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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골프역사 7] 대한민국 골프 140년의 발자취 추적...캐디의 역사 100년, 효창원코스부터 사환 대동

캐디 제도권으로 옭아매, ‘캐디 선택’이냐 ‘노캐디 골프장’이냐 정노천 기자l승인2021.07.28l수정2021.07.2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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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 효창원코스 캐디

[골프타임즈=정노천 기자] 세금과 4대 보험료 부담으로 인한 캐디피 인상으로 향후 ‘노캐디제’나 ‘캐디 선택제’를 도입하는 골프장이 늘어날 조짐이다.

올해 7월부터 실행예정이던 캐디 고용보험 의무가입이 2022년 이후에 재적용으로 유보됐다.

고용노동부의 캐디업종에 관련해서는 “소득파악이 명확하지 않아 기준을 세우기 어려워 2022년 이후 소득 파악 체계를 구축한 후에 적용 시기를 결정 하겠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캐디와 골프장 업계는 최소 1년간의 법 적용 유예 기간을 얻게 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 15일 고용보험위원회를 통해 '특수형태 고용근로자 고용보험 세부 적용방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르면 특수고용직 14개 직종 중 캐디는 2022년 이후로 2022년 1월부터 적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관계자는 “사실 캐디의 수입은 날짜와 계절에 따라 변동 폭이 크다. 또한 캐디 개개인마다의 수입 폭도 커서 법 적용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캐디 90% 이상이 반대하는 고용보험 의무 적용에 상당한 부담이 있었을 것”이라고 털어 놓았다.

모 캐디는 “캐디고용보험 의무가입은 당황스럽고 수입을 따졌을 때 정부를 위한 법 적용이라는 생각뿐이다. 향후 어떤 잣대를 들이밀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캐디 직업을 그만 둬야하는가 하는 고민에 빠질 때가 많다”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그 이면에는 실제로 캐디와 골프장에서 현장 의견을 들은 노동계 관계자들이 많은 부담을 갖은 것으로 보는 견해가 팽배하다. 고용안정화를 위한 취지의 법이 오히려 캐디 직업의 불안정성을 야기한다는 여론이 커지자 일단 유예 후에 결정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대부분 골프장과 캐디들은 1년간의 유예 기간 동안 고용노동보험법에 대해 무용지물 법임을 재차 강조해 현재 시스템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용보험법을 실시하게 되면 지금의 캐디 40% 정도가 그만두거나 실직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또한 캐디 수급난과 고용보험 세금 부담으로 인해 대중제 골프장을 중심으로 노캐디 시스템이 빠르게 도입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고용보험료율이 임금근로자(1.6%)보다 낮은 1.4%로 확정됐다. 보험료는 특고 종사자와 사업주가 0.7%씩 부담하게 된다. 따라서 캐디의 연봉이 5000만원이라면 근로소득세를 비롯해 각종 4대보험 비용을 포함해 약 600만 원 정도가 캐디의 부담금이 될 전망이다. 물론 골프장도 비슷한 비용의 부담금을 지출하기 때문에 자칫 골프장 이용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골프장 캐디의 고용보험 의무화로 소득의 3.3%를 사업소득세로 낼 것으로 예상되며, 추가로 의료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등 4대 보험료 납부 의무가 부과된다. 이렇게 되면 캐디들의 연간소득의 20% 가량이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세금과 4대 보험료는 수입 등 각종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캐디가 개인사업자일 경우는 600여만 원을 고스란히 내야 하지만, 골프장이나 캐디 관련법인 소속 직원 신분으로 골프장에 파견 나가는 월급제 캐디인 경우에는 세금과 4대 보험료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300여만 원 정도가 된다. 법인의 경우는 4대 보험료 절반을 법인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전국 3만5000명의 캐디와 골프장 업계는 남은 1년 간 취지에 맞지 않는 고용보험의무화의 부당함에 대해 적극 피력해 나갈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또한 세금 부담으로 인해 캐디의 직접 고용을 꺼리는 골프장과 반대로 세금 부담을 덜고 싶은 캐디의 상호이해관계로 인해 아웃소싱 형태의 캐디 공급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날 수도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8일 골프장 캐디와 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등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고용보험 의무가입을 골자로 한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 징수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하고 올해 초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내년으로 밀었다.

또한 세금과 4대 보험료 부담으로 인한 캐디피 인상으로 ‘노캐디’나 ‘캐디 선택제’를 도입하는 골프장도 늘어날 수 있다. 현재도 캐디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데, 수입이 50만 원가량 줄면 캐디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게 되며 장기적으로는 결국 ‘노캐디제’로 갈 전망이 높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몇 년 동안 캐디 없는 골프장이 대중제를 중심으로 크게 늘고 있다.

한국골프소비자원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캐디 선택제 혹은 ‘노캐디제’를 도입한 국내 골프장이 총 142개로 지난 2018년보다 67개(89.3%) 늘었고, 이는 국내 골프장 535개의 26.5%에 해당한다. 이는 전국 대중코스의 31%인 104개가 ‘캐디 선택제’ 혹은 ‘노캐디제’다. 전면 ‘노캐디제’를 도입한 골프장은 36개로 대부분 9홀 코스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골퍼가 원하는 경우에만, 캐디를 선택하는 것처럼 한국골프장에도 급속하게 뿌리내릴 것으로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캐디가 나타났을까?
이미 골프발상지에서부터 오래전에 ‘캐디’로 불려 온 만큼 그 용어는 그대로 유입돼 이 땅에서도 ‘캐디’로 불린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등의 자료를 보면 대한암흑기인 1921년 6월 1일 조성된 효창원코스에서부터 캐디들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1924년 12월 7일 개장한 청량리코스와 1924년 8월 31일 개장한 대구코스에서도 캐디라 불리는 자료가 나타난다. 효창원코스와 청량리코스 시절에는 ‘캐디’라기보다는 골퍼가 코스에 나오면서 직장에서 데리고 나온 사환들이었던 예가 많았다. 가끔 마을의 농부를 임시로 고용할 때도 있었다. 아래의 내용은 중앙대 손환 교수가 펴낸 책(<한국골프의 탄생> 민속원 2021 4)에서 인용에 삽입돼 있다. 일인들이 자신들의 골프자료를 쓸 때 이미 캐디라고 호칭하고 있었다고 손환 교수는 언급했다.

훗날 우리 골프역사에서도 캐디가 등장한 것은 1930년 개장한 군자리코스 시대였다. 1930년 6월 22일 개장한 군자리코스 소속으로 김종식이란 캐디 마스터가 존재했고 그날 소요되는 캐디들을 골프장 인근의 마을에 연락하면 캐디를 맡을 남자들이 나오는데 농한기면 농부가 나오고 농번기면 마을소년들이었다는 등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급시 모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부산골프코스의 경우 소년캐디에게 등급에 따라 일당 1급(황색 완장) 12전(錢), 2급(청색) 10전, 3급(적색) 8전을 주었다고 일본인 골퍼 이모세 다께오(妹脊武雄)가 기록한 자료도 있다.

물론 효창원코스부터는 전문적인 캐디이기 보다는 자기 회사의 사환이나 주변마을의 아이들을 상대로 골랐다고 하듯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캐디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김종식이란 캐디마스터가 국내프로골퍼 1호인 연덕춘의 집안 조카였던 계기로 연덕춘이 캐디일 등을 했고 나중에 골프를 배워 국내남자프로골퍼 1호가 된 길을 밟게 됐다는 점이다.

캐디일은 그만치 골프와 접하고 있으며 운동신경을 가진 자는 아직 황무지였던 프로골퍼로 전환했다. 그 후로 초창기 프로골퍼가 된 1세대는 대부분 캐디를 하다가 프로가 된 케이스가 많다. 여자프로골퍼들도 같은 맥락이고 보면 한국의 캐디 역사는 1921년 효창원 코스부터 잡아야 할 것 같다. 물론 원산해관의 원산코스에서도 플레이를 할 때도 분명 클럽을 들어주는 캐디들도 있었겠지만 차치하고서라도 1921년 효창원코스부터 잡으면 100년의 캐디역사를 갖게 됐다.

1964년 초 광복과 전쟁이 끝난 후 서울칸트리구락부의 하우스 캐디 수를 보면 남자가 1백명, 여자가 20명 등 모두 1백 20명이다. 이들에게 처음 캐디 유니폼이 4계절마다 제공됐고 모자도 춘‧하‧추‧동 용으로 4계절마다 지급됐다고 한다. 전국엔 골프코스가 점차 늘어나고,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캐디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여자캐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성 캐디는 그 후 그 수가 차츰 늘어 1967년쯤에는 거의 여자 캐디로 교체됐다.

▲ 1926년 청량리코스 캐디

남자 캐디의 고령화와 소년 캐디의 인력난, 거기에다 플레이어들과의 시비가 잦았거니와 집단적인 태업(怠業) 등을 일으켜 구락부측이 남자 캐디를 감축하고, 여자 캐디 증원 쪽으로 캐디 대책을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1970년 초 세미프로 지망자 아닌 남자프로는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프로골퍼로 가고 나머지 일부는 실내골프연습장의 레슨프로로 그리고 나머지는 골프장 취업 또는 귀농(歸農)으로 정착하기에 이른다. 1960년대 후반부터 남성보다 상냥한 젊은 여성이 선호됐으며 이때부터 캐디하면 여성이 적격인 것으로 생각할 지경에 이르렀다.

정노천 기자  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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