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갤러리에게 작품 설명을 하고 있는 김관태 작가

[골프타임즈=박관식 객원기자] “그레이의 소중함을 어떻게 깨우쳤냐? 이게 중용(中庸)이다. 스님 옷이 회색이다.”

이는 조계종 15대 종정 성파 스님이 화가 모임인 ‘가원회(佳園會)’ 김관태 회장의 그림을 소장하면서 전한 말이다.

김 회장이 옻칠을 배운 성파 스님은 서예와 전통 민화, 도자기와 전통 장류 등 여러 방면에서 놀라운 창작력을 선보이는 인물로 유명하다.

미적 전통의 명맥을 잇는 ‘가원 그룹 전시회’가 7월 31일부터 8월 5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 1층 2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지난 31일 오후 갤러리들이 꾸준히 관람하는 인사동 라메르 전시장에서 만난 김관태 작가는 성파 스님으로부터 자신이 추구하는 회색 중용의 의미를 제대로 배웠다고 밝혔다.

김관태 작가는 “40년 넘게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해왔다.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그런 의미가 아닌 의역으로, 하모니는 같은 게 아니다.”며 “옛날에 노동 운동하다 보니 이런 게 나왔는데, 노사는 서로 적이 아니라 공존해야 한다. 그래서 화(和)는 같지 않아야 한다. 같지 않았을 때 하모니가 성립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1981년 10월 기아자동차 김선홍 사장의 취임사 때 한 말을 ‘노사는 다르지만 서로 인정하고 살자’는 뜻으로 재해석했다. 다시 되새겨 보니 철학적인 얘기였다는 것.

이어 “내가 태어난(1949년) 때부터 남북, 노사, 여야 등 갈등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런 갈등 시대의 흑백 논리를 어떻게 재구성해 미화시켜 볼까. 그게 나쁜 게 아니라 좋은 것임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런 과정에서 화이부동이란 사자성어를 접하면서 깨달았다”며 “그래 흑백을 쓰자. 너희들이 싫어하는 흑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덧붙였다.

김관태 작가는 기아자동차 재직 시절 노동조합장을 지낸 인연으로 아직도 김선홍 회장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에 선보인 전시 작품 중에는 김선홍 회장을 그린 자화상이 있는데 언뜻 보면 인물화가 아닌 추상화이다. 나중에 영정사진으로 쓰일 예정이라는 이 작품은 영국 왕립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김 회장의 아들이 소장한다고 전했다.

김 작가는 유독 많은 터치와 그러데이션이 복합된 이 그림에 대해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많은 말을 하고 싶은 걸 상징했다. 기아 사건에 대해 말씀하고 싶은데 나는 그 실체를 모르니 그림으로 그릴 수밖에 없다.”며 “한 장에 드려야 하는데 그 많은 사연을 어떻게 담겠냐? 남들은 여러 색으로 하지만 단순히 흑백으로 하다 보니 터치를 수만 번 했다.”고 강조했다.

제2의 카지미르 말레비치
김관태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제목을 달지 않는다. 이는 갤러리에게 작품의 내용을 강요하거나 힌트를 주지 않기 위함이다. 각자 느끼는 바대로 취하길 바랄 뿐이다.

김 작가는 자신의 장르를 굳이 밝힌다면 ‘계획적인 추상화’라고 칭한다. 추상화는 해석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몰두하면 그림 하나 가지고 장편소설도 쓸 수 있다. 물론 끝도 없는 대서사시는 덤이다. 그런 탓에 성파 스님, 김선홍 회장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는 연유이기도 하다.

그는 시각적 언어인 그림은 늘 영혼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그리고, 채우는 과정이 아니라 비우는 과정이라는 것.

김관태 작가는 “그림은 시각, 촉각, 후각, 숭고미, 감각적이어야 한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그림으로 말하고 싶다.”며 “더 많은 표현을 하고자 침묵하고 싶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자아 발견, 즉 나를 찾는 과정이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딸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젊은 엄마에게 러시아 카지미르 말레비치 작가를 거론하며 그의 작품이 얼마나 되느냐고 질문했다.

말레비치는 1915년 정사각형의 캔버스에 검은 사각형만을 하나 그려놓고 새로운 예술, 절대주의의 탄생을 선언했다. 당시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의 등장은 뒤샹의 변기에 버금가는 충격이었다.

두 모녀는 트리치아코프 미술관이 소장한 말레비치의 대표작이 1조 원이 넘을 것이라는 김 작가의 귀띔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언뜻 김관태 작가가 ‘제2의 카지미르 말레비치’를 추구하는 듯했다. 또한 그의 사인 ‘Kante Kim’에서 합리론과 경험론을 비판하고 종합한 철학자 칸트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