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는 생글생글 웃으며, 천녀는 인간에게 하는 말을 내가 듣지 못하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동자의 말은 한마디도 틀리지 않았다. 삼십 대 중반의 여자가 천녀 앞에 앉았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코끝은커녕 숨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냉랭한 표정으로 여자를 맞는 천녀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때 내 말 맞지? 맞지?”
천녀는 신당의 자기 집에서만큼은 나를 자유롭게 보호하리라, 믿었다. 신전으로 누가 찾아오든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게 허용하리라, 믿었었다. 동자의 말이 사실이구나, 확인하는 순간까지도 이럴 리 없다고 오히려 나의 눈과 귀를 의심했다. 육신이 없는 혼백뿐이라 잠시 혼란이 온 것이라며 눈을 비비고 귀를 두드렸다.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귀는 완전히 먹통이었다. 눈까지 흐릿했다.
“꼬마야! 천녀가 밉다. 못 됐어.”
문을 등지고 돌아앉았다.
“바보천치야! 날 형님이라고 불러. 도와줄게.”
동자는 여전히 까불거렸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러나 말솜씨는 아이가 아니었다. 어른 뺨 칠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냥 어린아이로 알았는데 아니었다. 장난꾸러기의 철부지로 무시했는데, 말마다 의미가 숨어 있었다.
“꼭 형님이라고 불러야 해?”
답답한 마음에 동자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암!”
골프공 세 개로 저글링을 하던 동자가 뒷짐 지며 고개를 끄떡였다. 어릴 때 죽어서 그렇지, 살아 있다면 자기의 나이가 올해 천 살쯤 됐을 것이라고 했다. 나이로 따진다면 큰 조상님이라고 불러야 맞는데 특별히 봐주겠다고 했다. 자기 말을 고분고분 잘 들으면 이승으로 내려갔을 때 이것저것 도와주겠다며 거드름 피웠다.
“좋아! 형님이라고 부르지 뭐.”
동자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며, 지금 천녀 앞에 앉은 여자는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왔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그동안 남편이 피운 바람을 줄줄이 나열하며 신세타령 중이라고 했다. 여자는 자기는 세상에서 가장 박복한 년이라며 흘쩍흘쩍 운다고 했다. “그런데 저 여자 있지. 남편보다 더 저질이야.”
남편보다 더 저질이면? 그럼 저 여자의 바람은 어떤 거야? 라고 물으려는데 동자가 먼저 말했다.
“말귀 빨라서 좋아. 맞아! 남자가 한둘이 아니야. 완전히 그 짓에 미쳤어.”
“정말?”
“천녀도 알고 있어. 그냥 모르는 척할 뿐이야.”
가슴이 뜨끔했다. 그렇다면 천녀도 내 속셈을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한다는 결론인데 어쩐다? 동자도 그렇고. 솔직하게 말하면 십중팔구 일을 그르칠 것이다. 보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이승으로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다짐이다. 내려가서 그들을 만난다면 나도 어떻게 행동할지 모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분노에 큰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다.
천녀가 내 속셈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혹 나를 이용해 해결할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솔직하게 털어놓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궁금하지? 천녀가 왜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지?”
까르르 웃는 동자의 얼굴에 장난기가 넘쳤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깔깔거리던 동자가 검지로 입을 막았다. 앞으로 자박자박 다가온 동자가 고개를 저었다. 알지만 말해 줄 수 없다는 몸짓이었다. <계속>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그림｜김동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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