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빠르니까."
"땡"
'개한테 물릴 수 있으니까."
"땡"
"답 네가 그냥 말해. 여기 맞출 수 있는 사람 없어. 젊은 너한테 누가 당하니? 우린 그런 거 알려줘도 까먹어."
성미 급한 김 부장의 말에 좌중을 훑어보던 이선영이 입술을 동그랗게 모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20대 중반에 얼굴도 작고 키는 크지만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모습에 신세대들이 갖는 발랄함이며 순발력을 갖춘 그녀가 두 손을 합장하듯 모으고 얌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요. 개 보다 잘 달려서 이기면, 개보다 더한 놈이 되고요. 개보다 못 달려서 지게 되면 개보다 못한 놈 되고요. 개하고 같이 달리면 개 같은 놈 되거든요. 그래서 개하고 달리기 하면 이래저래 밑지는 장사니까 절대 개하고 달리기 경기를 하면 안돼요."
평소에 조용하고 바른 생활 소녀 같은 그녀가 들려 준 정답은 답을 얘기하는 동안 사무실 이곳저곳에서 웃음을 참지 못해 쿡쿡대게 만들었다.
며칠 씩 못 보고 지낼 때면 자신이 먼저 이런 저런 구실을 만들어 전화를 걸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끌림을 강하게 부인하고 끊고 싶지만 계속 만남을 지속해 왔던 것은 사실이었다.
어쩌면 정 사장의 깔끔하고 준수한 외모 이외에 여자를 대하는 부드러움과 매너에 빠져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단 둘이 일 때보다 임은주가 함께 있어 골프를 함께 즐기는 친구사이라고 나는 떳떳하다고 스스로 위안을 주고 있었다.
정 사장과 점심 약속이 되어 있는 강남 번화가까지 가는데 오늘 같은 날 자동차를 타고 가기엔 무리일 것 같았다. 평소에도 막히는 길에 눈까지 내렸으니 교통체증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손에 쥐고 있던 자동차 열쇠를 다시 가방에 집어넣고 회사 건물 현관으로 내려왔다. 현관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 표정이 두 갈래로 나뉘고 있었다. 젊은 층들은 모처럼 풍성하게 내리는 눈이 마냥 즐겁다는 표정이고,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내리는 눈이 짜증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여느 때 같으면 박 기자도 후자 쪽이었겠지만, 오늘은 만나는 사람이 정 사장인지라 눈 내리는 풍경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외투 깃을 세우고 긴 목도리를 다시 감고 나서 전투에 나서는 사람처럼 비장한 얼굴을 하고 현관문을 나서 1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지하철 출입구로 종종 걸음 쳤다.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 나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차례를 기다려 개찰구를 빠져나와 지하철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사람들이 내뿜는 체온과 채취가 속을 매스껍게 했다. 그렇지만 몇 분 후 다가 올 즐거움을 생각하면 견딜만했다.
삼성역에서 내려 개찰구를 빠져나와 섬유빌딩을 향해 걸었다. 정 사장이 보낸 핸드폰 문자를 꺼내 다시 약속장소를 확인했다. 섬유빌딩 지하로 내려와 입구에서 10미터 이내에 식당 간판이 보일 거라고 적혀 있었다.
그의 말대로 찾기는 쉬운 곳이었다. 입구에 서 있던 종업원이 예약에 대해 물었다. 정 사장 이름을 말하자 종업원은 박 기자 이름을 말하며 정 사장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종업원의 태도로 보아 정 사장 단골집인 모양이었다. 종업원이 안내한 방은 한식당에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계속>
유현숙 작가｜ben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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