 잘 못 먹어서 그러는데, 누룽지가 맛있게 생겼네요. 차가운 얼음 물 좀 가져다주시겠어요?”
눈치 없는 종업원은 토를 달고 나섰다.
“그다지 뜨겁지 않아요. 놋그릇이라 뜨겁게 느껴지시겠지만 생각보다 안 뜨거워요.”
종업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 사장이 나무라듯 재촉했다.
“손님 취향이 그러신데 무슨 말이 많아요? 빨리 얼음물 가지고와요.”
종업원은 민망한 얼굴로 방을 나갔다.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종업원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지 이제 여기 그만 와야겠어요.”
정 사장은 박 기자가 무안할 정도로 뾰족하게 굴었다. 그때 정 사장의 휴대폰이 진동음을 토해냈다. 정 사장은 전화기를 흘끔 들여다보는가 싶더니 박 기자의 눈치를 살폈다.
“왜 전화를 안 받으세요?”
박 기자의 말에 정 사장이 전화기를 외면한 채 표정을 바꾸었다.
“골프 연습장 옮길 생각은 없으세요?”
“네?”
“연습장 다니시면서 뭐 느끼는 거 없으세요? 회원들 말입니다. 불편하게 한다거나 좀 거슬리는 사람 말예요.”
박 기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되물었다.
“회원들이 불편하게 한다고요? 운동만 하면 되는데 무슨…”
정 사장이 무슨 말인가를 꺼내려는데 종업원이 얼음물이 담긴 물 컵을 들고 들어왔다. 물 컵을 받아든 박 기자는 숭늉에 부으려고 요청한 사실은 잊고 얼음물을 입으로 가져갔다. 종업원이 박 기자를 흘끔 흘기고는 밖으로 나갔다. 물을 몇 모금 마신 박 기자는 숭늉에 얼음물을 붓겠다고 말한 사실이 생각났다. 입에서 컵을 뗀 후 숭늉에 부으려는데 숭늉은 적당히 식어있었다. 하지만 얼음물을 마신 속내를 들킬까봐 숭늉에 얼음물을 부었다. 박 기자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정 사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골프 연습장에 대해 뭐 들은 얘기나 뭘 부탁해 와 불편하거나 부담스럽게 하는 사람 없었단 말이죠?”
“전 사람들하고 안 어울리니까요. 초보인데다 온 지도 얼마 안돼서 그런지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항상 더 많아요.”
정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박 기자의 눈을 그윽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꽃꽂이 하고 앉더니 마른 침을 한번 삼키고 말을 꺼냈다.
“그런 사람들을 아직 안 만났다니 다행이네요. 사실 우리 골프 연습장은 오래 다닐 곳이 못돼요. 아시다시피 소위 잘 나가는 남자들이 많이 온다는 골프 연습장으로 소문난 건 아시죠? 골프 연습장 민 프로 그 사람 인맥이 대단해요. 그래서 잘 나가는 사람들 명성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을 연습장에 많이 끌어 들였어요. 그래서 멀리서부터 오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그 사람들은 한 달에 몇 번 안 오지만 일단 회원은 회원이잖아요. 항간에는 민 프로가 회비도 안 받고 오히려 접대해 가며 전략적으로 끌어 온다는 소문이 있어요.”
“전략이라니요? 연습장에 그런 손님 오는 거가 무슨 전략이예요.” <계속>
유현숙 작가｜ben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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