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영적인 육감이 있어. 수라도 비록 나를 보지는 못하지만, 누군가 곁에 있음을 느낄 거야. 어쩌면 누가 왔나? 중얼거리며 돌아다볼지도 몰라.

“동자 형님! 이건 상상이 아냐.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야.”

동자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이 층에서 일 층으로 내려가다 계단에 앉으며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앞을 가로막고 건성으로도 듣지 않는 동자에게 왜 그러느냐고 따질 참이었다.

“이승에 얼마나 머무르지?”

“그건 왜?”

“이승에서 얼마나 있을 거라고 했지?”

동자의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이승에서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은 고작 섣달이었다. 백일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하 세월인 양 행동하고 있었다. 동자가 내 말을 귓전으로 흘린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천년만년 있을 것처럼 여유 부리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 화가 난 눈빛이었다.

어제 이승으로 온 것 같은데 벌써 나흘이나 지났다. 그동안 일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연희의 뒤를 따라다닌 게 전부였다. 동자는 연희의 죽음을 지켜보면 수라가 왜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는지 의문의 실마리는 간단히 풀릴 것이라고 했으나 믿지 않았다.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한 생명의 죽음에서 수라에 대한 의문의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수라에게 직접 묻는 게 올바른 선택이었다.

“연희를 살릴 수는 없어? 꼭 죽게 내버려둬야 해?”

동자는 한심하다는 눈길로 빤히 쳐다봤다.

“살릴 수 없다면 보지 말자. 난 끔찍해서 싫어.”

“죽음이 끔찍하다고?”“그럼 아니야?”

동자는 층계에서 일어서더니 내 발을 걷어찼다. 네놈 발에 밟혀 죽은 생명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넌 개미 한 마리도 안 죽였다고 우기겠지. 잘 들어. 아무런 원한도 없는 그들은 네 발에 허리가 부러지고, 골프채에 맞아 머리가 날아갔어. 그뿐인 줄 알아? 아직 세상의 빛도 못 본 애벌레의 죽음은 어땠는지 알아? 온몸이 터지고, 짓이겨져 아예 흔적도 찾을 수 없었어. 그렇게 숱한 생명을 죽인 놈이 인제 와서 인간의 죽음은 끔찍하다고? 동자는 몇 번 더 발길질하다 다시 층계에 걸터앉았다.

금방 일어설 것 같지 않아 옆에 나란히 앉았다. 동자는 어느새 생글생글 웃으며 팔짱을 꼈다. 장난기 넘치는 눈길로 고개를 까딱거리다가 한쪽 볼을 꼬집었다. 아프다고 소리치지 않으면 양쪽 볼에 상처가 날 정도로 꼬집기 때문에 죽은 시늉을 했다. 동자의 무릎을 치며 항복을 외치자 그제야 손을 거뒀다.

“사람이든 벌레든 다 죽어. 너도 죽었잖아.”

“동자형님! 내 말은…….”

죽더라도 예쁜 모습으로 죽으면 얼마나 좋아, 라고 말하려다 삼켰다. 내 죽음을 어떠했을까? 승용차나 열차에 받혀 죽은 것이 아니니 사지는 멀쩡했을 것이다. 수면제인지 뭔지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었다고 했으니 모양새도 흐트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영혼은 유체이탈을 할 때 자신의 몸뚱이를 본다고 하는데 도무지 기억이 없다. 육신에서 빨리 떠나고 싶었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동안 함께 했던 몸에 눈인사도 없이 돌아설 수 있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자 형님! 부탁이 있어.”

“또 무슨 부탁?”

“내가 죽었을 때의 그 모습 좀 보게 해줘.”

동자는 생글거리던 웃음을 싸늘한 표정으로 바꿨다. 입을 꾹 다물고 노려봤다. 팔짱을 끼며 심호흡을 하면서도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동자를 만난 이후 처음 보는 차가운 얼굴에 당황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죽음이 끔찍하다면서 왜 보려고 해?”<계속>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그림｜남정 김동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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