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해성 스님, 시인] 무덥고 지루한 장마철이다. 새벽부터 갑자기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더니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햇빛이 반겨주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을 맞으면 어릴 때 생활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리쬐는 뙤약볕 들판에서 더운 줄 모르고 한없이 뛰어놀다 지치면 흐르는 개울물에 세수하고 나무 밑에서 땀을 식힌다. 조금이라도 더위가 식으면 친구들과 다시 모여 옷이 흠뻑 젖도록 놀 때의 쾌감은 글로도 표현이 안 된다. 우리 동네 가운데 참나무 그늘은 논밭에서 일하시던 어른들도 일손을 멈추고 새참을 잡수시며 대화하는 멋진 쉼터였다. 그때 나뭇가지에 스치는 시원한 바람은 어디서 오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기술이 너무나 월등하여 지금도 그립다.

요즘 서울에 개울은 거의 사라졌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흐르는 물에 세수하고 쌀 등 음식물도 씻고 세탁기의 역할도 개울물이 다해주는 시기였다. 그때는 개울에서 세수하고 마른 목을 채워도 병균에 대한 의심은 상상도 안하고 오히려 행복을 느끼는 건강한 시절이었다. 또 연일 비가 내릴 때는 어른들이 씨 뿌리고 가꾸던 꽃과 나무들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허리가 꺾이고 뿌리가 뽑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불쌍하게 보여서 뿌리를 모아 처마 밑에 옮겨 두었다. 그리고 비가 그치면 밭에 심어서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 신기하여 열심히 가꾸어 꽃도 피우고 열매를 맺던 모습도 생각난다.

이와 같이 나무에서 이는 바람과 개울물 그리고 꺽어진 꽃을 다시 키워주는 흙과 햇빛은 필요한 이들에게 무조건 베풀어 주며 아름다운 삶을 가르쳐준 것이다. 또 우리들의 영혼까지도 맑게 해준 것은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 등 자연의 소리였다. 그 옛날 어린 시절에 아무리 어렵게 살았을지언정 모든 것을 갖추고 풍족하게 살아가는 요즘보다 자연에 대한 이해와 교감은 더욱 풍부했다. 오늘도 밤새 내리는 빗소리를 즐기며 자연이 주는 혜택에 고마운 마음 고이 간직할 것을 다짐하는 뜻 깊은 시간이다.

시인 해성스님은
대한불교 조계종 광림사 주지, 연화원 대표이사이자 수어통역사로 ‘자비의 수화교실’ ‘수화사랑 친구사랑’ 등을 출간했으며 시집 ‘하얀 고무신’있다. 2020년 ‘올해의 스님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