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녀는 아침 햇살에 빛을 잃은 촛불 두 개를 껐다. 치성 음식을 살펴본 후 세 개의 술잔을 차례로 비웠다.
“아침부터 술이에요?”
“한잔할래?”
그녀가 술잔을 내밀었다. 작고 예쁜 백자 술잔이었다.
“마시고 싶어도 못 마시는 거 알면서 왜 그래요?”
“냄새는 맡을 수 있잖아.”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 속 시원해요?”
일주일 동안의 기도를 끝낸 후 물건들을 챙기는 천녀의 소매를 잡았다. 그녀가 산에서 내려가기 전에 확답을 받아야 했다. 그녀는 살아 있는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생명을 복원해 줄 수는 없지만, 낮이고 밤이고 자유롭게 속세를 돌아다닐 수 있는 영혼의 힘은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을 때, 셋이서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그때 수라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천녀는 소리죽여 말했었다.
“네 여자가 아니야. 끝내.”
천녀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악연이야. 전생부터.”
무슨 소리여요? 우린 서로 사랑해요. 우리가 한 두 해 사랑한 게 아니라는 거 잘 알면서 왜 이상한 말을 해요? 전생부터 악연이라고요? 세상에! 그런 악담이 어디 있어요? 차라리 저더러 칵 죽으라고 하세요.
화가 났다. 하지만 입을 다물었다. 술 취한 헛소리로 돌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나 천녀는 아주 심각한 눈빛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살이 아주 깊게 꼈어. 풀 수가 없어.”
“골프경기에서 우승하고 싶지?”
천녀의 눈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오래 살고 싶지?”
길게 한숨을 쏟아냈다. 탄식이었다.
“그럼 오늘로 끝내.”
그날, 10년 하고도 몇 개월 전 오늘로 끝내라던 천녀의 눈빛은 깊고 무거웠다.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 표정 속에 단호함도 엉켜 있었다.
“죄송해요. 그때 천녀님 말을 따랐어야 했는데…….”
진실한 사과가 아니었다. 하지만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부탁도 할 수 없겠다는 다급한 마음에 튀어나온 소리였다.
소백산에서의 일주일 동안 치성을 드린 짐치고는 간단했다. 어느새 소복을 벗고 등산복으로 갈아입은 천녀는 배낭을 메고 있었다. 그녀는 세 할아버지를 모시는 무녀가 아니라 야간 등산을 한 후 하산하는 등산객으로 탈바꿈했다.
“돌아가. 부질없는 짓에 떼쓰지 말고.”
그녀는 속마음을 이미 읽고 있었다.
“그녀가 어떻게 살든, 너를 죽인 사람이 누구이든 그건 이쪽 세상의 일이야. 저세상으로 갔으면 그쪽 방식에 따라. 앞으로는 나도 찾아오지 말고. 알았지?”
유난히 눈썹이 짙은 눈에 냉랭한 바람이 일었다.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서는, 배낭을 멘 그녀 앞을 잽싸게 가로막았다. <계속>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그림｜김동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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