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그렇지 않아요? 당신에게는 어르신이 세 분씩이나 있잖아요. 그분들이 도와주잖아요.”
천녀는 천기누설까지는 아니지만, 거기에 버금가는 일이라고 했다. 나를 도와주려면 어르신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그 어르신들도 하늘의 승낙 없이는 어렵다고 했다. 만약 그 법을 어기면 어르신들의 운명도 끝이라고 했다. 그 신성한 자리에서 쫓겨나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되든지, 저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너라면 어떻게 할래?”
그날, 그때 천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설사 대답한다 해도 다 쓸데없는 공염불이라는 표정으로 구름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내가 당신이라면, 무조건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할 거라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산과 동해가 한눈에 굽어 보이는 바위에 기대어 천녀를 바라보는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했다.
“답답하지?”
천녀가 다시 물었다.
“막막하지?”
천녀는 나의 마음을 다 읽고 있었다. 네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나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으니 이젠 그만 애걸복걸해라. 자꾸만 이러면 앞으로 만나주지도 않겠다는 암시이기에 사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가라. 기도할 시간이다.
어깨를 토닥이며 돌려세운 그날, 그녀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조용했다. 이승의 인연을 끊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오늘, 천녀를 기다리는 것은 그녀의 그 여린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막무가내로 떼만 써 그녀의 심사를 뒤틀리게 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여린 마음에 호소하여 동정의 손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견우직녀의 아픔을 지켜보는 동안 잠시 잊었던 자신의 문제로 돌아오자 앞이 깜깜해졌다. 은하수 서쪽의 견우성과 직녀성 사랑을 전설로 만들어버린 하늘이 과연 나의 소망에 귀 기울어 줄까? 답은 아니었다. 하면서도, 사람으로서의 명줄조차 다 채우지 못하고 올라온 영혼이기에 들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버리지 못했다. 그 실낱같은 기대감으로 물고 늘어지는 것이 무녀 천녀였다.
칠월칠석 기도의 날, 천녀는 오지 않았다. 폭우 때문에 올 수 없었다고 이해하면서도 화가 났다. 지난해처럼 미리 오면 얼마든지 기도처에 오를 수 있었다는 믿음이 그녀를 계속 원망케 했다. 빗줄기가 가늘어진 새벽, 기도처의 한쪽에 쪼그려 앉아 졸고 있을 때 누군가가 어깨를 톡톡 쳤다.
“가자!”
동자였다.
“가자. 멍청이 놈아!”
동자는 생글생글 웃었다.
서너 살밖에 안 된 동자는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졸음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해 바라보기만 하자 앙증맞은 손으로 귓밥을 잡아당겼다.
“빨리 가자. 바보야!”
동자의 손에서는 과자냄새가 났다. 얘가 무슨 과자를 먹었을까, 잠시 어렸을 때 먹었던 과자를 이것저것 떠올리다 피식 웃었다. <계속>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그림｜김동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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