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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의 연예퍼즐] ‘살아 있는 전설’ 홍콩 영화감독 ‘왕가위의 시간’

작가주의 감독이 끊임없이 찾고 있는 우리네 삶의 진실 윤상길 칼럼니스트l승인2022.06.25l수정2022.06.2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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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윤상길 칼럼니스트] ‘전설’(傳說)의 사전적 의미는 “오래전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말이나 이야기”이다. 주제에 따라 사물이나 인물이 그 주인공이 된다. ‘망부석’ 전설은 사물의 전설이고, 임꺽정이나 사명대사의 전설은 인물의 전설이다. 모두 믿거나 말거나의 옛날이야기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사물의 전설은 글자 그대로 옛날이야기가 되고, 인물의 ‘전설’만이 ‘레전드’(Legend)라는 고상한 명칭과 함께 존경과 칭송의 대상으로 쓰인다. 뛰어난 재능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미 세상을 떠난 선대(先代)의 인물이 그 주인공이다.

이 전설에 ‘살아 있는’이란 수식어가 붙어 ‘살아 있는 전설’이 되면, 그 당사자에게는 최고의 찬사이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선생은 생전에도 ‘MC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렸고, 이를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살아 있는 전설’은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많이 쓰인다. ‘오마주’ 방식도 이 ‘살아 있는 전설’에 대한 또 다른 존경의 표현이다. 음악계에서 헌정 앨범을 내고, 영화계에서 특별 작품전을 갖고, ‘살아 있는 전설’의 평전을 출판하는 일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된다.

중국 영화계의 독보적인 존재 왕가위 감독(원래는 홍콩에서 활동했지만, 시진핑 정권의 ‘하나의 중국’ 정책에 따라 홍콩에서의 영화 산업이 중단됨에 따라 그는 현재 베이징에 머물며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의 평전이 국내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그의 평전은 “왕가위의 시간‘이란 제목으로 7월 초 출간된다. 기획 제작은 그의 한국 에이전시인 모인그룹에서 맡았다. 그는 올해 64살의 현역이다. 그런 왕 감독이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면서 평전까지 출간되다니, 우리에게 그는 어떤 존재일까 궁금하다.

왕가위 감독은 1990년대에 <중경삼림>(重慶森林, 1994), <타락천사>(墮落天使, 1995), <해피 투게더>(春光乍洩, 1997) 등을 통해 감각적인 영상 스타일로 현대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외로운 내면을 담아내어 평단과 대중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근현대영화인사전)

이후 <화양연화>(花樣年華, 2000)로 경력의 정점을 찍은 그는 2010년대 들어 <일대종사>(一代宗師, 2012)로 건재를 알렸다. 그는 현대 아시아 영화의 최전선에 있는 작가감독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그의 작가주의 연출은 한국을 포함한 20세기 말 아시아 영화감독들에게 주목받았다.

왕가위 감독은 작품 제작 속도가 워낙 느려서 활동 기간보다 연출 편수는 많지 않지만, 대부분 영화가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았으며 흥행에서 크게 실패한 작품조차 재평가되는 중이다. 간결한 플롯과 화려한 비주얼, 세련된 음악, 우수 어린 캐릭터로 대표되는 그의 영화 문법은 일관되게 그의 모든 작품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그뿐만 아니라 서사와 음악, 촬영과 편집 방식에서 그만의 고유한 현대적 감각으로 관능적이며 탐미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그는 현대 아시아 영화의 최전선에 있는 작가감독으로 국제적으로 널리 지지받았고, 할리우드와 유럽의 현대 영화감독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먼저 왕가위 감독에게 주목한 영화 강국이다. 영국 영화계는 2005년에 <Wong Kar Wai: Auteur of Time>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한 바 있다. 영국은 책 제목에서 그를 ’auteur’라 부르며, 그를 작가주의 감독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영화에서의 작가주의(作家主義, auteurism)란 ”영화가 자본이나 유통의 압력에서 벗어나 감독의 개인적인 영감과 통제력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는 감독 중심주의를 말한다. 이러한 일을 하는 영화감독은 영어 낱말로 ‘auteur’라고 부른다. 그가 오늘날 흔히 영화감독을 이르는 ‘director’로 불리지 않고, ‘auteur’로 불리는 사연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지난 2021년 2월에는 중국에서 왕가위 감독의 작품들을 평론한 <왕가위의 영화세계>라는 제목의 책을 북경대학에서 발간했다. 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중국 영화계의 큰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의 영화시장인 중국과 그 영향권에 들어있는 중화권 나라들에 던지는 중국 당국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우리에게 친숙한 홍콩영화는 더는 제작되지 않는다. 제작, 유통, 관리 등 영화에 관한 모든 일정이 정부의 방침에 따라 진행된다. 모든 중국 영화인이 중국 본토에 자리한 지 오래고, 북경 상해를 비롯해 본토 전역에 운영 중인 수많은 스튜디오의 시설과 장비는 홍콩영화 그것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큰 규모를 갖추고 있다.

이제 중국영화는 미국(할리우드)의 상업영화에 맞서, 중국식 물량 공세로 예술영화, 곧 작가주의 작품을 내놓겠다는 움직임이고, 그 선봉에 왕가위 감독을 내세운다는 의미가 이 책 발간에 담겨 있다. 중국 정책에 관한 출판물을 담당하는 북경대학이 책을 발간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중국 사회는 이념의 차이를 넘을 만큼 K-Culture (한류)의 영향력이 폭넓게 미치는 곳이다. 세계 최대 영화시장을 겨냥하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서는 중국 영화계의 정책 변화와 그 중심에 놓인 왕가위 감독의 동향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판 왕가위 평전, <왕가위의 시간>은 그런 의미에서 시의적절한 출판이다.

‘왕가위의 시간’은 영국판 <Wong Kar Wai: Auteur of Time>와 북경대학의 <왕가위의 영화세계>를 기본 텍스트로 모인그룹의 중국 전문가들이 편집을 맡았고, 모인그룹의 정태진 회장, 파트너인 최완 대표, 이태경 대표, 그리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신철 집행위원장, 유바리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자인 문신구 감독 등이 기획위원으로 참여했다. 물론 이 책의 내용과 사용된 사진 등 모든 콘텐츠의 최종 승인자는 왕가위 감독이었다.

최초로 공개된 <왕가위의 시간>의 표지 디자인과 사진 선택도 왕가위 감독의 초이스 픽인데, 여기에서도 왕가위 감독 특유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두 컷으로 구성된 표지 사진의 왼쪽은 한 여인의 뒷모습이고, 오른쪽은 초점이 어긋난 왕가위 감독의 프로필이다.

모인그룹 설명에 따르면 여인의 뒷모습은 ‘화양연화’의 주인공 장만옥의 영화 속 모습이다. 왜 뒷모습일까.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뒷모습을 잊고 산다. 영화 속 장만옥의 뒷모습 사진은 왕가위 감독이 끊임없이 찾고 있는 우리네 삶의 진실이다.

흔들린 왕가위 감독의 모습은 그가 영화를 통해 자기 생각을, 담담하고 투명하게 전달하려는 의지의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다. ‘살아 있는 전설’ <왕가위 감독의 시간>을 기대한다.

칼럼니스트 윤상길
부산일보ㆍ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을 역임하고 스포츠투데이 편집위원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합창 등 소설과 희곡 등을 집필했다.

윤상길 칼럼니스트  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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