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맑은 공기가 그리울 때면 가끔 숲이 우거진 길을 찾아 걷습니다. 푸른 하늘아래 또 하나의 푸른 하늘이 펼쳐진 숲길을 걷고 있노라면 도심에 찌든 마음이 세탁되어 온 몸이 맑아지고 복잡하던 마음도 차분해지는 것을 느껴집니다. 꽃과 잎이 풍성한 숲길로 접어들면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게 아닌가 하는 환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살수록 자연이 주는 풍경의 맛이 왜 이리도 좋은지, 어린 시절 산과 들을 뛰어놀던 즐거운 추억이 아스라이 떠오릅니다.

학교를 오가는 길마다 자연이 주는 재미난 일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동네의 지킴이로 동구 밖에 우뚝 선 플라타너스에 올라가거나, 들판 여기저기 무더기로 핀 꽃을 꺾어 갖고 놀거나, 개구리, 메뚜기, 방아깨비 같은 곤충을 잡아 가지며 놀거나, 하얀 연기를 내뿜는 기차를 보고 손을 흔들거나, 책가방을 풀숲에 던져둔 체 해저물녘까지 친구들과 놀아도 아무렇지도 않던 그 시절이 아마도 내 인생에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듯싶습니다. 요즘처럼 등하교 시간을 정확히 맞춰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상상도 못할 자유로운 진풍경인 것입니다.

내가 살던 시골집은 장독대가 가지런히 놓여있던 뒤 토담 너머에 바로 뒷동산으로 이어져 있어 집 둘레가 온통 푸른 나무로 둘러싸였습니다. 집 앞 마루에 올라서면 옹기종기 들어선 아랫마을이 전경이 다 내려다 보여 굴뚝에서 연기만 피어올라도 누구네 저녁밥이 익어가는 걸 단박에 알았습니다. 집 마당 토담 밑에는 계절 따라 무리지어 꽃들이 피고 졌고, 담 밖까지 뻗어나간 감나무에서는 서리가 내리는 가을이면 농익은 홍시가 아랫집 준이네 텃밭으로 뚝뚝 떨어져도 네 것 내 것 없이 사이좋게 나눠 먹곤 했습니다.

그 푸른 풍경들이 오늘날 나의 글쓰기 자양분이 되어 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문명이 발달해져 갈수록 자연의 정서가 점점 메말라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나는 차를 타고 가다가도 시골 장을 만나면 차를 세워놓고 구경하기를 좋아합니다. 아무렇게나 늘어선 장 구경도 재미있지만 시골할머니 같은 분이 나물을 좌판에 펼쳐놓고 파는 걸 보면 그 옛날 정서가 되살아나 나도 모르게 생각지도 않던 물건을 사들고 오기도 합니다.

집에 돌아와 언젠가 먹었던 입맛을 떠올리며 손닿는 대로 이런저런 양념을 넣고 요리해 보지만 오래전 혀가 기억했던 그 입맛이 나지가 않습니다. 세월 따라 입맛도 퇴행한 것인지, 내 손맛이 무딘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생활이 윤택해지는 만큼, 좋은 집,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데도 듣도 보도 못한 질병들은 왜 그리 자꾸 생겨나는지, 참으로 이상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수필가 박원명화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