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임중우)

[골프타임즈=노경민 작가] 당신은 좋겠다. 아무 때나 불쑥 나타나 어디든 갈 수 있어서 좋겠다.

“바람 쐬러 가자고. 집 앞이야. 나와”

약속도 없이 아침 일찍 전화 와 나오란다. 달려나가고 싶은데 옆에 손자녀석 아직도 꿈속이니 혼자 두고 나갈 수도 없고 마음만 달려나간다. 훌훌 떠날 수 있다는 게 더 없는 기쁨임이 요즘 들어 더 절실하다.

나도 꺼리낌 없이 떠나고 싶다.

내 마음대로 하자면 가족들이 불편해지고 누군가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미리 시간 조절해야 하고 나가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나가도 빨리 돌아오라는 손자녀석 독촉전화에 성화 못 이기고 중간에 일어서기 일쑤다. 자식들 낳아 걷고 뛰고 저 혼자 설 때까지 지켜봐야 하듯이 이젠 손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내 자식보다 더 마음 씀이 크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가족들의 시간이요, 모두 각기 볼일로 출타하고 나면 정리하고 난 뒤 그 잠깐의 자투리시간이 온전한 나의 시간이니 금쪽같기만 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밖으로 잘 돌아다니지 못하다 보니 더욱 간절하다. 그 시간을 알뜰히 영화 한 편보고 밀린 드라마까지 볼 수 있으면 최고다. 언감생심, 외출은 엄두도 못 낸다.

허겁지겁 아이들에 치이고 남편은 먼발치로 보내며, 손주는 알뜰살뜰 챙기느라 경황없다. 혼자만 있다는 당신이 어찌나 부럽던지 나에게도 혼자만의 여유를 주라고 소리쳐본다.

아직 결혼 않고 혼자 사는 딸은 다이어트 달력이나 만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 한가롭고,두 손자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니 각자의 방 찾아 이제 할미는 뒷전이라는데, 이제 돌쟁이와 천방지축 네 살배기는 할머니 껌 딱지니 어쩌나.

아무 간섭 없고 혼자 결정하고 처리하며, 손 벌리는 사람도 없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당당히 갈 수 있음에 찬사를 보낸다. 급할 것도 없고 신경 쓸 일도 없으며, 먹고 싶을 때 먹고 눕고 싶을 때 누울 수 있는 당신이 참 좋겠다.

어디든 훌훌 떠날 수 있을 때 시간과 상관없이 떠나는 자유가 부럽다. 당신은 내게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하지만, 내게도 그런 시간이 언젠가 올 거라는 기대로 오늘을 산다.

오지 않는 손자 기다리는 당신을 보면서……

노경민 작가는
시와수상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작가는 현재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운영이사로 순수문예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