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기자는 시간이 될 때까지 떨어져 앉아 기다릴 셈이었다. 그런데 임은주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두 사람의 만남을 방해한 것 같아 먼저 말을 꺼냈다.
"제가 좀 먼저 왔죠? 전 괜찮으니까 말씀 나누세요. 기다릴 게요."
"아니 예요. 이리 오세요. 제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박 기자가 다가가자 등을 돌리고 앉아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맙소사 첫날 사진 찍듯 박 기자의 마음속에 담겨버린 정 사장이 그곳에 있었다.
첫날 보았던 운동복 차림이 아닌 깔끔한 정장 차림의 정 사장은 지적이고, 예리해 보이기까지 했다.
"두 분 처음 보는 것 아니죠?"
임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 기자를 맞이했다.
"오신다는 손님이 이분이셨어요?"
"서로 아시잖아요."
정 사장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박 기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서로 얼굴만 알지 이름도 모르잖아요? 저는 정연호라고 합니다."
"박세라예요."
"박세리 언니신가요?"
정 사장이 농으로 받았다.
인사치례로 음식을 선택하라고는 했지만 임은주는 어느 사이엔지 음식은 물론 와인까지 자기 식으로 주문을 끝내버렸다.
"세라씨, 조금만 더 열심히 하세요. 몇 달 후에는 필드에 함께 나가시죠."
정 사장의 말에 임은주는 질투난다는 표정을 짓더니 끼어들었다.
"여자는 역시 예쁘고 봐야 돼. 정 사장님, 난 사정사정해서야 데리고 가 주시더니 세라씨한테는 그러시기예요?"
"그땐 내가 큰 프로젝트에 매여 있어서 그랬다니까요. 그 일 끝나고 곧바로 모시고 나갔잖아요."
두 사람은 운동을 하면서 가까워진 사이인 것 같았다.
스카이라운지 스카이블루에서 내려다 본 강변도로에는 자동차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고, 그 옆 강물위에는 요즘 새로 생긴 수상 택시가 보란 듯이 물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곧 와인과 전채 요리가 테이블에 배달되어 놓였다. 정 사장은 능숙한 솜씨로 와인 병을 집어 들더니 와인 잔에 와인을 부었다. 그리고 향을 음미하기 전 와인 잔을 흔들어 와인의 색깔을 살폈다.
"잘 선택한 것 같아요?"
임은주가 교태를 부리며 물었다.
색깔을 감상하던 정 사장이 향을 맡고 시음을 한 후 만족한 미소를 보냈다.
"오늘 이 분위기에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어서 드셔보시죠."
정 사장은 품위 있게 와인 시음을 하고 표정까지 풍부하게 바꾸었다. 아마도 와인 매니어인 모양이었다. 임은주도 와인에 대해 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박 기자는 와인이 떫은맛이 강하고 입안에 텁텁함이 오래 남아 왠지 거친 음식을 먹고 난 후 느끼는 거북함처럼 별로였다. <계속>
유현숙 작가｜ben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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