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여백

[김학규의 삶과 기억의 간이역에서 1회] 황금 돼지해 벽두에

그해 산에서 들춰 메고 내려오던 황금돼지의 추억 김학규 시인l승인2024.05.15l수정2024.05.15 10:01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골프타임즈=김학규 시인] 2019년은 그해는 황금돼지해였다. 기해년 새해 벽두에 함박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 하나 생겼다. 1월 어느 날 나는 서울에서 전북 정읍시 칠보면에 있는 수청리 농장에 내려왔다.

황사를 피한다는 것은 핑계이고, 혼잡한 서울 생활이 번잡하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곧바로 시골로 내려오곤 했다. 산골 마을이라 한적하고 공기가 맑아 온몸이 힐링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농장으로 가는 길은 차가 그리 많이 다니지 않는 산길이다. 2차선 포장도로이지만 밤이 되면 고라니도 가끔 보이는 길이었다. 차량의 불빛에 움직이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 고라니 때문에 속도를 줄여야 할 때도 간혹 있었다.

어느 늦은 밤에는 어미 산돼지가 어린 새끼 여섯 마리를 이끌고 도로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자동차 불빛에 놀라 산으로 숨어들기도 했다.
농장에 도착하여 잠자리에 들었는데 개들이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문밖으로 나가니 어린 산돼지 새끼 한 마리가 문 앞에 죽어 있었다. 네 마리의 개들은 이리저리 날뛰며 마구 짖어 댔다.

어젯밤에 개들이 줄기차게 산돼지 일가족을 협공해서, 어미 돼지가 새끼 한 마리를 포기하고 산으로 도주하였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개들은 산돼지 새끼 한 마리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문 앞까지 끌어다 놓았고, 내가 나오기를 밤새워 기다렸다가 아침에 문밖으로 나오니 그렇게 짖어 댔던 것이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시골집을 돌봐주는 집사와 함께 산책 겸 등산으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자연인이다’ 프로를 즐겨보다 보니, 버섯이나 약초 같은 것에 관심이 생겨서이기도 했다. 시골에 거주하는 선배는 지금 내가 오르는 산에는 야생 난이 많은 곳이라고 말해 주었다. 또한 산돼지도 많으니 조심하라고도 경고했다.

두리번거리며 오르다 보니 어느새 산 중턱에 와 있었다. 계곡 길을 선택하였더니 너덜지대라서 거칠고 경사도 심했다. 계곡 물줄기를 피해 우회하여 오르는 중에, 뒤따르던 집사가 나지막한 소리로 나를 불러서 뒤를 돌아보았다. 집사는 손가락을 입에다 대고 일자 모양을 하고서 쉿! 하는 표현을 했다.

내가 서 있는 우측 땅 부위를 가리켜서 나는 천천히 머리를 돌려 그 방향을 보았다. 3m 전방 땅바닥에 황금색 산돼지의 길쭉한 머리가 보였다. 양지쪽 떡갈나무 낙엽 더미 속에서 몸을 반쯤 파묻고서 머리와 어깨 부위만 노출된 형태였다.

자세히 바라보니 눈을 감고 잠을 자는 자세였다.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조심스럽게 좌측으로 돌아 산돼지의 뒤편으로 다가갔다. 산돼지가 갑자기 앞으로 돌진할 것을 대비해서였다. 후방까지 이동하여 접근을 했는데도 움직임이 없었다.

지팡이로 산돼지의 엉덩이 부분을 툭 하고 건드려보았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어서 두 차례 힘을 주어 건드려보고 난 후에야 죽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뒷 발목을 잡아 낙엽 더미에서 꺼내어 들어보니 상당히 무거웠다.
두 손으로 불끈 들어보니 무게가 50Kg 정도는 되어 보였다. 온몸의 털이 볕에 말라서인지 누런 황금색으로 깨끗했다.

신년 새해 벽두 더욱이 황금 돼지해인데 산 중턱에서 황금 돼지를 어깨에 들추어 메고 내려오다 보니 천하장사가 따로 없었다. 죽은 산돼지를 들추어 메고 비탈진 돌 더미 길을 내려오는데, 산 돼지의 무게가 버거워 자꾸 비틀거렸다. 10여m씩 집사와 교대하면서 하산하다가 잠시 쉬면서 산 아래 친구와 통화를 했다.

전문가로 통하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받아서 화상 통화도 했다. 산돼지의 눈을 까보라 해서 보여 주었더니 허허허 웃었다. 싱싱한 놈이라며 죽은 시간이 하루 정도나 됐다고 알려 주었다. 아마 산 아래쪽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서 살자고 도망쳐 왔다가 죽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짐승들이 꽤 많다고 하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읍내에 내려오니 고향 친구들 일곱 명이 모여 있었다. 다행히 도살 작업하는 곳까지 연결이 되었다. 그렇게 잡은 산돼지 고기를 직불에 구워 먹고, 끓여서도 먹고 하며, 마치 산돼지 고기 축제를 치른 기분이었다. 친구들은 너도나도 취하였고 술이 무서워 가버린 친구가 있을 정도였다.

올해는 황금돼지 해이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찾아들 것 같아, 로또 복권도 여러 장 사봤으나 모두 허탕이었다. 하지만 산 중턱에서 천하장사를 흉내 내며 황금돼지를 옮기던 일은 잊지 못할 추억 거리가 되었다.

커다란 웃음소리가 산자락에 쩌렁쩌렁 울림을 주며 한 해를 시작하니, 분명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행복한 느낌으로 시작한 그해 산돼지 사건이었다.

시인 김학규
시와수상문학 운영위원장, 한국 창작문학 서울본부장, 계간문예 작가회원으로 활동하며 '창작 활동'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김학규 시인  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골프장TF전략사업기사제보광고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2가 50-5 태호빌딩 505호  |  발행·편집인 : 문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문정호  |  전화 : 02-2277-7371  |  팩스 : 02-2277-1480  |  이메일 : master@thegolftimes.co.kr
제호명 : 골프타임즈  |  문광부등록번호: 서울 아 02033  |  등록·발행일 : 2012년 3월 21일  |  사업자등록번호 : 202-16-92335  |  통신판매업사업자번호 : 제2012-서울중구-0827호
출원번호 : 40-2012-0016887
골프타임즈는 상표법에 의거하여 특허청에 상표(국,영문)등록이 되어있습니다.  |  골프타임즈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 보호를 받으며 무단복제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2024 골프타임즈.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