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최재인 칼럼니스트] 우리 속담에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말은 신기하게 골프에도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첫 홀에 ‘버디에 이어 파~ 파~’를 하면 욕심이 하늘을 찔러 힘이 잔뜩 들어가 드라이버를 마음껏 휘두르게 되는데, 그러면 공은 보기 좋게 OB 라인을 넘는다.

흔히 본인의 맘에 안 들면 모든 것에 ‘개’를 붙여 개 버디, 개판, 개폼, 개털, 개떡, 개뿔, 개 끗발이라고 하는데 개가 들으면 정말 화가 날 듯하다.

화투를 칠 때 좋은 패를 잡아 판이 끝날 때 판돈을 땄다면 그것이 바로 ‘힘찬 기세’라는 뜻이 있는 ‘발’인데, 첫 끗발이란 화투 첫판에서 판돈을 딴 기세를 말한다.

그리고 ‘개 끗발’에서 ‘개’는 동물인 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헛된’ 또는 ‘쓸데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라고 하니 개나 개띠들이 그리 열받을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골프에서도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은 초반에 공이 잘 맞아 돈을 좀 땄다고 설치다 보면 마지막에는 잃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골프는 초반에 공이 잘 맞는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 골프는 18홀까지 어떠한 일이 벌어질 줄 몰라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잠시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점수를 망치는 오비, 해저드, 벙커 등 벌타 기준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지인들과 가끔 치는 주말 골퍼는 장갑을 벗으나 끼나 그 타수가 그 타수이지만, 프로의 세계는 1타 차이로 우승의 주인공이 갈리고 그 한 타에 수억 원이 오락가락한다.

초대 고교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선배는 그 잘 치던 퍼터가 중계 TV 카메라를 들이대 덜덜 떨리고 학교의 명예 때문에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말했다.

그래도 장갑을 벗기까지 “희망을 잃지 말자~”는 다짐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가 있었다고 술회했다.

남자는 골프 장갑을 왼손에 한쪽을 끼지만 여자는 양손에 낀다. 이따금 오른손이 타지 말라고 UV 장갑을 끼는 남자가 있는데, 이런 분은 대충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을 친다고 보면 맞다.

또한 내기를 빡빡하게 하면서 상대가 퍼터를 하거나 티샷할 때, 상대편 심기를 흔들기 위해 표 안 나게 장갑의 찍찍이로 소리를 낼 정도라니 장갑의 용도는 참 다양하다.

대개 PGA 경기에서 선수들이 라운딩하는 모습을 보며 골프 자세와 행동을 따라 하는데, 프로들은 퍼터를 하기 전에 거의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한다.

그 이유는 퍼팅 때 손바닥에 전해지는 퍼팅 감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히 골퍼가 그 감각의 차이를 느낀다면 퍼팅에는 어느 정도 도(?)가 트인 경지이다.

잘 아는 지인 중 퍼팅이 길든 짧든 쳤다 하면 홀로 빨려 들어가는 퍼 신(?)이 있는데, “장갑을 벗지 않고도 어찌 그리 잘하냐”고 물어보면 그냥 웃으면서 “그 님이 오셨다”고 하니 쓰리 퍼터를 밥 먹듯이 하는 사람으로서 열받지 않을 수 없다.

처음 골프를 배울 때 잘 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스윙하다 보면 손가락과 손바닥에 물집이 생겨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사업에 성공한 어느 회장님의 회고록에는, 연습 후 장갑을 벗어보니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장갑에 피가 잔뜩 물들어 있었다고 고백했다.

아마 그 회장은 그런 열정과 집요함으로 사업에 임해 당연히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운동하고 장갑을 골프 가방에 두었다가 다음 라운딩에 또 사용하다 보면 모양도 빠지고 모양도 안 나 이따금 세탁해 쓰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웬만하면 1만 원에 2개짜리도 있어 낡은 것은 버리고 되도록 새 장갑을 끼면 기분도 좋고 공도 잘 맞는 듯하다.

골프는 운 30%와 기술 70% 정도 된다고 하니 장갑 탓하지 말고 소신껏 스윙하면 언제든 잘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결국 “장갑을 벗어봐야 안다.”, “끝난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호의(好意)가 숨어 있다.<계속>

최재인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