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사장의 갑작스런 제안에 좀 당황했지만 수준에 맞추려면 한마디는 해야 할 것 같아 생각나는 느낌을 그대로 표현했다.
"좀 거칠고 아직 태양의 잔해가 남아있는 야생이라고 해야 하나,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 같은 느낌인데요."
"오우, 대단하십니다. 이 포도주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그대로 표현하시네요. 미각이 아주 훌륭해요. 세라 씨도 포도주를 아주 좋아하시는 모양이군요."
정 사장은 과장 된 모습으로 칭찬을 했다. 임은주도 질세라 막 기자에게 와인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구가 생겨 매우 행복하다고 요란을 떨었다.
와인에 대한 얘기로 시간이 흐르고 메인 요리가 배달되어 오자 정 사장은 부담스러운 친절까지 베풀었다.
"제가 스테이크를 잘라 드려도 될까요?"
"네?"
박 기자의 놀라는 표정을 본 임은주는 과장된 웃음을 날리며 상황을 모면하려 들었다.
"어머, 정 사장님 저한테도 그래서 오해 사게 하시고 또 그러시네요. 여자들이 모두 나약하게만 보이시는 모양인데 그런 게 매너 아니에요. 세라 씨, 정 사장님이 이렇게 순진 하시 다니까. 글쎄, 누구한테 음식점에서 여성에 대한 에티켓이라고 들었대요. 그래서 배운 대로 실천하시려는 거예요. 그건 아니라고 가르쳐 드렸는데 또 잊으셨나 봐요. 정 사장님, 그건 에티켓이 아니고요. 좋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일 뿐이라고요. 그러다가 오해 받으세요."
"죄송합니다. 숙녀 분들과 이런 기회를 가져 볼 시간이 없다보니까요. 매번 은주 씨한테 야단맞으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결례를 용서 하십시오."
"결례까지야 아니죠. 맛있게 먹겠습니다."
박 기자는 인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자신의 음식 접시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배도 고팠지만 잠시 생각이 필요했다.
그런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음식 먹기에 집중한 척하며 생각을 굴리고 있는 동안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골프 스윙에 관한 것과 또 하나는 임은주가 정 사장에게 주식투자를 위한 정보를 빼내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임은주에게서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로 여기 왔는데, 두 사람은 박 기자가 원하는 정보를 내 놓을 사람들 같지 않아보였다.
남자는 그의 말 대로 기업 합병을 하는 사무실을 운영하는 게 분명해 보였고, 여자는 부유층 유부녀로 주식투자나 땅 투기에 관심이 많은 여자일 뿐 별 도움 안 되는 사람들 같다는 결혼에 도달했다.
골프 연습장 안에서는 도움이 될 만 해 보였던 임은주마저 여기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정 사장 역시 어느 한 곳 빈틈없는 경제 전문가일 뿐이었다.
박 기자는 시간을 낭비 한 것은 아깝지만, 맛있는 저녁을 먹었으니 이 정도에서 그만 탐문을 끝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런데 접시가 거의 비워져 갈 즈음 뜻밖의 질문이 귓가에 닿았다.
"세라 씨, 골프 연습장에서 인기가 좋으시던데요. 조심하세요."
정 사장의 말에 박 기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농담이예요. 세라 씨 정말 순진하시네요. 우리 연습장에 대단한 분들도 많고 대단한 미인들도 많잖아요. 어디나 그렇듯 새로운 사람에 대해서는 모두 관심도 호기심도 많잖아요. 특히 세라 씨처럼 예쁜 여성분들에게는 더 그렇죠. 하지만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 있지 않아요.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 중에는 무서운 칼날을 숨긴 사람도 있다는 걸 아셔야 해요. 인기가 많은 만큼 그런 사람들이 다가 올 수 도 있다는 점에서 염려스러워 드린 말씀이에요."
"고맙습니다."
박 기자는 말 잘 듣는 학생처럼 정 사장에게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저 남자는 정말 믿을 만한 신사야. 외모만 멋진 게 아니었어.' <계속>
유현숙 작가｜ben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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