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활동하는 ‘깨비나라’ 소속의 ‘깨비나라 문화재탐방단’ 40여명이 전국에서 집결해 지난 2월 17일 전북 고창의 1500년 된 삼국시대의 고찰에 대한 문화탐방도 곁들였다. 선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다. 특히 동백꽃과 꽃무릇, 참나무 등에 대한 시인·묵객들의 예찬과 함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사찰 부근에 선운근대문학기념관 조성도 예정돼 있다.
[골프타임즈=황정옥 한국화가] 다른 사찰과는 선운사(禪雲寺·주지 법만·전남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산)는 다른 분위기를 던져준다.
일주문을 지난지도 한참 만에 불록한 극락교를 건너 천왕문을 통과하면 사각의 프레임 안으로 마치 요지경으로 보는 듯 사찰 내부의 응축된 시야가 들어온다. 휑하니 넓은 절 마당이 우선 시원하다.
대부분의 절이란 평지보다는 유독 험한 산중턱에 엉덩이를 비비고 들어앉은 듯 겨우 제자리를 찾아 옹기종기 앉은 모양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지니고 있다. 세 방향이 도솔산(선운산)으로 둘러쌓인 아늑한 분지로 사찰이 앉은자리는 널직해 시원한 전경을 한눈에 보여주면서 새로운 맛을 보여주는 평지의 건축 배치도가 특이하다.
펀펀한 자갈 마당은 다른 절과 달리 일단 마음의 균형미와 평화로움을 안겨주는 느낌이다.
저마다 이 사찰은 찾는 이들의 면면이 다 드러나게하고 자존을 살려주는 듯한 것은 한마리 개(장군)가 대신하듯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나게 하는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첫 시선이 응집한다.
먼저 눈에 맞딱뜨리는 건축물이 만세루다. 자연목 기둥을 세운 9칸짜리 만세루는 돌아앉아 있는 느낌이 들어 조금은 들어오는 사람을 배척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날 선운사 고건축의 진가가 만세루에 있다고 전 문화제위윈 김동현 박사는 주장했다
천정에 있는 목재들이 통나무 그 자체로 되어있고 Y자 보형태의 가로목이 이용되는 등 나름대로의 운치를 지녔고 오랜 연륜을 거쳐 이는 주변 자연과의 동화감을 주려고 노력했던 흔적들이다.
이어서 나타나는 것이 6층 석탑을 앞세운 조선시대에 증축된 5칸짜리 대웅전이다. 대웅전의 뒷벽을 보면 당시 고려시대의 건축양식을 그나마 볼 수 있다는데 조선시대(1613) 대웅전을 보수할 때 남아있던 기둥들을 뒷쪽으로 처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행이 절을 떠나기 직전 대웅전 뒤뜰로 가봤지만 고건축에 대한 안목이 미치지 못해 눈앞에 두고도 볼 수가 없다는 것이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더욱 절실하게 묻어났다. 서울에서 먼 길을 달려온 우리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런 안타까움 대신에 대웅보전 뒤쪽 산자락으로 펼쳐져있는 동백나무 군락이 눈에 한꺼번에 들어온다.
무려 500년 된 동백나무(천년기념물 184호)들이 3000그루나 된다는 동백숲인데 아직 꽃은 피기 전이다. 조림과 방화림이 그 역할이지만 동백그늘에서 나는 차가 백로차라고 하는데 스님들이 동백기름이나 백로차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 동백나무군락이 또한 많은 사람뿐만 아니라 시인·묵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용문사처럼 천년된 은행나무(천년기념물 39호) 한그루가 절을 먹여살리는 시대가 됐다”고 말하는 재곤 큰스님의 말씀처럼 나무 한그루를 식재하더라도 십년, 백년 후를 멀리 생각하고 나무나 원예를 선택하고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선운사는 동백꽃으로 유명해졌고 또한 이 지역 출신인 미당의 시로서 유명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선운사 창건유래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선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어 사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던 시기도 있었다.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검단스님의 창건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연못을 몌꿔서 절을 세웠다는 창건설이다. 검단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하여 절 이름을 ‘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인근 말사로 있는 선운사 중턱의 산내암자 참당암은 초기 선운사의 발원터라고 알려지고 차츰 세를 잃어 현재의 선운사의 암자로 물러앉고 말았다.
이곳엔 선운사 약사여래불상(전북 유형문화재 제33호)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불상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땐 지장보살로 보는 견해도 있는 불상으로 하단이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파내어 이곳에 모셨다. 확실한 연대와 제반 자료만 갖춰지면 상당한 국보급 유물이라는 분석이다.
또 도솔산의 정상쯤에 있는 선운사 도솔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 후기의 금동지장보살좌상으로 높이는 96.9㎝이다.
이어 도솔암의 서편 암벽 칠송대(七松臺)에 새겨진 높이 13m, 너비 3m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거대 마애불상이 있다. 방형(方形)에 가까운 평면적인 얼굴에 눈은 가늘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으며, 우뚝 솟은 코에 앞으로 내민 일자형의 두툼한 입술이 소박하고 익살스러운 미소를 띤 것처럼 보인다.
이 불상은 고려 초기의 거대한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사람들은 이 마애불을 미륵불이라 부르고 있는데 불상의 배꼽에 신기한 비결(秘訣)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하면서 신비주위로 방향을 틀기도 했다.
동학농민전쟁 무렵에 동학의 주도세력들이 미륵의 출현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기를 꺼내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한다.
◇도솔암
선운사에서 3Km정도 떨어져 있는 참담암으로 가는 길은 계곡을 줄곧 끌고 함께 갔다. 물빛은 검은 색을 띄고 있는데 그것은 이 길을 따라 가는 계곡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등 5 종류의 참나무 군락이 펼쳐져 있는데 낙엽에서 탄닌 성분이 많아 계곡 물빛깔이 검은색을 띄게 된다고 지묵 스님은 설명을 했다.
선운사 골짜기 중간 중간에 펼쳐진 것이 꽃무릇 들판이다. 이꽃은 8월 이후로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흔히들 상사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잘못 된 것이라고 지묵스님은 지적하고 꽃무릇이 융단처럼 펼쳐져 선운사의 가을 한철을 담당하면서 동백과 함께 선운사의 트랜드 마크로 전국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
창담암에서 나와 왼쪽 길을 따라 오르면 암벽에 뻐꿈한 진흥굴이 있다. 여기서 선운사창건과 진흥왕을 연결시키고 있지만 신라는 대륙의 일이기 때문에 누군가 현대에 와서 그렇게 기록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앞에 서있는 12가지의 나무를 지나면서 이윽고 거대한 바위로 솟아있는 천마봉을 올려다보면 마치 희미한 얼굴이 숨어 있는 듯하다. 마치 마고할미의 모습을 본 듯하다. 천마봉에는 도솔천을 돌던 천마가 알을 떨어뜨려서 떨어진 자국이 있다는 전설도 있다.
인솔했던 지묵스님은 도솔암까지 오르도록 일행들을 독려하면서 “현재는 도솔암 하나만 있다. 과거엔 상도솔, 중도솔, 하도솔암이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 다 사라지고 그냥 암자 하나만 남아 도솔암으로 불리고 있다”고 유래를 들려준다. 애초에 불교 이전의 참배 대상으로 하늘을 향하던 우리민족의 천손의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듯 산정을 향하던 습성이 살아있는 듯 했다.
신앙의 궁극적인 면에 접하다보면 자꾸만 하늘을 지향하게 되는 법이다. 우리민족은 산정으로, 산정으로 대산명산을 찾아 하늘을 지향해갔다. 이는 원래 우리 고유의 생활신앙이자 천손민족의 고유한 삼신 개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 불교가 들어와 삼신의 세계를 몰아내고 차지하고 앉았으니 안타까울 수밖에 그러나 다행히 불교라는 문화로 바꿨지만 오늘까지 우리의 습성과 흔적을 그대로 지켜온 것만으로 다행이라는 안도감은 있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문화 상실이란 점에서 못내 아쉽다.
춘동백 피기도 전에
봄바람 타고 밤마실 나다니다가
몸이 간지러워 온몸이 끓어 한낮에도 어두운 동백숲 그늘에
몰래 들어갔다가
때늦은 꽃사태에 달뜬 두 몸이 한 몸에 미끄러져서
거친 숨결 애써 죽이지만 소문이 꼬리를 문다
숨기지 못할 비밀이 가슴으로 타 들어
저절로 툭툭 터져도
부끄러워 붉디붉은 꽃송이 쑥쑥 내밀어 봐도
초록 이파리를 이기지 못해
뚝뚝 송두리째 꽃눈물로 삭이네
그때서야 꽃피고 진줄 알았네
<정노천 시인의 -춘동백 따라지->
이날 깨비들은 선운사가 갖고 있는 문화적 가치에 대한 토론을 시도하면서 전체적인 접근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사찰이란 새로운 시대의 종교를 초월한 모든 국민들의 영속적인 문화재이다. 스님들이 잘 관리해 나가고 있는데 이를 잘 관리해서 후손들에게 올 곧게 전해 줘야 한다’는 대장깨비의 말이 뇌리를 쳤다.
‘절 입구에 세워진 부도를 성보박물관 쪽으로 옮기고 잘 보존해서 향후 스님의 업적이나 유물들이 후손들에겐 문화제가 될 수 있는 만큼 지금부터라도 잘 보존해야한다’는 의견들이 개진됐다.
황정옥 한국화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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