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긴 일러. 너무 법석 떨지 마.”
천녀는 세 할아버지를 모신 신전 방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감히 뒤따라 들어가지 못하고 방문 밖에서 조심스럽게 안을 살펴보았다. 신전의 모습은 절의 대웅전 분위기와 비슷했다. 신전 중심의 높은 자리에 세 할아버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가운데의 할아버지는 스님 복장을, 왼쪽의 할아버지는 산신령의 지팡이를, 오른쪽의 할아버지는 도인 차림이었는데, 세 분 모두 잔잔한 미소를 얼굴 가득 담고 있었다. 금색으로 색칠된 세 할아버지의 동상(銅像)은 전등 불빛에 광채가 났다. 동상의 뒤, 배경을 장식하고 있는 일천오백 나한의 탱화가 신전의 분위기를 엄숙하게 했다.
“오백나한이어야 맞잖아요? 왜 일천오백이나 돼요?”
부처의 가르침을 정리하기 위해 모인 불자는 오백 명이었다. 그들이 경전을 정리했다.
“그걸 꼭 설명해야 하니? 그런 머리로 어찌 골프 프로선수로 뛰었어?”
천녀가 혀를 찼다.
“탱화하고 골프랑 무슨 관계가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너 그런 머리로 어떻게 그린을 읽고 퍼팅했니? 몇 차례 우승한 게 참 기적이다.”
천녀는 어린 아들에게 산수를 가르치듯 설명했다. 내가 모시는 어르신이 몇 분이냐? 세 분 아니냐? 그럼 한 분당 오백나한을 거느리고 있으면 총 몇 분이 되느냐? 오백나한 곱하기 삼을 해봐라.
“알았어요. 하지만 나한들 얼굴이 정말 못생겼네요.”
“신전 앞에서 자꾸만 불경스러운 말만 할래?”
천녀는 짐짓 화난 듯 실눈을 했다가 제단의 음식을 살펴보았다. 사과와 배 등 여려 종류의 과일과 떡이 차려져 있는 제단의 양쪽에 촛불이 켜져 있었지만, 전등 불빛에 밀려 노란 불꽃이 안쓰럽게 보였다. 천녀가 움직일 때마다 불꽃이 팔랑거려 금방 꺼질 듯싶었다.
“가봐. 곧 손님이 올 거야.”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살아 있을 때에도, 이승에 와서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천녀의 모습에 긴장됐다. 어떻게 사람들의 답답한 가슴을, 아픔을 풀어주는지 보고 싶은 욕심에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활짝 열어놓은 신전의 문 한쪽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이런 나를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한번 눈길이 마주쳤지만 그만 가라는 손짓도 하지 않았다.
“너 왜 여기 있어?”
동자였다.
“넌 역시 바보천치야.”
동자의 말에 슬그머니 화가 났다. 군밤을 한 대 쥐어박으려다 두 손을 얌전히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천녀의 자신도 마음대로 대하지 못한다는 말이 떠올라서였다. 앞으로 동자의 신세를 져야 할 일이 생길 것이므로 지금부터 잘 보이자는 속셈에 빙그레 웃었다.
“왜 내가 바보천친데?”
“넌 사람을 볼 수 없고, 말도 듣지 못하잖아.”
“그래서?”
동자가 골프공 세 개로 저글링을 하며 종알거렸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면서 천녀의 신점을 구경하려니까 그렇지.”
철부지의 장난꾸러기로밖에 보이지 않는 동자는 나의 마음을 환히 알고 있었다.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없고 목소리도 듣지 못하지만, 천녀만은 보고 듣고 할 수 있어 구경하려 했는데 허사였다. 동자는 신점(神占)의 천녀 모습은 볼 수 있어도 들을 수 없는 바보천치라며 또 놀렸다. <계속>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그림｜김동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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