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임중우)

[골프타임즈=노경민 작가] “후딱 안 나오고 뭐하냐?”

노기가 묻어난 음성이다. 아버님은 벌써 중절모까지 쓰고 양복 입은 채 뒷짐 지고 마당에 서 계신다. 봄날 예식장 나들이 나서는 길이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 하지만 집안일 치워놓고 준비하려면 시간이 만만찮다. 남자들이야 식사 마치고 신문 펴 드는 시간에 여자는 아침 먹은 설거지에 대충이라도 집 정리 마치고 나설 준비 시작한다.

세안하고 얼굴에 화장하는 시간이 또한 적지 않다. 매일 하는 화장도 아니고 어쩌다 나서는 길 화장은 더디다. 스킨로션 바르고 촉촉하게 에센스도 발라주어야 화운데이션이 잘 먹는다. 거기에 봄 햇살 자외선 차단하려면 선 크림도 발라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섬세한 눈썹 그리기. 맘이 급한 날은 어찌 그리 짝짝이로 그려지던지 슬쩍 머리로 감추어보려 하나 말려 올라간 퍼머머리는 말을 안 듣는다. 한쪽 눈썹이 두툼하고 끝이 뭉툭한 게 짝짝이니 다시 그리기 시작하다 보면 좀체 만족이 안 된다. 진작 문신이라도 할 것을 후회한다.

속눈썹 올리고 마스카라에 눈두덩엔 아이샤도우까지 섬세하게 바른다. 그게 끝 인가. 볼 터치도 해야 하고 입술라인도 살려야 한다. 화장하면서 어떤 옷을 입을 건가 또 머릿속은 정신없이 헤맨다. 그런 반면 늘 상 남자는 양복만 차려 입고 나서면 그만이다.

오랜만에 나서는 외출 길 여자의 단장은 복잡하다. 편안한 홈웨어 입다 차려 입는 옷은 어색하고 불편하다. 슬리퍼 끌다 구두 신으려니 답답하다. 준비시간이 흐를수록 재촉하는 남편의 소리에 더욱 바빠진다.

기다리는 아버님은 참는 데 한계치를 넘어선 듯 버럭 소리지르시며 결국 사단이 나고 만다. 늦었다고 난 안 갈 테니 혼자 다녀오라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신다. 그렇게 매번 겪는 일을 티격태격하며 오늘도 길을 나선다.

그런 모습을 보며 오늘도 나는 남편보다 앞서 나선다. 화장이랄 것도 없이 간단명료한 비비 크림에 선 크림. 눈썹은 문신하였고 립크로스 만 쓱 그리고 나서면 끝이다. 봄날 예식장에 신부보다 더 화려할 수 없고 늙음은 늙음으로 즐기자 하며 경쾌하며 가볍게 차려 입고 나선다.

한 수 더 뜨기는 며늘아이다. 7살 3살 아이들까지 차려 나서기가 만만찮을 텐데, 네일아트에 앞머리는 구리프 하나 말아주고, 양 어깨에 커다란 가방까지 챙겨 매고 제시간 보다 먼저 나와있다.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나서는 꽃 단장길이 활짝 피어 반긴다.

노경민 작가는
시와수상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작가는 현재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운영이사로 순수문예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