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모습에 화가 났지만, 이미 이승을 떠난 몸으로 어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장례식 첫날은 정말 화가 났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문상 핑계로 만남을 즐기는 머리를 한 놈씩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리할 방법이 없어 속만 끓였다. 그러나 둘째 날은 섭섭하지도, 화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은 누가 다녀가려나, 그게 궁금했다.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타 클럽 소속의 선수가 영정 앞에서 깊이 고개 숙이는 모습에 코끝이 아렸다.
삼 일째 날, 화장터까지 따라온 문상객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저 친구들, 저 사람들은 그래도 나를 쉽게 잊지는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에 빙그레 웃기까지 했다. 시뻘건 불길에 얼음 녹듯 녹아내리며 타는 몸뚱이를 지켜보다 밖으로 나왔다.
가슴이 시원하도록 심호흡을 했다. 기지개도 켰다. 이제 이승과 완전히 이별을 고할 때라며 어머니와 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두 분은 하나뿐인 아들의 죽음에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영안실에서부터 화장터에 온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머니는 누가 우리 아들을 죽였어. 그놈을 당장 잡아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건드리면 파삭 부서질 만큼 절망한 두 분에게 이승에서의 하직인사를 올렸다. 이별의 큰절을 올리는 아들의 영혼이 두 분에게 보일 리 없지만, 터지는 울음을 애써 참으며 이마가 땅에 닿는 깊은 절을 했다.
십 년 전의 장례식, 천녀는 문상을 오지 않았다. 문상객 한 사람, 한 사람 유심히 살펴보며 “네가 날 죽였니?” “너니?” “왜 죽였니?” 물었었다. 말을 주고받을 수 없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에서 간절히 기다린 사람은 천녀였다. 무녀인 그녀가 나타나면 범인이 여기 왔느냐, 누구냐, 속 시원하게 지목해 달라 요구할 참이었다.
당시에는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그녀에게 실망했었다. 비록 만남이 짧았지만, 남다른 관계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왜? 무엇 때문에 날 죽였는지 그녀는 모시고 있는 할아버지들을 통해 알려 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천녀를 찾아가는 지금은 당시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고마웠다. 그녀를 타박하며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핑계거리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싱싱한 청년이 갑자기 죽었으면 그 이유가 궁금해서라도 달려와야 정상 아닌가. 무녀는 피도 눈물도 없는가, 라고 따지며 수라를 찾는 일에, 날 죽인 범인을 찾는 일에 무조건 협조하라 강요할 수 있는 근거가 됐다. 치사한 끄나풀이긴 하지만, 물고 늘어지면 그녀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여긴 왜 와?”
천녀는 십 년 만의 해후에 구박부터 던졌다.
천녀는 세 할아버지로부터의 신기를 더욱 더 크게 받기 위해 지리산에서 칠 일째 기도하고 있었다. 기도 첫날 그녀의 기도처를 찾아갔었지만 기다리기로 했다. 금식하며 기도하는 그녀를 지켜보다 마지막 날 새벽녘에 다가섰다.
“왜 안 왔어요?”
문상부터 따졌다.
“거길 내가 왜 가야 했는데?”
“우린 친구였잖아요.”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쪽잠을 자며 칠일 기도를 마치는 그녀는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여명 속의 그녀 눈에 웃음이 잔잔히 흘렀다.
“신을 모시는 사람은 장례식에 가지 않아.”
천녀는 기도부터 마치자며 돌아앉았다. 하얗게 소복한 그녀의 뒤에서 여명을 여는 두 개의 촛불을 바라보았다. <계속>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그림｜김영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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