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무녀가 된 과정을 살짝 귀띔했었다.
“난 무녀가 되는 게 정말 싫었어.”
천녀는 세 할아버지의 뜻을 처음에는 거절했다. 몇 년간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아팠다. 병원에서도 알 수 없는 병으로 누워서 지내다 결국 굴복했다. 큰 무당에게 내림굿을 받고 강신무(降神巫)가 됐다. 시퍼런 작두의 칼날 위에서 껑충껑충 춤을 출 수 있는 무녀가 되었지만, 그 생활이 싫었다.
“또 아팠어. 이번에는 처음보다 고통이 더 심했어. 그만큼 어르신들의 노여움이 컸어. 내겐 무녀와 인간의 삶 둘 중의 어느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어. 티끌만 한 갈등도 용납되지 않아.”
오로지 무녀로서만 살아야 하는 운명에 순종하자 언제 아팠느냐는 듯 자리에서 툭툭 털고 일어났다.
“난 어르신들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그게 내 길이야.”
천녀는 그날 무녀가 된 과정을 털어놓은 것도 어르신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라고 했다. 무녀로 선택받은 것은 하늘의 뜻이고, 그 하늘의 뜻을 실행에 옮겨 무녀로 만든 분들이 바로 세 할아버지이다. 이렇게 하늘의 뜻에 따른 할아버지들의 일을 세상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것은 금기사항이라고 했다.
“너 때문에 내가 미쳐. 일단 어르신들에게 청을 넣어볼게.”
눈을 있는 대로 흘기다가 자리를 고쳐 앉은 천녀가 빙그레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묘한 매력과 함께 갈 필을 잡지 못하게 하는 함정이 있었다. 마음을 한없이 편하게 해주는가 하면 왜 저렇게 웃지, 저 웃음의 의미가 무엇이지, 라는 불안한 생각을 하게 했다. 그녀 미소 앞에서는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리는 게 상책이었다.
“이승에 와서까지 못 잊을 만큼 그녀가 좋아? 그렇게 사랑해?”
그동안 이승으로 내려가게 해달라고 애원할 때마다 핀잔처럼 물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무녀가 된 후 남편과 아들, 부모까지 밀어낸 아픔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지난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누려던 행복이 그리운 숨결이었다.
“어쩌면 이 일로 큰일을 치를지 몰라. 하지만 해볼게.”
“고맙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그녀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직 인사받긴 일러. 어르신들의 생각이 어떨지 모르잖아.”
“들어주실 거예요. 그분들은 사람뿐만 아니라 혼백들의 아픔도 챙겨주셨잖아요. 꼭 들어주실 거예요.”
내 말에 그녀가 기가 차다는 표정을 했다.
“종이 어디 있어요? 각서 써야죠.”
“너 김칫국물부터 마시는 거 알지?”
그녀가 쿡쿡 웃었다.
“예! 어차피 떡은 나중에 주실 거잖아요. 아닌가요?”
“알았어. 각서 안 써도 돼. 내가 잘 말씀 드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구십도 인사를 했다. 가서 기다리라는 말에 다시 구십도 감사 표시를 했다. 그동안 그렇게 애원해도 귓등으로조차 듣지 않았는데, 동자를 보내어 부르더니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약속에 숨이 막혔다. <계속>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그림｜김동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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