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은희경의 소설은 단편이든 장편이든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의 모습을 남성의 시각으로, 때로는 여성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지만 인물의 초점은 여성에게 있으며 여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일상에서 오는 작고 은밀한 그러나 사소하지 않은 것들을 표현하고 있는 소설가 은희경. 골프타임즈에서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골프타임즈=최양수 기자] 대한민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인 전통이 이어져오면서 남성 위주의 사회가 형성돼 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골프타임즈에서는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소설가 은희경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문학관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여성 문제를 다룬 소설들이 남성에 의한 여성의 피해의식, 남성에 대한 적대감 표현으로 일관됐다면 90년대의 소설들은 오히려 일상적인 문제,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 소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단순히 여성에 대한 남성의 횡포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일상에 대해 남성과 여성은 모두 동일한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고 현대의 일상생활을 표현하고 있다.

일상에서 오는 작고 은밀한 그러나 사소하지 않은 것들을 표현하고 있는 작가로 은희경을 들 수 있다. 은희경의 소설은 단편이든 장편이든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의 모습을 남성의 시각으로, 때로는 여성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지만 인물의 초점은 여성에게 있으며 여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은희경은 1959년 전북 고창 출생으로 초등학교 문예반에서 글쓰기와 일기를 좋아했으며 어릴 때부터 백일장을 휩쓸고, 숙명여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작가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어요”라며 자신이 소설을, 문학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한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도 소설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라며 작가로의 본격적인 길을 시작한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이중주’가 당선돼 등단한 이래, ‘삶을 일체의 환상 없이 똑바로 응시할 것’이라는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90년대 문단의 대형 신인으로 부상했다.

같은 해인 1995년 장편 소설 ‘새의 선물’로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했고, 1996년 ‘빈처’로 제20회 이상문학상 추천 우수작을 거쳐 1997년에 발표된 첫 소설집 ‘타인에게 말걸기’로 동서문학상을 받았고 1998년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서른살의 강’(1996), ‘여자의 방(1998)’ 등이 있는데, 특히 타인에게 말걸기에는 신춘문예 당선작이자 데뷔작인 ‘이중주’를 비롯해, ‘먼지속의 나비’, ‘짐작과는 다른 일들’, ‘열쇠’,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 ‘그녀의 세 번째 남자’ 등 9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1998년 장편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발표했고, 1999년에는 장편소설 ‘그것은 꿈이었을까’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은희경 소설은 대체로 여성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야기의 진행이 모두 여성은 아니지만 남자의 입장에서 서술되더라도 여성의 삶의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보인다. “저는 에곤 쉴레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에곤 쉴레의 그림은 지독한 그림이죠. 삶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그리고 그걸 직시할 때만 얻어지는 것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아 좋아요. 물론 작품들이 그런 이야기들이 되길 바라구요”라며 작품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소설은 흔히 사랑소설 혹은 연애소설로 읽힌다. 작가 자신은 그가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의 상투성’, 그로 인해 초래되는 진정한 인간적 소통의 단절을 말하고자 했다고 이야기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의 단절이 여성이 사회나 남성과의 소통의 단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누구나 한 가지 면만 갖고 있지는 않아요. 가장 차가운 사람이, 가장 뜨거운 사람이기도 한 거죠. 자신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인 동시에 지나치게 풍부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가졌지요”라며 흔하디 흔한 사랑의 주제를 기존의 방식과는 사뭇 다른 도전적인 방식으로 다뤘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은 고상하고 감상적이며 가슴 아린 그런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순정은 더욱 아니다. ‘타인에게 말 걸기’에서 이미 ‘사랑은 천상의 약속일 뿐’이라고 선언했듯, 은희경식 사랑은 어디까지나 사랑의 낭만성을 뒤엎어 버리는 세 남자에 동시에 끌리는 자유분방한 사랑을 하는 여자로 그려진다.

이를 통해 이 사회에 통용되는 획일화된 가치와 허위의식을 비판해 보자는 것이 작가의 의도이며 우리 사회의 숱한 억압과 금기에 의해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사랑, 그 억압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움을 얻는 사랑의 모습이다.

“작가는 연기자 같습니다. 주인공의 감정에 완전히 몰입해서,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쓸 때 설레임을 참을 수 없어서 벌떡 일어났지요”라며 집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은희경의 작품에는 남성, 여성을 가리지 않는 초점 화자의 이동을 시도하고, ‘타인에게 말 걸기’를 비롯한 몇몇 작품에서는 남성 화자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에서 중요한 사연을 결국 여성들의 경험이다. 사랑이나 결혼에 실패한 여성, 산문적인 일상을 견디는 가정주부, 마음의 정처를 갖지 못한 직장 여성 등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빈번히 등장하는 일상 속의 인물들은 그녀의 소설 속에서도 발견된다.

단순히 여기까지만 본다면 은희경이 여성의 목소리로 대변해 예전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억압, 차별에 대해 고발한다고도 짐작할 수 있으나 실은 그렇지 않다. 그녀의 소설 속에서 일상 속의 여성들의 모습을 주로 그리고 있지만 기존의 여성 작가들의 시선과는 다르게 여성들이 지닌 아픔을 부조리한 가부장적인 사회와 그 사회 속에서의 차별 등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주인공인 여성들이 지닌 아픔은 ‘여자’로서 겪어야 하는 아픔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타자들과의 차이로 인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아픔으로 보는 것이다.

은희경에게 있어서 사랑은 사랑의 낭만성을 뒤엎어버리는 ‘순정의 아이러니’, ‘순정의 역학’으로서의 사랑이다. 정해진 규칙을 따라가는 사랑이 아니라 배신과 반칙이 횡행하는 규범 없는 사랑이다. 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획일화된 가치나 허위의식에 신랄한 냉소를 퍼붓는 사랑이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여성들에 대한 억압과 금기들에 의해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사랑이며, 그 억압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사랑이다. 이런 작품을 통해 은희경은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양수 기자｜pluswa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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