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새우깡 좋아하니?”동자에게 물었다.
“난 과자 안 먹어.”
“손에서 냄새나는데?”
동자는 두 손의 냄새를 맡아보곤 헤헤 웃었다.
어린 시절, 내가 그랬다. 아버지가 사 온 과자를 먹은 후 손에 남아 있는 냄새를 맡으며 헤헤 웃었다. 손가락마다 배어 있는 달콤한, 고소한 과자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새우깡은 하나만 집어먹어도 손가락에 향기가 뱄다.
“동자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과자가 뭔지 아니?”
노란 골프공을 고무공처럼 손바닥으로 탕탕 튕기며 깡충깡충 걷던 동자가 돌아섰다. 화가 난 표정으로 옆구리에 두 손을 짚고 노려보다 말했다.
“반말하지 마.”
“왜? 내가 너보다 어른인데.”
“난 할아버지를 모시는 귀한 동자야. 그러니까 반말하지 마.”
동자는 천녀에게도 화를 냈다. 자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함부로 반말한다며 발까지 굴렀다. 천녀는 동자를 달랬다.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단단히 혼을 낼 테니 세 할아버지에게는 이르지 말라고 했다.
“동자는 나도 함부로 못해. 앞으로 반말하지 마.”
천녀의 눈빛에서 답답함이 묻어났다. 얼굴색도 좋지 않아 슬금슬금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천둥과 번개의 긴 장마 끝에 맑게 갠 밤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했다. 서쪽 하늘의 은하수는 함박눈처럼 쏟아져 내릴 듯 밝았다. 천녀는 한참동안 견우직녀가 일 년에 한 번씩 만날 수 있는 은하수를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천녀 옆에 앉아 별을 쳐다보며 숨을 죽였다. 천녀가 왜 동자를 보내어 나를 데려오라 했을까? 나의 청을 세 할아버지에게 허락받은 후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라 알려주려는 것은 아닐까? 만약에 그렇다면 빨리 얘기해 줄 것이지, 왜 뜸을 들이며 한숨을 쉬지? 혹 일이 틀어진 게 아냐? 세 할아버지 중 한 분만 반대해도 안 된다고 했었는데, 그게 누구일까? 설마 세 분이 만장일치로 반대한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정말 큰 일이다. 정 안 되면 수라만이라도 만나보게 해 달라고 매달리려는데 어떻게 하지?
천녀가 무겁게 말했다.
“무슨 각서를 써요?”
“세 할아버지의 요구를 무조건 따르겠다는 각서. 그리고 또…….”
그녀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눈길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애써 감정을 감추는 눈빛이었다.
“이승 세계에서 하고 싶은 일을 낱낱이 적어와.”
천녀가 눈길을 은하수로 돌렸다.
“허락하신건가요? 내가 이승으로 내려갈 수 있게 됐느냐고요?”
각서를 쓰고, 이승에서 하고 싶은 일을 적어오라는 말은 바로 천녀가 허락을 받아냈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렇다면 못 쓸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쓰라는 대로 다 쓸 것이다. 천만번이라도 약속할 것이다. 요구사항을 다 지키겠다고.
“좋아하지 마. 아직 귀띔조차 하지 않았어.”
“그럼 왜?”
“뭐가 있어야 청을 넣을 거 아냐. 이 못난 놈아!”
천녀의 불같은 눈이 얼굴로 날아들었다. <계속>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그림｜김동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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