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 나서 친 것이 아니라, 이 나이에 마음을 터놓고 세상을 살라는 계시

[골프타임즈=정노천 기자] “한명성 씨가 홀인원 했다! 오늘 골프 모임(정유회 월례회)인데 나는 불참했지만 이런 행운이 터졌다” 며 골프 동료 이애우 씨의 카톡을 타고 홀인원 소식이 장안에 퍼져 나갔다. 운 좋게도 그 홀이 볼빅 지정 홀인데다 볼빅 공으로 홀인원을 했으니 볼빅에서 제공하는 75만원 상당 볼빅 백을 탔다는 소식이 연이어 SNS를 통해 골프 마니아들에게 전해졌다.

서울에서 120Km 정도 떨어진 충청도 음성 코스카CC(회원제 18홀 · 퍼블릭 9홀) 골프장에서 일어난 홀인원 소식은 모바일을 타고 온 세상으로 타전됐다. 이렇게 골퍼 한명성 씨의 생애 첫 홀인원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개인은 물론 골프계 역사적 사실로 남게 된 것이다.

“골프를 좀 쉴까 했는데 홀인원을 기록했으니 클럽을 놓을 수가 없게 됐어요”

막상 하늘에서 내린다는 홀인원 선물을 받고 보니 새삼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 같다고 한명성 씨는 말한다. 이건 자신의 의지로 되는 게 아닌 어떤 기운이라며 여태 살아오던 삶의 방식을 정리하기 위한 계시로 삼아야겠다는 의연한 결의도 보였다.

지난 10월 25일 오후 4시경 코스카CC 행복코스 3번홀(파3)에서 8번 아이언을 잡고 때린 볼이 핀 3미터 앞에 낙하하더니 2초 사이 그린을 굴러 홀에 들어가면서 꿈에도 그리던 홀인원이 된 것이다.

홀인원의 주인공 한명성 씨는 80년대에 골프를 시작했다. 오랜 세월 버디, 이글 다 해봤지만 남들 하는 홀인원은 못하고 있었다.

“홀인원, 골프를 하는 이에겐 로망이죠. 늘 소망했죠. 난 바보같이 왜 홀인원이 안 될까 다른 건 다해봤는데…” 골프하면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고 차츰 골프에 흥미를 잃고 좀 쉬려던 참이었다.

월례회 날짜가 변경까지 된데다가 약속이라 억지로 참석했던 라운드였다. 9홀은 힘겹게 넘어 갔고 후반 3번째 홀 파3홀에 이르렀다. 100m 내리막 해저드를 품은 행복 3번 홀에서 8번 아이언으로 때린 공이었다.

한명성 씨는 “8번 아이언을 쉬운 아이언인데도 실수가 많이 나 잘 안쳤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오랜 세월 애를 먹이던 것이 제 값을 하려는 듯 8번 아이언이 잡고 싶어서 쳤는데 가볍다는 기분이 들고 잘 맞았다는 느낌이 곧장 손으로 전해졌어요. 공이 똑 바로 갈 것이란 생각은 없었는데 그린에 딱 떨어져 1, 2초 사이에 구르더니 공이 사라져버린 거예요. 분명 캐디는 알고 있었는데도 입을 다물고 있었고 동반자(김성수, 김경애, 정두석)들도 공이 안 보인다며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린으로 달려갔죠. 그린에 올라갔더니 난리가 나더군요. 엉겁결에 축하를 받으며 시키는 대로 공을 놓고 컵에 절하고 홀인원 행사 절차까지 치렀으니…” 평생 처음인데 못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담담했지요. 아니 그렇게도 꿈꿔오던 선물인데도 나는 들뜨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이성을 되찾았죠. 좋은 기운에 압도해서 요란을 뜨는 것보다는 담담히 받아들이는 게 경건할 것 같아서죠. 왜냐하면 내가 홀인원을 하기보다는 어떤 신이나 작용 같은 느낌이 순간 들면서 경외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고 피력했다.

골프인생 30여년 그렇게 하고 싶어 했던 홀인원. 남들 앞에서 오두방정을 떨기가 싫어 튀어 오르는 감정을 애써 꾹꾹 눌러 놓았으나 좋은 일 앞에서 일부러 침묵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날 밤에 대통령과 만나는 꿈까지 꾸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홀인원의 기운을 톡톡히 받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 나도 홀인원을 했구나 하는 기분이 집에 와서야 점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3일 동안 혼자서 허허 웃음이 터져 나왔다’고 한명성 씨는 귀띔했다.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다들 이런 기분을 누렸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기분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나 혼자 간직하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이 기분을 나눠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명성 씨는 속내를 밝혔다.

축하 공도 맞추고 그동안 함께 못했던 이들을 초청해 감사 라운드도 치르고 이것저것 못다했던 것들에 대한 응축된 삶을 풀어내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홀인원을 계기로 마음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그간 뭉쳐 있던 응어리가 풀리고 남의 잘못도 덮고 대충 넘어가고 싶은 마음들이 생겼다는 걸 보면 하늘이 내린 행운이 맞을 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좋은 일들이 생기고 있어요. 연륜적인 혜안도 있겠지만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각박한 세상이지만 점점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어떤 계시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다 지난 7월에 이사를 하면서 좋은 기운이 생기고 뭔가 이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떡하니 홀인원도 했고 그 뒤에도 좋은 일들이 생기고 있어요. 하였던 마음으로는 그랬어요. 잘 살아야겠다. 이런 행운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도 아니고… 이런 것 저런 것 생각하니 운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어 “홀인원이 그렇더군요. 하기 전에는 마음을 잘 쓰고 좋은 일을 생기고 하고 난 뒤에도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것 느끼고 살아야 할 나이인거 같아요. 내가 잘 나서 친 것이 아니니까 말이죠. 또 이런 생각도 들어요, 삭막한 세상에서 점점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어떤 계시 같은 생각이 들어요. 잘 모르겠지만 좋은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아요. 어쨌든 골프가 인생과 같다더니, 이젠 수긍이 가요. 살다보니까 늘 좋은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고 늘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니더라구요. 저는 그랬어요. 좋은 마음을 먹고 나면 응답이 온다는 것을 매번 느끼고 살았죠. 이번 홀인원을 통해 확인한 셈이죠.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골프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골프를 즐깁니다” 한명성 씨에게는 홀인원이 삶의 어떤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자주 플레이를 나가지 않는데도 84, 5개를 쳐요. 작년에 가끔 나갔는데도 80대를 치니 이상한 거 아녜요. 1년 전부터 버디도 하고 이글도 했어요. 세컨드 샷에서 그대로 홀인이 되는 그 순간 짜릿한 손맛을 미리부터 익기 시작했고 얼토당토않게 1달 전에는 이븐파를 쳤으니 베스트 스코어까지 기록해버린 거죠. 라운드 기회도 많지 않고 연습도 안했는데 이런 기록은 정말 이상하지 않아요? 생각보다는 공이 잘 맞아 이상하게 여겼죠. 아마 징조라면 그런 게 징조가 아닐까 싶어요”

골프를 처녀 시절부터 시작했으니 30여년 이상이나 됐다. 중간에 애들 때문에 잠시 쉬다가 40세 때부터 53세까지 실컷 공을 쳤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지 않아서 학창시절 체육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지 않았을 정도로 운동과는 먼 거리였다. 그런데 골프 하는 모습의 우아함에 반한 겉멋도 있었던 시절이었다. 골프를 해야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려는 과시욕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당시 골퍼가 귀한 때라 배울 데도 드물었다. 어느 아카데미에서 엄청 난 돈을 투자해서 3개월 배운 것으로 평생을 우려먹는다고 말하고 ‘골프 접하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그만하면 대한민국에서 골프를 충분히 만끽했다는 생각에 골프를 접을까도 생각했는데 홀인원을 계기로 다시 치게 됐다.’고 한명성 씨는 밝히고 “막연한 생각이지만 이제부터 남하고 터놓고 지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면서 즐겁고, 의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사회활동도 좀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밀려왔다”고 말한다. 이어 “이젠 골프인생이 마무리가 되는 느낌이다. 절정을 이루면서 자신을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홀인원이 준 답이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골프에 집요하게 탐닉하는 것도 아니다. 한명성 씨의 골프라이프는 한마디로 라운드에 순응한다고 하는 말이 맞겠다. 그냥 공을 치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잡다하고 잔머리 굴리고 않고 닥치는 대로 치고 재미로 치니까 욕심이 없고 그렇게 접하다보니까 80대 중반을 유지하고 홀인원 까지 선물로 받는데 유효했던 것 같다고 나름대로 분석한다. 욕심이 없으니까 골프가 되는 것 같다. 선수도 아니고 그날 라운드에 돌입하면 재미있게 치면 그만이다. 골프할 수 있다는 그것자체만으로도 행복이다. 그렇게 라운드 한 번 갔다 오면 심신이 건강해지고 대자연에서 공을 치다보면 지인들과 연계하게 된다. 다만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흠이지만 골프를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그 자체가 즐겁다.

정노천 기자｜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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