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수퍼 토스카나는 국제성과 이태리 전통성의 이질적인 요소를 상업적으로 절묘히 조화시키며, 세계적 고품질을 지닌 혁신적 와인으로 자리매김을 거듭하고 있다.

[골프타임즈=신성호 와인칼럼니스트] 말 그대로 이태리 중서부의 토스카나(Toscana, 영어명칭 Tuscany)에서 만들어진 품질이 탁월한(super) 와인을 의미하는 수퍼 토스카나(Super Toscana)는 이태리 내에서는 같은 토스카나 지역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와 피에몬테 지역의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베네토 지역의 아마로네 등과 더불어 이태리 고급와인의 대표주자이다.

세계적으로도 프랑스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특급 와인들이나 캘리포니아에서 만들어지는 카버네 소비뇽 계열의 고급 와인들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레드 와인 반열에 속해 있다.

상업적 드라이브를 위해 이태리 테루아(Terroir)의 순수성을 팔아먹는 반(反)토스카나적 와인이라는 반론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수퍼 토스카나는 국제성과 이태리 전통성의 이질적인 요소를 상업적으로 절묘히 조화시키며, 세계적 고품질을 지닌 혁신적 와인으로 자리매김을 거듭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한 이태리 와인계에 성장동력을 꾸준히 제공하고 있다는 긍정적 요소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초창기의 수퍼 토스카나는 기존의 토스카나, 나아가 이태리 전체 와인의 수준을 넘어서는 세계적 품질에 대한 갈망과 혁신의 의지, 근대성과 동시대성에 대한 추구가 뚜렷했다. 이 와인들은 과거의 토스카나 와인들과 스타일적으로 확연히 구분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녔기에 뚜렷한 역사성까지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후대에 수퍼 토스카나 방식으로 만들어진 많은 와인들 중에 어떤 것들은 특별히 탁월하지 않은 품질에도 불구하고 도매금에 수퍼 토스카나라고 불리고 있으며, 어떤 농부들은 자기 포도밭이 토스카나 전통품종인 산지오베제에 보다 적합함을 알면서도 수퍼 토스카나 열풍에 휩쓸려 국제품종을 심고자 자기 밭에서 산지오베제를 부분적으로 뽑아버리기도 했다.

수퍼 토스카나는 대체로 고가이기에 외래품종(국제품종)들을 사용해서 만들어졌음에도 고가에 속하지 않은 와인들은 낯 뜨겁게 거창한 수퍼 토스카나라는 호칭 대신에 수퍼 토스카나 스타일로 만들었다거나 수퍼 토스카나에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후대에 만들어져 선배들만큼 뚜렷한 역사성은 없더라도 발군의 품질을 보여주는 수퍼 토스카나 역시 적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들 중에는 치밀하게 자신의 포도밭을 연구한 후에 국제품종이 보다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산지오베제를 뽑아낸 소신파도 있다. 이것은 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예전에는 하나의 큰 밭으로 관리하던 방식을 탈피하여 포도밭을 미세구획(block)별로 구분하는 과학적이고 진일보한 농사법을 의미한다. 그 결과 일괄적으로 한 가지의 포도품종을 심는 것이 아니라 미세구획별 특징을 최대한 잘 살릴 수 있는 포도품종을 심는 방법이 점진적으로 확대되었으며, 토스카나에도 외래품종들이 심겨질 수 있는 과학적인 접근법이 양조가들 사이에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수퍼 토스카나에 대한 중요한 단명 중의 하나는 수퍼 토스카나가 추구했던 국제성(국제품종의 수용)이 이태리의 강한 보수적 기질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어 외래종인 국제품종(보다 정확히는 프랑스 품종)을 사용했다는 점에 매우 큰 관심이 모아졌다는 것이다.

이태리와 프랑스의 관계는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미묘한 구석이 있고, 역사적으로 이태리와 프랑스가 요리, 와인, 패션, 명품 및 문화예술의 전 분야에서 서로에게 라이벌 의식이 있기에 이태리 와인의 심장부인 토스카나에 프랑스 품종이 심겨지고, 그 결과물들이 기존의 토스카나 와인들에 비해 우월적 존재로 비춰지는 것은 와인계의 세계적 빅 이슈가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수퍼 토스카나 와인들이 지역의 전통적 양조방식과 규정을 거스르려 했던 가장 큰 이유는 고품질의 추구였는데, '고품질 추구=외래품종 도입'으로 지나치게 일반화 되면서 산지오베제로 대표되는 토스카나 전통품종들이 국제품종들에 비해 열등한 것처럼 보이는 우려스러운 현상이 나타났다.

외래품종의 도입은 그것이 목적이라기보다 고품질의 와인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보는 것에 타당하며, 고품질의 추구는 사실 토스카나 전통종이며 토스카나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산지오베제로도 가능했다.

그러나 산지오베제의 고급화에 열을 올렸던 생산자들은 많지 않았던 반면 외래품종을 도입한 생산자들이 수퍼 토스카나 모델의 초기 정착기에 보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고 산지오베제를 주 품종 또는 100%로 사용하여 훌륭한 와인을 만들려는 시도가 그다지 중요하게 조명되지 못한 측면이 있어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그러면 왜 산지오베제의 고급화가 어려웠을까? 토스카나가 포도재배에 필요한 궁극의 테루아를 갖추고 있음에도 장기 숙성이 필요한 고급와인에 대한 인식이나 수요가 없었기 때문에 1970년대까지도 산지오베제를 가지고 와인을 만드는 패턴은 중단기 숙성에 적합한 쉽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쟁으로 망실(忘失)된 토스카나의 포도밭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이태리는 한 가지 중대한 실수를 범하였는데, 다름이 아니라 우수한 품질의 포도를 맺는 묘목이 아니라 생산성은 좋지만 종합적 품질이 우수하지 못한 묘목인 산지오베제 디 로마냐(Sangiovese di Romagna)를 널리 식재했던 것이다.

다음호 연재 : 수퍼 토스카나 와인의 고찰2

신성호 와인칼럼니스트｜altoman@naracell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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